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by 차쌤

3。부끄러움


3-1.jpeg


옛날 옛적에 야산에 살면서 대나무로 온갖 것들을 만들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어느 날 빛을 내는 대나무를 발견하고 그 속을 들여다보니 10cm의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보았다。데려와 지극정성으로 키우니 3개월 만에 어엿한 처녀로 성장했고 빛나는 대나무에서 태어났듯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노인 부부는 '가구야'란 이름을 지어 불렀다。많은 남자들이 청혼해 오자 가구야는 자신이 바라는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다。그 물건은 부처님의 사리로 만들었다는 바리때였다。많은 남자 중 특히 이시스꾸리 왕자는 가구야에 흠뻑 빠졌으나 3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녀도 바리때를 구할 수가 없었다。매우 타산적이고 약아빠진 그 왕자는 새까맣게 그을린 물건을 바리때라 우기며 가구야에게 내밀었다。찬란한 빛이 나야 할 바리때가 빛은 커녕 거무죽죽하기만 하니 되돌려 보내려 하자 “바리때의 빛이 다 해서 그렇다。”라며 속이기까지 했다。이에 그치지 않고 바리때라며 갖은 물건을 보내오는 이 왕자의 뻔뻔함을 사람들은 '부끄러움마저 저버린 양심 없는 인간'이라고 조롱했다。욕심과 탐욕 그리고 속임수로 자신을 차지하려는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낀 가구야는 결국 은은한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달로 올라가 한 남자의 품이 아닌 모든이、특히 절망하여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빛으로 달래고 어루만지고 품어주며 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중에서



아들이 고등학생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일이다。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의 인솔로 아들과 함께 일본을 여행했다。그 교수는 몸 담고 있던 기독교재단의 대학으로부터 기독교의 또 다른 종파 교회에 다닌다는 사유로 정직됐다。이에 종교의 자유로 항의、이에 동조하는 시민단체의 강의를 듣다가 그 교수를 알게 됐다。일본의 신흥종교에 대한 강의였고 마침 그 시민단체에서 일본 종교여행 참가자를 모집했고 그 교수가 인솔자여서 한참 우왕좌왕 하는 아들과 다녀오면 좋겠다 해서 떠나게 된 5박 6일의 일본 여행。단체여행을 끝내고 난 뒤 우리 부자는 10일 동안 더 머물며 자유여행을 했다。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으니 의외로 가마쿠라라고 대답했다。가마쿠라 막부로만 알고 있는 나는 아들이 어떻게? 해서 왜? 이유를 모르니 수국으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막부 따위의 일본역사는 모르고 있었다。꽃과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아들은 가마쿠라를 수국으로 유명한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가마쿠라로 갔다。때는 7월이라 5~6월에 만개하는 수국의 절정은 보지 못했지만 아직 지지 못하고 있는 수국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마치 우리를 기다려주느라 지지 않은 수국으로 여기니 더 예뻤다。흰색、 분홍색、 보라색만이 아니네、다양한 색들의 수국에 놀라며 흰색 수국은 순수와 신뢰를、분홍색은 영원한 사랑을、보라색 수국은 근면함을 뜻한다고 내게 알려 준다。꽃말이다。매사에 못마땅해 하던 아들이 이런 점도 있었네、하고 기특하다고 하자、색과 색 사이의 중간색이 이렇게 많은 꽃은 처음 본다며 애매한 색의 수국들도 꽃말이 있을까? 내게 묻는 듯 중얼거렸다。

거대한 가마쿠라 대불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우리를 일본인으로 알고 한 서양인이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데 한참 영어공부에 빠져 있던 아들은 미천한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주저함 없이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일본에 시골집을 찾아가는 길이며 그 집을 물었던 게다。알 리 없는 아들은 찾아주겠다며 따라오라 하더니 앞장섰다。길 가는 일본인에게、그리고 상점에 들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더니 끝내 그 집을 찾아냈다。방 하나、하루에 손님 한 가족만 받는 가정집이었다。서양인 부부는 고맙다며 가정집 주인에게 차를 부탁해 우리를 차담에 도착 초대했다。일본인、서양인 그리고 아들은 영어로 무언가 대화를 나눴고 난 듣는 척 딴청만 부리며 그들이 웃으면 웃고 그들이 차를 마시면 따라 마셨다。헤어지고 도쿄로 돌아가는 중에 무슨 얘기를 그렇게? 물으니 일본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단다。누가? 그 서양인이? “아니、 내가。”

옛날 옛적에。。。 달나라로 간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그 뒤 한참 후 일본고전 번역서에서 읽었다。

도쿄에서 종교여행을 안내했던 교수를 다시 만났다。고마워서 내가 저녁 한 끼를 사겠다는 약속을 지켰다。호텔로 돌아오자 아들이 물었다。

“그 교수 말이야、독도를 일본 땅으로 믿고 있는 것 같던데?”

한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겨대는 일본에 대해 우리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던 때였다。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했기에 일본어를 꽤 잘하던 그와 내가 대화 중 예민하게 서로 반응했던 걸 아들이 기억해서다。그는 독도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가깝다고 말하며 엄청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걸 보았던 것이다。왜 저러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그 교수는 믿고 있는 것 같다는 아들과 확인해 보니 그 교수의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알아냈다。그는 무슨 근거로? 종교학이라지만 교수라는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의 강의를 일부러 찾아가 들었다。역시 1930년대의 일본 신흥종교에 대한 강의였다。같은 1930년대 한국 전북지역에서 일어난 한국신흥종교와 일본신흥종교를 비교해 달라고 질문했으나 한국 종교는 사이비라는 말까지 하며 서둘러 강의를 끝냈다。이후 나는 그 교수의 복직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의 장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그 교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다。기독교 제단으로부터 핍박받아 교수직을 박탈한。。。 그것뿐이냐? 되물었다。그의 역사관、그리고 독도라든가 한국 내 친일세력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시민단체장은 술이나 마시자며 질문을 회피했다。한참 후다。제주도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는 시위현장에서 그를 보았다。아들도 같이 있었고 아들이 묻는다。

“그 종교학 교수 말이야。개인의 피해를 왜 시민단체들이 나서지? 그러려면 그 개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고、어떻게 피해 사실 하나만으로。。。 그러니 한국의 소위 진보시민단체라는 데가 선정적 이슈물이로만。。。 조중동과 뭐가 다르지?” 하며、

“아빠、난 그 가마쿠라에서 들은 일본의 옛날 이야기。。。”

“그 가구야 공주?”

“응。 어떻게 알았어?”

“일본 고전에서 봤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달을 다시 보게 되었고 자주 보곤 한단다。

'최소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은 되지 말자。'

밤마다 달을 보며 흔들리는 자기를 붙들고 있단다。또 하는 말、수국의 색과 색 사이、예쁘고 곱긴 한데 애매하지 않느냐고 말했던 모든 파스텔색 수국꽃들의 꽃말을 아들이 만들어봤다는데、'부끄러움'이다。

부끄러울 줄을 모르면 뻔뻔하고 뻔뻔한 자들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이쪽인 듯 저쪽이고 저쪽인 듯 이쪽、그러나 분명한 건 자기 개인만의 이익을 좇는다는 사실과 미사여구나 희롱의 말로 남을 속이고。。。

가마쿠라에서 만난 서양인 아내가 한 말을 또 되살려 들려준다。“그래서 일본인들은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불편 끼치는 걸 매우 싫어하는가 보다。”

다 듣고 내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짧았다。

“타인배려니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속임수는 아닐까? 속이려 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야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이 말을 하면서 일본의 역사를 떠올렸다。아들이 대답했다。

“한국을 침략하여 수많은 한국인을 죽여 놓고、한국만이 아니지。죄를 저질러놓고 사죄 한 번 제대로 하지 않는 걸 보면 하기야。자기들이 피해자라잖아。전쟁은 자기네들이 저질러 놓고 그 원자폭탄 두 방에。。。 지난 번 한국에 온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 알고 있다는 거 같던데?”

내가 대답했다。

“일본인도 일본정치의 피해자인 것 같아。”

응、일본 국민과 일본정치인은 다르긴 하다는 말에 부자가 공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

아빠가 아들에게 고작 해 준다는 말은、

“우리라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살자。”

3-2.jpeg 가마쿠라 수국


keyword
이전 03화가치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