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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n 25. 2024

하프타임

마음이 달아오르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 누구일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해 내고, 더 많은 것들을 보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 얼른, 뭐든 만들어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온다. 그래서 그렇게 풍선 같은 마음을 매일 바늘로 콕 찌른다. 그러나 찌르고 찔러도 풍선이 마음을 뒤덮을 정도로 부풀어오를 때가 있다.


수업이 끝난 늦은 밤, 전철에서 j가 선물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 여름의 빌라를 읽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아카시아숲, 첫 입맞춤을 읽을 차례였다. 여중생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는데 화자는 마치 부푼 풍선 같은 시간을 겪고 있었다. 성적인 호기심, 당혹스럽게 변화하는 몸,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별안간 나는 중학생 때의 나의 체온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내게 들이닥친 변화들, 집 코 앞에 있던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버스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 학교에 통학해야 했고, 아직 나는 아이인데 별안간 교복을 입어야 했고, 내가 마주하는 모든 어른들이 너도 어른스러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들.


학교에서는 내내 숨을 참다가 집에 와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낮에는 순정만화를 읽었고, 밤이면 라디오를 들었다. 기억나는 것은 정지영 님의 목소리나 옥주현의 별이 빛나는 밤에. 특히 별밤에는 사연을 많이 보냈다. 허무맹랑한 콩트 같은 이야기를 적었던 것이 생각난다. 내 기억에는 3번 정도 당첨되어, 머드팩과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일 때문에 바빠 친한 친구에게 줬다. 거저 얻은 거라 그런지 아까운 마음도 없었고, 뭐랄까 선물 그 자체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선택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사연이 나올 때 나의 작은 방이 내 뛰는 심장 소리로 가득했다. 큰 방으로 달려가 “엄마 엄마 내가 낸 사연이 라디오에 나와”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친 시간만큼 내 사연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와 함께 상기된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포로 온 그 택배상자의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 주소가 적혀있는 부분을 오려 노트에 붙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온 일인데, 나만의 노트를 꾸미는 일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mrk라는 팬시잡지를 사는 것이 최고로 가슴 뛰는 일이었어서 잡지가 나오는 날을 기다리다가 팬시마니아라는, 들어가기만 해도 사고 싶은 것들이 널려 있어 심장이 멈추질 않는 그곳에 들어가, 얼른 신간호를 집어 집까지 뛰어왔다. 잡지를 펼쳐서 대표 캐릭터인 콩콩이나 여타 다른 캐릭터들의 그림을 오려 노트를 꾸몄다. 그 당시 좋아했던 남자아이의 이름을 적거나 노랫가사말을 적어 넣기도 했다. (아직도 고이 갖고 있다)

연기가 하고 싶어 예고에 입학한 이후로는 늘 그렇게, 라디오에 내 사연이 나오듯, 잡지를 오려 노트를 꾸미듯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뛰는 가슴으로 학교 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어른들은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기 선생님이

-너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니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시외버스에서 자고 있던 어른들을 생각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라고 멋있게 꾸며 말했지만 그보다 꾸밈없는 나의 마음은

-어른들을 웃게 하고 싶어요

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두 배의 나이를 지나온 나는 퇴근길 백수린 작가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까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그 다음 날 토요일. 아침엔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해야 할 일들을 마쳤더니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얼른 할 일을 끝내고 학원 근처로 가서 좋아하는 길을 걸었다. 인현시장에 가서 매운 어묵을 하나 먹을까 고민했고, 오리바베큐를 파는 곳이 있어서 오리를 좋아하는 친구를 생각했다. 정육점 앞에 서 있는 줄을 보며 뭘 팔길래 줄을 서 있나 자세히 살폈지만 알아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체휴강시네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북한산 인근 언덕에 이 작은 영화관이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곳을 떠올리면 늘 기분이 좋다. 영화관 앞에 서서 예약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괜히 긴장되어 머뭇대다가 용기를 내어 들어가 물어봤으나 영화는 보지 못하고 다시 나와 그 인근을 또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에단호크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이 예술 형식에 헌신하는 거예요. 하거나 죽거나. 일자리를 얻든 말든 상관없어요. 제가 딸에게 늘 하는 말은… 만약 배우가 되고 싶다면 62살에 시애틀 고등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미래가 좋게 들리지 않는다면 연기하지 마요 빨리 꺼져요 만약 그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뭘 하는 거예요? 당신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결정할 수 없어요. 그가 잘하는지, 그녀가 잘하는지, 누가 최고인지.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건 예술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죠. 그 뒤론 헌신만이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세상은 이상해요. 세상은 음악 대충 쓰는 작가는 추앙하고 목숨 걸고 음악 하는 블레이즈 폴리는 무시하잖아요 세상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라요 성공과 실패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는 거예요”


나는 이 영상을 보는 순간 내가 15살 때의 마음을 오래 잃었었고, 순간들이 모여 그 마음을 되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예술을 할 때의 자유함과 기쁨을. 라디오 사연을 적고 노트를 꾸밀 때와 같은 기분을, 억지로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을.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 보라고, 누군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기른 꽃들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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