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이 좋았던 이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처음 연기를 배울 때에 꿈꿨던 그런 배우가 됐다면 나는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기 외에 다른 모든 일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10대와 20대였고, 그 외에 다른 일들이 어떤 재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호기심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가르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일상의 대부분은 연기를 가르치는 일로 메워진다. 20대 때는 이 일이 늘 임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기 때문에, 혹은 연기하지 못해 심신이 괴로운 날에 나를 일으켜준 것은 가르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어려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생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학원에 들어서면 학생들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잊혔다. 지금의 나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들이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환해지기를 기도하는 일, 마음껏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기를 응원하는 일, 나의 부족함에 미안해지는 일, 또한 연기를 배울 때보다 더더욱 사람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는 일. 또 수업을 하며, 연기를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연기를 업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지 그러니까 그 일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가늠하는 일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그 모든 상념을 잊고 순전히 몰입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연기를 선택한 것이니까.
보통 수업이 있는 날의 일과는 기상-점심-쉼-수업-독서로 단순하다.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고, 또 그들의 연기에 온 집중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또 나의 감정상태가 좋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학생의 반응에 더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되어서, 수업에 가기 전에는 되도록 약속을 잡지 않고, 과중한 업무는 미뤄두는 편이다.
1년가량 일한 학원 근처에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것은 너무 축복 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너무 무더워서 잠시 가지 못하고 있지만, 봄 내내 수업 전 시간은 무조건 그 공원에 앉아있었다. 고양이들이 모여 앉아있는 곳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할 일을 하거나 연기연습을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한 할아버지와는 계속 마주쳐서 이제는 보면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 깊게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인상이 참으로 푸근하셔서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늘 궁금함을 품게 하는 어른이다.
다른 데에 집중하다가도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에는 별 수 없이 할 일을 내려놓고 그곳을 볼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살짝 어떨 때는 나무가 통째로 춤을 추듯 시원하게 펄럭이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나무와 그 사이로 비치는 볕과 하늘. 그 풍경은 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걸까? 그 모습은 왜 늘 시시하지 않은 행복감을 안겨주는 걸까? 그 모습은 늘 더 단순하게 살아도 된다고, 이 풍경 벗 삼아 천천히 살면 되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내게 영화 퍼펙트데이즈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타자가 되어 볼 수 있게 해 준 영화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노야마는 중년의 도쿄 화장실 청소부이다. 그의 일상은 기상-준비-출근-청소-점심-청소-퇴근-목욕-저녁-독서-취침으로 반복되고 이 영화는 그의 반복되는 하루 하루를 보여준다. 히노야마 아저씨의 반복과 나의 반복은 다르지만 닮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 안정감을 주는 습관이나 매일 지나치는 길, 예상치 않게 마음을 환히 덮는 자연의 어떤 순간들. 그리고 가끔은 주인공의 여동생과 같이 “오빠 정말 화장실 청소해?”라고 묻는 물음을 맞게 되는 순간들. 그럴 때의 기분은 마치 기쁨에 넘쳤던 단순한 삶이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로 철렁이는 파동이 된다. 그런 날에는 귀갓길에 책을 읽을 힘을 잃고 유튜브로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끝도 없이 멍하게 영상들을 본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친구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친구는 마지막 장면이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아서 자기가 이 영화를 잘 본 건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노야마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기 위해 운전을 하는데 그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픔과 기쁨이 요동친다. 그의 표정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심상대로 주인공의 감정을 읽을 것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큰 위로를 받았지만 막상 친구에게 그 위로와 감격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니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글로 표현해 보자면, 내가 하루하루를 살 때 품고 있는 감정의 순환들을 그 몇 분의 연기로 표현한 것이 경이로웠고,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상황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다 같이 그런 감정의 굴곡을 품고 사는구나 하는- 격한 공감이었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감정이 동력이 되어 비슷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 아저씨가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 이영화가 나에게도 매일매일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단순한 게 초라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어서 영화를 보고 나온 나를 뛸 듯이 기쁘게 했다. 그래서 주인공의 여동생의 질문. '오빠 정말로 화장실 청소해?'를 내가 하든 남이 하든 어쨌든 그런 말이 들리는 날에도 좀 더 떳떳해질 수 있겠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