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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Sep 12. 2024

한 시절과 이별하기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엄마를 찍은 사진을 봤을 때 내가 생각한 엄마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면 곧장 엄마가 팽팽할 때의 얼굴을 기억해내려 한다. 40대쯤의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힘 있지 않으면 아빠의 입가가 주름 때문에 내려간 것 같으면 우렁찬 목소리로 장난치던 그 말투를 생각했다. 그렇지만 곧, 사진 속 엄마의 지금의 얼굴을 뚫어져라 본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할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외면하고 싶을까 돌아가고 싶을까. 나는 내가 엄마의 사진을 봤을 때의 기분을 엄마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보내다가 전보다 부쩍 예전의 장면들이 자주 스친다. 아빠가 숙직하는 날이면 엄마와 동생 나 셋이서 기다렸다는 듯이 치킨을 야식으로 시켜 먹던 날 (아빠가 계실 때는 잔소리를 하셔서), 아주 어릴 때 1층이었던 우리 집 앞에 늘 주차되어있던 아빠의 승용차. 그리고 아빠가 귀가할 때쯤 들려오는 아빠의 차가 주차되는 소리. 아빠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 헛기침을 한 번하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힘 있게 대문을 여는 소리. 엄마와 칼국수 집에서 일할 때. 거기서 해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기르던 강아지가 살아있을 때 엄마와 가끔 가던 뒤 편의 큰 공원. 회식하고 돌아온 아빠가 치는 장난들. 방문을 쾅 닫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실은, 실실 웃고 있던 내 표정. 살가운 아빠가 싫지 않았던 내 마음. 그리고 하루는 그렇게 장난치는 아빠를 피해 방으로 도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 봤는데 안아주더니 ‘우리 딸 고생이 많다’라고 예상치 못한 문장으로 날 놀라게 했던 순간. 


이제는 은퇴한 아빠가 일하러 가는 내 뒷모습에 대고 "계단이나 거리에서 너무 핸드폰 보면서 걷지 말고" 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예상치 못한 다정한 말에 다정하게 화답하기가 늘 낯간지러워서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얼른 나간다.  

빨리 집에 퇴근한 날에는 소파의 아빠가 밥은?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빠는, 아빠의 하루는, 지금 기분은요 하고 묻고 싶어 진다. 


아빠 나는요 요즘 꽤 자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부재를 미리 상상해요. 그러면 훅 불안감이 나를 장악해요 그리고는 곧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나를 훑고 지나가요 그때의 기분이나 웃음소리. 언제나 아이로 돌아가는 그 장소와 냄새 같은 것들이 내 삶에서 슬금슬금 멀어져 달아나버리고 나는 그 뒷모습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주 들른 옛 동네는 이제는 정말 다른 동네라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많이 변해있었다. 자주 걷던 골목의 초입은 아예 들어갈 수 없었다. 아직 펜스가 쳐져있지 않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여 해가 뜨거운 날이었지만 길의 끝까지 걸어가 봤는데 다 막혀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삥 돌아서 다른 길로 들어가 멀찍이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주택이나 상점들을 바라보다가, 어쩌면 또 다른 한 곳은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고 그 길로 한참 걸어갔다가 거기도 펜스가 쳐져 있어서 결국 발걸음을 돌려 어쩔 수 없이 공사가 마친 길을 걸었다. 잘 닦인 길, 깨끗한 새 아파트들 사이를 걸으니 이제 오랫동안 이 동네에 오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전엔 길이었던 그곳을 바라보며 내 기억에서마저 그 길이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그래서 해가 쨍쨍한 여름날 친구 집에 가려면 지나쳐야 했던 골목과 그 옆 주택들 혹은 어른이 되어 집에 바로 귀가하기 힘든 감정일 때 헤매던 골목들, 걷다가 길고양이를 만나 늘 한참을 고양이와 함께했던 그 길을 더듬더듬 머릿속으로 다시 걷는다.

잘 닦인 새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내게 중요했던 무언가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엄청난 부지의 허허벌판을 보며 생각했다.


허물어진 동네처럼 나의 시간이 계속 허물어져간다. 예전처럼 친척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전 동네에서처럼 엄마와 같이 장을 보거나 맛있는 걸 먹는 시간을 자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올여름 처음으로 교회에서 가는 선교에 동참해 제주의 작은 교회로 가서 그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수영장에도 갔다. 수영장은 실내와 실외가 함께 있는 형태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실외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아이들의 안전만 물 밖에서 살피려는데 유난히 살갑게 굴고 요망진 아이하나가  '아 쌤 뭐해요 빨리 들어와요' 하며 끈덕지게 따라붙었고 못 이기는 척 물속에 들어갔다. 막상 물에 들어가니 마음이 들떴고, 놀다보니 코와 입과 귀에 물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컥컥 대며 기침을 하다가도 다시 아이들의 튜브를 끌며 물속을 누볐다. 그런데 난데없이 굵은 빗망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더니 억수 같은 소낙비가 내렸다. 당연히 실내로 들어갈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아이들은 비를 맞으니 더 활개를 쳤다. 나는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갔다가 쏟아지는 빗 속에서 행복하게 노는 그 눈부신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빗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을 흥건히 먹어도 다시 웃으며 보드 위에 올라서는 아이, 내 팔목을 잡고 장난을 거는 아이, 같이 다른 선생님 빠뜨리자며 작전을 짜는 아이. 비를 맞으며 그 어떤 상념에도 묶이지 않고 아이들과 시시덕거리며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쳤다. 마치 신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놀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 듯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움켜잡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 자꾸만 사라지고 허물어져가도 어떤 시간은 마음에 박혀 절대 떠내려가지 않으니까- 떠내려가지 않을 기억을 계속 만드는 것이 잘 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증명하고 싶어 요동치는 마음을 흘려보내고 빛나는 사람들과 그 순간들에 온전히 잠겨야겠다. 아직은 쉽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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