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 베를린 필 <말러 교향곡 9번>
지금은 말러의 시대다. 전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정규 시즌이 그의 교향곡으로 채워진다. 젊은 세대는 말러의 불안과 감정의 깊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지휘자들은 각자 말러를 통해 자신들의 예술적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다.
“교향곡이란 세계를 포괄해야 한다(Mahler: ‘Eine Symphonie muss wie die Welt sein’).”
말러의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말러가 쓴 일기고, 자서전이고, 감정 저장소기도 하다. 민요풍 선율, 행진곡, 군악대의 금관, 그리고 신을 향한 코랄이 한 작품 안에서 뒤엉킨다. ‘카오스’로도 불렸을 만큼 복잡했던 말러의 작품은 당대 청중에게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러나 위대한 음악은 속도에 관계없이 언젠가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상황은 점점 달라졌다. 특히 1960년대에 번스타인의 지휘로 말러의 작품은 많은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수많은 지휘자가 말러를 연주했고, 그중에는 오늘 이야기할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가 있었다.
아바도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오페라 애호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밀라노 스칼라 극장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후 그는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빈 국립음악원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스바로프스키는 위대한 스승이었고, 특히 브루크너와 말러의 음악을 강조하며 아바도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커리어는 빠르게 성장했다.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었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스칼라 극장의 부지휘자로 시작해 마침내 음악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시카고 심포니, 런던 심포니를 거쳐 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맡으며 세계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섰다. 베를린 필을 떠난 후에도 그의 예술은 더 깊어졌다. 특히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말러 교향곡 시리즈는 모든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안긴 걸작으로 남았다.
아바도는 커리어 초반부터도 이미 결정적인 순간 말러의 음악을 다루었다. 1971년, 빈 필하모닉과의 데뷔 당시에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했고, 1990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취임 연주에서는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지휘했다. 1980년대엔 런던 심포니와 함께 교향곡 1번, 5번, 6번, 9번을 잇따라 녹음하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여전히 말러가 ‘너무 길고 복잡한’ 작곡가로 여겨졌다. 사실 아바도는 거기에 오히려 매료된 것 같다. 아바도는 언제나 현대 음악을 가까이 하고 수많은 현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지휘자기도 했다. 말러의 음악 속에는 바로 그가 사랑한 시대의 정신과 음악적 실험들이 살아 있었다.
아바도의 말러는 무언가 감각적으로 달랐다. 번스타인의 낭만적이고 극적인 감정과 달리, 아바도는 철저히 악보 중심이었다. 그러면서도 음악은 따뜻했고,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계속 들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그가 일관되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러 다채로운 악상과 리듬은 자연 현상처럼, 물리적인 움직임처럼 움직인다. 느린 악장들에서는 자주 적극적인 지휘를 멈추고 오케스트라가 스스로 연주하게 했다. 현악기나 관악기 호흡이 어긋나면 그는 언제나 이야기한다. “Listen.” 서로의 소리를 들으라는 지시다. 연주자들이 능동적으로 들으며 연주하는 실내악적인 연주는 아바도 해석의 핵심이다.
"사이먼, 내 병은 심각하지만 그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아. 왠지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야. 위장의 상실이 내면의 귀를 선물한 기분이야. 그게 얼마나 놀라운 느낌인지 표현할 길이 없어. 당시 음악이 내 생명을 구했다는 걸 나는 확신해."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의 대화 중(아바도 평전 중)
1999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실황 음반을 꼭 소개하고 싶다. 1998년, 아바도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회복을 거친 그는 이듬해 초 다시 무대에 섰고, 1999년 2월 베를린 필과 함께한 말러 교향곡 9번 실황은 매우 특별하다. 게다가 교향곡 9번이다. 말러가 1909년 여름에 작곡한 이 작품은, ‘교향곡 9번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그가 먼저 쓴 대지의 노래 이후의 작품이다. 그 다음 작품인 교향곡 9번은 거의 모든 교향곡에서 말러가 다룬 ‘죽음’이라는 테마의 총결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아바도는 리허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진다. “말러 9번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인사(Letzte Grüße)”다. 아바도는 모든 악장에서 완벽한 템포를 찾은 듯 하다. 그 미묘한 시간의 균형이 이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악장마다 복잡한 선율과 화성이 얽히는 가운데, 음향은 투명하고 소리는 한없이 깊다. 관악과 현악의 균형 또한 제대로 잡혀있다. 밀도가 촘촘한 베를린 필의 사운드 안에서 아바도는 중심을 딱 잡고 있다.
마지막 4악장은 마치 장편의 시와 같다. 아바도는 평생 책을 읽은 사람이고, 다양한 예술을 몸으로 접해온 사람이다. 아바도의 9번 4악장은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들어있는 것 같다. 소리와 여백 사이사이에 끝이 없는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바도가 말했던 것처럼 말러는 여기에서 느리고 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 결국 모든 음악이 잦아든 순간, ‘정적’이 시작한다. 이 음반에서는 다섯 번째 트랙으로 실제 녹음 당시 관객들이 숨을 멈춘 채 침묵했던 구간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이 음반에서는 30초가량이지만, 아바도의 다른 연주에서는 이런 정적이 5분 가까이 이어지기도 한다. 아바도, 연주자,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런 정적의 시간은 마치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고, 현장에 있는 모두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다.
"나는 노노의 음악과 말러의 음악 속에 있는 정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이 떠오른다. 그것은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 죽음에 이르기 전의 정적의 순간들이다. 노노의 음악도 이와 똑같다. 공간에서 빙빙 선회하다 천천히 정적 속으로 사라지는 음악이다. 그리고 그 정적은 계속된다. 거기에는 한계가 없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아바도 평전 중)
아바도는 최고의 단체에 고용되기도 했지만, 직접 최고의 단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986년 비엔나에서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GMJO)를 창단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서유럽과 동유럽의 젊은 음악가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첫 오케스트라였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의 연주자들이 비자를 받아오기도 힘들었던 시절, 아바도는 정부와 문화재단을 직접 설득했다. “음악은 국경을 허물 수 있다.” GMJO는 이후 다니엘 하딩,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차세대 지휘자들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1997년에는 GMJO 출신 단원들과 함께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MCO)를 설립하기도 했다. 상임지휘자 없는 자율 오케스트라였으며, 유럽 전역을 순회했다. 당시 독일의 음악 저널리스트는 “이 단체는 아바도의 실험실이자 말러 해석의 연장선”이라고 평했다. 이후 이 오케스트라는 아바도의 루체른 프로젝트의 핵심 모체가 된다.
2003년, 아바도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ucerne Festival Orchestra, LFO)를 창단했다. 이 단체는 그의 음악적 철학에 공감한 세계 각지의 명연주자들이 여름마다 모여 이룬 공동체였다. 악장 콜리야 블라허, 비올리스트 타베아 치머만, 첼리스트 나탈리야 구트만,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 등 당대 최고 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아바도는 “나는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아니라 ‘동료’다”라고 말하곤 했다. 아바도와 LFO는 매년 여름마다 말러 교향곡을 하나씩 연주하며, 점점 더 깊고 투명한 해석을 선보였다. 그 이야기들은 다큐멘터리 <Claudio Abbado: Hearing the Silence>에 일부 담겨 있다. 생의 마지막 시기, 아바도는 지휘봉 보다는 미세한 손짓과 눈빛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그는 말러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늘 새롭게 마주하는 대화의 상대로 대했다.
우리가 아바도의 말러 9번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말러나 아바도의 마지막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삶을 이해하는 방식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바도는 병과 싸우던 몸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맑은 정신으로 이 작품을 지휘했다. 그 안에서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휴식이고 위안처럼 다가온다. 아바도의 말러 9번은 웅장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대신 숨소리처럼 섬세하고, 눈처럼 고요하다. 세상의 소음을 잠시 멈추고 이 음반을 들으면, 우리도 그 정적 속에서 작은 평화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말러와 아바도의 대화이고,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Essential Track | 4번 트랙 (4. Adagio (Sehr langsam)
하나의 느린 악장일 뿐일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베를린 필을, 아바도를,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이유가 이 안에 들어있다.
"나는 눈에서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작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나는 소리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숨결이고 지극히 미세한 울림이다. 음악에도 이런 것이 있다. 악보에 '무'에 이르라는 피아니시모가 적혀 있을 때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아바도 평전 중)
https://youtu.be/SY301g42vO8?si=YJ3V3HA21CQkpxT2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