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야콥스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유럽 곳곳에 울려퍼지는 음악,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Weihnachtsoratorium, BWV 248). 지금은 전체를 한꺼번에 감상하기도 하지만, 1734년 라이프치히의 신자들에게는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여섯 번에 걸쳐 연주된 음악이었다.
12월 25일: 예수의 탄생 (1부)
12월 26일: 목자 장면 (2부)
12월 27일: 경배 장면 (3부)
새해 1월 1일: 명명식 (4부)
1월 2일: 동방박사 도착 (5부)
1월 6일: 경배와 마무리 (6부)
즉, 교회의 절기와 성경 낭독 순서에 맞춘 예배음악이었다. 사람들은 그날 그날의 이야기를 듣듯이, 오라토리오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음악은 100년 넘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1829년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키면서 ‘바흐 르네상스’의 불이 붙었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는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전곡이 연주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후 20세기 들어서는 리히터나 아르농쿠르 같은 지휘자들의 녹음 덕분에 완전히 부활했다. 지금 이 작품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유럽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대표 음악’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연주하게 된 첫 번째 음악이 이 곡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학생 오케스트라에 급하게 투입이 되었었다. 공연은 베를린 젠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프랑스 돔’에서 열렸다. 정식 콘서트홀도 아니었고, 이름난 오케스트라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리허설 때도 느꼈지만, 그 교회 안에서 듣는 바흐의 음악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경건하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하고 밝았다. 오히려 연주가 끝난 뒤 나는 이 음악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도서관을 찾아, 바흐의 모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음반을 찾아 들으며, 리히터나 아르농쿠르 같은 거장들이 만든 세계를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경지에 다다른 걸까?' 그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음반이 지금 소개하려는 바로 그 음반이다.
그냥 바흐의 음표들만 전달받아도 꽤나 황홀한 음악이다. 그런데 최고의 지휘자, 합창, 솔리스트, 연주자들이 모여있다. 지휘는 르네 야콥스, 연주는 알테 무지크 베를린 아카데미(Akademie für Alte Musik Berlin), 합창은 RIAS 카머합창단이 맡았다. 독창진은 소프라노 도로테아 뢰슈만,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복음사가는 베르너 귀라, 예수 역할은 클라우스 헤거가 맡고 있다. 수많은 단체들이 이 곡을 발표했지만, 내 귀에는 여전히 이 음반이 최고다. 수많은 색채를 들을 수 있고, 모든 번호가 생동감이 넘친다. 사실 자세한 내용을 모른 채 음악 자체의 느낌만으로도 계속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시대악기 연주 음향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현악기와 목관 악기들, 기쁨을 노래하는 금관악기들의 연주가 가득하다. 르네 야콥스가 만들어내는 합창사운드는 중후하기 보다는 밝고 생생하다. 그리고 모든 솔리스트는 가사와 음악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가창을 들려준다.
특히 놓치기 아까운 여섯 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사실 이 여섯 곡은 다른 음반에서도 늘 핵심으로 꼽히는 명장면들이라, 알아두면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감상할 때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먼저 1부를 열어젖히는 합창 “Jauchzet, frohlocket!”(환호하라, 기뻐하라!)를 들어보아야 한다. 이 음반에서는 시대악기 트럼펫과 팀파니가 찬란하게 울려 퍼지며, RIAS 카머합창단의 명료한 하모니가 순수한 목소리로 환희를 전한다. 이어지는 알토 아리아 “Bereite dich, Zion”(시온이여, 준비하라)에서 안드레아스 숄은 현악기와 함께 실내악을 하듯 음악을 다채롭게 풀어낸다. 그가 노래하는 또하나의 아리아 “Schlafe, mein Liebster”(잠들라, 나의 사랑하는 자여)도 빼놓을 수 없다. 여유 있는 템포 위에서 살포시 얹혀지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불러주는듯한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다음 주목할 곡은 소프라노의 아리아 “Flößt, mein Heiland, flößt dein Namen”(나의 구주여, 당신의 이름이)이다. 도로테아 뢰슈만은 누군가를 향해 대화를 걸듯 노래하는데 여러 감정들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야콥스는 멀리서 들려오는 예수의 목소리를 소년이 부르게 하면서 이 장면을 마치 순수한 존재와의 대화처럼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테너 아리아 “Ich will nur dir zu Ehren leben”(나는 오직 당신을 찬미하며 살리라)도 대단한 음악이 들어있다. 현악기 두 대와 바순의 섬세한 앙상블 속에서, 베르너 귀라가 따뜻하고 진심 어린 음색으로 노래한다. 추가로 클라우스 헤거의 베이스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은 “Großer Herr, o starker König”(위대한 주여, 강한 왕이시여)가 좋다. 1부를 마무리하는 베이스 아리아로, 깊이 있고 단단한 음색으로 신의 위엄을 노래한다.
바흐의 음악은 확실히 인간의 마음으로 완성된 예술이다. 르네 야콥스는 그 사실을 아주 섬세하게 일깨운다. 그는 바흐를 먼 시대의 거장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곁에서도 계속 말을 걸어오는 존재로 만든다. 트럼펫이 반짝이며 공기를 가르고, 현악기는 따뜻하게 노래를 받쳐준다. 합창과 독창은 서로를 배려하고 감싸 안는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눈 내리는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진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경건하지만 무겁지 않다. 밝고 따뜻하고 생생하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이 음반을 꺼내 듣게 된다. 음악 안에는 너무나 커다란 기쁨과 인간적인 위로가 함께 들어 있다. 야콥스가 만든 이 세계 속에서 바흐의 음악은 완전하게 살아 있고,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Essential Track | 마지막 트랙 (64. Choral "Nun seid ihr wohl gerochen")
"죽음도, 악마도, 죄와 지옥도
모두 힘을 잃었도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 인류는 제자리를 되찾았도다."
이 거대한 오라토리오의 가장 마지막 4행의 가사는 이렇다. 이 음악을 바흐는 어떤 음악으로 풀어냈을까? 야콥스의 지휘, 알테 무지크 베를린 아카데미의 연주, RIAS 카머합창단의 완벽한 조화로 감상할 수 있다.
https://youtu.be/WR62xuXOyyc?si=5Cha_r-XbkLr3COn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