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인 타임

아니마 에테르나 브뤼헤 <In Time>

by 안일구


Alpha, 2018

처음 보는 연주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연주한 곡은 익숙했다.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불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현악 4중주를 두 배로 불린 형태의 현악 8중주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는 다시 낯설다. 이 음반 안에 들어있는 모든 음악은 당대의 악기를 재현한 시대악기로 연주되었다. 같은 곡도 아주 새롭게 들어볼 수 있는 것이 시대악기의 연주의 매력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들은 우리가 기대한 소리를 무너뜨린다. 대신 완전히 새로운 질감과 음악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운다. 그리고 기존에 갖고 있던 멘델스존에 대한 나의 이미지들이 새롭게 머릿속에서 재정립된다.


이 연주자들에 대해 천천히 공부해 보았다. 우선 오케스트라는 벨기에 브뤼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대악기 오케스트라 '아니마 에테르나‘였다. 이 악단은 요스 판 이머르셀이 창단했다. 수십 년간 바로크, 고전, 그리고 낭만시대 초입의 작품들까지 시대악기로 연주해 온 단체였다. 그런데 뛰어난 연주력 외에 대단한 점이 또 엿보였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세대의 연주자들에게 단체의 방향키를 조금씩 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넥스트 제너레이션 아니마 에테르나’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야콥 레만, 그리고 바로크와 고전 바이올린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쇼샌 시라노시안이다. 이들은 연주만 하는 것이 이다. 직접 역사를 공부하고, 악보를 뒤진다. 작곡가의 초기 스케치나 초판본, 당시 연주자들이 남긴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그다음에 새로운 연주를 만들어간다. 예를 들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때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련되고 다듬어진 후기 판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덜 알려진 원전 버전을 선택했다. 멘델스존은 자신이 스스로를 “개정병”이라 부를 만큼 악보를 고치고 또 고치는 사람이었다.


연주자들은 이 원전 악보를 손에 쥐고, 멘델스존과 함께 이 곡을 연습했던 요제프 요아힘이나 페르디난트 다비트도 살폈다. 그들이 남긴 운지법과 보잉, 연주 기호들을 그대로 하나씩 따라갔다.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아니마 에테르나는 현대 악기와는 음색, 반응성, 밸런스가 전혀 다른 악기들을 통해 19세기 중반의 소리를 되살리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주다. 이제 천천히 음악을 들어보자. 낭만성 짙고, 폭넓은 비브라토로 풍부한 울림을 품은 멘델스존이 아니다. 이들의 멘델스존은 어딘가 투명하고 직선적이며, 한편으로는 또 생생하다. 새로운 감정과 감각이 느껴진다.


1악장 도입부터 예상을 깬다. 바이올린은 비브라토를 자제하고 음악의 수평적 흐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들이 가볍게 물결치며 옆으로 흐른다. 음색이 처음엔 조금 단순하게 느껴졌는데, 들을수록 담백하고 투명하다. 음악이 몰아치다가 2분 40초경부터 나오는 잔잔한 부분에서 이들이 만들고 싶은 음악이 잘 느껴진다. 이런 특별한 감각은 2악장에서 더 도드라진다. 전반적으로 정갈하고 소박하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나오는 음향이나, 단조로 울부짖는 부분은 또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2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피치카토 음색도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치 현악기들 위에 얇고 부드러운 천을 살포시 덮어놓은 듯하다. 끝음이 사라지자마자 3악장의 서주가 등장한다. 뒤이어 주제가 시작되고, 바로크 바이올린의 기분 좋은 생생함이 끝까지 이어진다.


"글러브박스를 열어보니 CD 대여섯 장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한 장은 이무지치 합주단이 연주한 멘델스존 8중주곡이었다. 아내는 그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하기를 좋아했다. 현악 4중주단을 딱 두 배로 늘린 희한한 편성이지만 멜로디가 아름답다. 멘델스존은 불과 열여섯 살에 이 곡을 작곡했다고 아내가 알려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처음 접한 뒤, 한동안은 이무지치의 연주로 자주 들었던 곡이다. 고풍스럽고 도톰한 양탄자처럼 따뜻하고 정제된 이무지치 연주자들의 음색은 익숙하고 편안했다. 이번 음반의 멘델스존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같은 곡이지만 음색과 질감, 악기 사이의 거리감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1악장에서는 밝고 유려한 선율이 교차하며 넘실거린다. 그 안에 긴장과 밀도 있는 대화가 살아있다. 특히 2악장에서의 순수함과 섬세함은 대단하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정교하게 얽히는 앙상블이 인상 깊다. 3악장 스케르초는 그림자밟기 놀이 같다. 각 악기들이 교차하며 등장하고, 연주자들은 재빠르게 반응하며 소리의 실루엣을 만들어간다. 리듬과 악상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여백들도 재밌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젊은 에너지 속에 숨겨진 치밀함이 빛난다. 주제가 제시될 때 악기들이 서로를 모방하듯 등장하는데 푸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흐를 깊이 존경했던 멘델스존이다. 푸가 형식을 낭만적으로 풀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한 성부가 소리를 계속 움켜쥐지 않고, 다음 성부를 위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움직임은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누군가의 음악을 들으면 항상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멘델스존은 어린 나이에 이미 대가의 솜씨를 지녔지만,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고치기를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완벽을 향한 집착 속에서 나오는 음악은 언제나 경쾌하고 단정하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아니마 에테르나'는 이런 면에서 멘델스존과 닮아있다.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지만, 하나하나 의심하고 고쳐가면서 멘델스존과 그의 음악을 추적했다. 이 음반의 제목은 'IN TIME'이다. 이 젊은 음악가들의 시간 속에서 멘델스존의 시간이 다시 정교하게 구성되고 꺼내진 것이 이 음반이다. 음악은 이래서 참 좋다. 오래된 시간이 지금의 시간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Essential Track | 5번 트랙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II. Andante)

소리일 뿐인데, 8명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누구 하나 뽐내려 하지 않지만, 그들이 함께 만든 음악은 묘하게 존재감이 있다. 음색, 비브라토, 프레이징 같은 음악적인 요소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랜 고민으로 다듬은 음악이 이렇게 깔끔하게 들린다는 것도 흥미롭다. “Simple is best”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Simple is difficult”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이 악장에서 들려주는 연주는, 대단하다.

https://youtu.be/Zils7BuYNfw?si=Obka7OBONKW8G1hW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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