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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3. 2022

내 나이가 버거울 때

나의 10대, 20대, 30대를 갈라보며

새해가 오는 것이 좋았던 건 새해에 일어날 일들이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 미지수 안에, 내가 오래 꿈꿔왔던 순간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다이어리를 사서, 맨 앞장을 펼쳐 올 한 해 이루고 싶은 일들을 쭉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예년과는 다를 것 같은 예감에 가슴 떨려했었다.

올해로 33살이 된 나는 더 이상 새로운 해가 미지수라고 믿기 어려워졌다. 마냥 꿈꾼 다는 것이 염치가 없어지는데 누구에게 염치가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순간순간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뭔가 쌓이는 것 없이 흩어지는 것만 같아서 나는 재작년과 닮은 작년, 작년과 닮은 올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이어리 맨 앞장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모든 게 미지수처럼 느껴졌던 10대에는 나이를 먹는다는 개념보다 학년이 올라간다는 개념이 훨씬 컸다. 1학년, 2학년, 3학년- 왠지 높은 숫자의 학년이 좋아 보였다. 시간은 아무리 굴리고 굴려도 계속 이렇게 막연히 기-이-일게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리고, 더 자랄 것이어서 늘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0대의 종착지는 단연 입시였다. 우리는 입시에 성공한 선배들이 얼마나 비범했는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고, 그때만큼은 배우가 아니라 좋은 대학에 합격한 그 선배들이 우리의 꿈이었다. 모두가 입시에, 좋은 대학에 혈안이었고, 10대의 끝,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입시가 어떤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말이었다.


20대는 본격 경쟁의 시대. 치열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끝이 좋을 거라 믿을 수 있는 나이였다. 나는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남보다 못하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아등바등해서 남보다 나았다고 느끼면, 그 우월감으로 얼마 간 버텼다. 나는 열심히의 바다에서 계속 멀미 나는 파도를 탔다. 타인 속에서 우월해야지만,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 없는 날 선 경쟁의 파도.

복도에 손바닥만 한 바퀴가 붙어있는 고시원에 살면서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 고시원을 내려가면 보이는 마트에 가서 제일 싼 과일만 사 먹어도 크게 상관없었다. 내가 여기에 평생 살 것은 아니니까, 지금 내가 있는 곳들은 다 머무르는 곳이니까- 여전히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니까-


20대의 중 후반 선부터 나는 내 나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아야 20대의 끝에 내몰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회를 바라면서도 정작 내게 온 기회들을 소중하게 여기지도 못했다. 지금 내게 온 기회는 초라해 보이고, 자리를 잡기에는 늘 모자라 보였다. 선택받는 사람,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 이 둘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가다 나의 20대가 갔다. 나는 선택받는 사람이기도,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나보다 ‘더’ 선택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20대의 끝자락에 온 것도 몰랐다.   


20대의 끝.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20대를 마쳐야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30대를 맞는 건 미지의 세계였다. 20대 중반의 나이의 배우의 인터뷰에 “늦게 데뷔하셨는데”라는 문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나는 20대 중 후반에 자리를 잡아서 30대에는 이러이러하겠지 라는 삶의 모양을 그리며 살았다. 그 모양이 과연 내가 자의로 그린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모양만 학습했기 때문에, 그 모양에서 어긋난 다양한 삶의 모습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또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 궤적을 벗어난 스스로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30대의 시작, 20대의 끝에 그렇게 부서져 본 탓인지 예상 밖에 새로운 힘이 생겼다. 20대의 끝은 초조했지만 그 초조함도 끝이라고 느꼈다. 나는 내가 무언가가 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좋았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시간들에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에너지로 가득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랑 없이, 사랑하는 것들을 대했던 스스로의 무지가 끔찍했다. 물론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33. 나는 다시 내 나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어리지도, 자라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있는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들을 가지기가 어렵다. 나는 손바닥만 한 바퀴와 저렴한 것만 먹고 다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20대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염치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항목을 가르고, 표를 만들었다. 생계와 가능성, 선택받지 못한 횟수와 스스로에게 남아있는 에너지, 우리 부모님의 나이와, 아버지의 정년퇴직까지 남은 기간, 아버지의 환갑 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과 나의 40대. 나의 평판과 내게 남은 사람들. 나는 심지어 우리 엄마의 33살과 나의 33살을 포개어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아직, 아직…


나는, 또 멀미 나게 파도를 타며, 또 어디선가 본, 아주 오래 학습한 삶의 모양과 나의 삶을 대조하며, 10대의 끝에 입시 성공이 인생의 성공인 줄 알았던 것 같은 무지를 답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것은 결말이 아니었다. 결말은 없다. 시작, 시작, 새로운 환경, 증명 같은 것들-


그리하여 나는 나이로 가르고, 이 나이에 로 시작하는 나의 편견들을 내려놓고 하루하루로 갈라 보기로 한다. 어차피 결말은 없고, 시작만 있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하루하루는 주어지니까. 합격해야만 했던 10대의 끝은 지나갔고, 자리 잡아야만 했던 20대의 끝도 지나갔다. 합격하고 자리 잡는다고 내 삶이 해피엔딩을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겨우 알게 된 30대의 초입, 이제는 30대의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들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에 그저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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