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아있음을 알고 즐거워하라。
2。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알아라。
3。세상사를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보아라。
4。믿음을 가지고 충직한 사람을 격려하라。
5。분수를 잘 헤아려 그 본분에 충실하라。
6。살고 있는 곳을 떠나면 덕이 붙을 것이다。
7。자신을 잊고 자신을 지켜야 한다。
8。홀로 일어서야 한다。
9。사사로운 마음을 누르고 대의로 마음을 키워라。
10。작은 이익을 버리고 큰 이익을 얻어라。
---1619년 일본 승려 스즈키 쇼산의 법어집 <맹안장>중에서
선을 수행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 10가지이다。수행자? 온전히 살고자 하는 이들의 기본 도리가 아닐까。<맹안장>은、인연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의 눈은 어둠을 헤쳐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이끌어주는 덕목으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서점을 들린다。일어는 잘 모르지만 한자로라도。。。 하며 구입한 책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번역돼 한국에서 출판됐다。번역자가 신문사 동료의 이름이라 반가워서 바로 구입해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게 됐다。<일본 고전>(이다 미디어 출판、윤철규 번역)이란 책이다。이웃나라 일본을 표피적 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제대로 알아보자 하여 꼼꼼히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다。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상당수가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얻어 쓸 수 있었다。언뜻 일본 고전 소개서 같이 보인다。하지만 일본 고전을 읽으며 계속 든 질문은 '한국은?'이다。또 일본 각지를 돌며 만난 일본인들과의 인연으로 그 고전이 전하는 바、그리고。。。。。。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휴전선이 바라다보이는 강화도에서였다。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뉴스가 한참 화제가 될 때 그녀는 동방신기 공연을 보러 일본에서 온 일본 여자였다。친구와 같이 왔다。강화도 서쪽 교동도 망향대에서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까지 휴전선 따라 155마일 도보여행 중이던 나는 길을 헤매고 있는 두 일본 여자에게 길을 알려주다가 그 인연으로 6개월 후 그녀가 사는 일본 돗토리를 여행하기도 했다。북한 땅이 보이는 곳을 찾아왔다는 그들에게도 한국의 남북 정상 만남은 꽤 관심거리였다。국토 분단의 역사가 없는 일본인으로서 통일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왜 한 나라가 분리될 수 있지요?”
묻는 일본녀에게 '너희 일본 때문에' 。。。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짧게 되물었다。“역사 시간에 배우지 않았나요?” 침략국의 역사를 자국민에게 어떻게 가르칠까、이것이 궁금했다。의외의 대답을 듣는다。
“일본은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요。”
그럼에도 두 여자 중 한 명、노구치는 일본이 한국을 두 번이나 침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어떻게?
“따로 배웠어요。”
“따로 배우는 일본인들이 많은가요?”
“역사에 관심 없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에도시대부터 일본 국민들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했다는、영국인이 쓴 일본역사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국민 다수와 지역 영주 등늘을 강압하던 에도시대의 여러 사례들을 알고 있던 터라、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그녀는 50대 중반의 주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은행에 다니다가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대형 서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동방신기 공연을 보러 한국에만 33번 왔어요。”
한국에 온 김에 한국드라마에 나오는 춘천이나 포항공 여러 곳도 다녀왔다는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책도 사서 읽었다라고 한다。한국어를 꽤 잘하는 그녀는、
“그래서 조금 알았답니다。”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일본 유부녀와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아 일본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 홀아비는 카톡으로 자주 연락했다。작년 2023년、그녀는 동방신기의 부산 공연을 보러 왔고 겸사겸사 순천만도 여행할 거라고 했다。순천만은 하도 유명하니 혼자라도 갈 수 있지만 외국인이 가기 힘든 곳을 안내하겠다고 해서 전남 구례의 오산 사성암으로 동행했다。
“사성인이 누군가요?”
원효、 연기、 도선、 진각스님 네 분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알려줬다。가파른 절벽에 제비집처럼 지은 암자를 보고、
“돗토리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어요。”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스쳐지나가는 소망쯤으로 내가 내뱉은 말은 “가 보고 싶다。” 였다。구례 사성암의 지장전과 관세음보살상 사이에 소원바위 앞에 우리는 섰다。뗏목에 싣고 나무를 팔러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세상을 떠난 여인、집으로 돌아와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남편도 아내를 따라갔다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달픈 전설을 품은 바위 앞에서 들어준다기에 소원 하나를 빌었다。방금 허투로 말한 '가 보고 싶다는 곳을 가게 해 달라。'고 나는 소원을 빌었다。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으니 비밀이라고 대답하는 그녀가 피식 웃는다。
속엣것을 드러내면 안 되도록 나라가 국민을 키워낸 일본。화목을 앞세우며 어떤 저항도 용납하지 못하도록 칼을 차고 국민을 협박해 온 사무라이의 나라、일본。그녀의 애매한 미소에 나는 엉뚱하게도 황혼이혼이 일본 여성에게 흔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1년 뒤쯤 사성암 소원바위에서 빈 소원이 이루어졌다。돗토리현의 미토쿠산을 가게 됐으니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는 내겐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그녀가 가까이 살고 있어 동행해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남편이 안 된데요。”
남편하고 거의 대화도 않고 각 방 쓴지 오래됐다던 그녀는、
“남편은 혼자 일본의 모든 산 등반을 목표로 즐겨요。혼자서요。”
3년 전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은 내놓지 않고 그 돈을 남편 혼자 쓴다며、
“그래서 나도 벌어서、그 돈으로 동방신기 보러 가는 거예요。”
무엇을 하든 서로 참견하지 않는단다。그런데 남편이 안 된다고? 내가 남자라서。참으로 이상한 부부다、한국과 이것도 같구나、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보내온 카톡。빨간 하트눈으로 해 달라는 듯 빨간 입술을 꽉 모아 삐죽내밀며 활짝 웃는 이모티콘이다。내가 외국 어디로 여행간다고 하면 '부러워요。 나도 데려가 줘요。'했던 그녀는 미토쿠 산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 주기도 했다。그날 돗토리시(그녀가 사는 곳)에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구라요시 미사사온천 근처의 민박집으로 옮겼다。이곳에서 도보와 버스로 미토쿠산을 갈 수 있어서였다。
미토쿠산은 험악해서 2인이 한 조로 동행해야 하고 등산화 착용이 필수였다。운동화를 신고 혼자였던 나는 입산 거절 당했고 내려와 전망대 설치된 망원경으로 구례 사성암과 같이 제비집처럼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미토쿠산 암자를 보는 것으로 자족해야 했다。가 봤다는 그녀에게 그녀가 옆에 있다고 여기고 물었다。저 위에서 보면 무엇이 보이느냐? 미사사 강이 훤히 보일 거라고 할 것 같다。사성암에서 그녀가 탄성을 외치며 한 말이 떠올라서였다。
“저 강 섬진강이지요? 구름 아래 섬진강이라니 정말 멋져요。”
상상으로라도 동행한 그녀는 대답은 않고 또 피식 웃어보였다。그 미소 속에 들려오는、
“남편이 안 된데요。”
이 한마디 뒤에 한 말이 나를 더 환장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또 되살아났다。
“이렇게 점잖은 분인데。”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점잖은 분이 설마를 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맹안장>다섯 번째 덕목을 읽는데 이런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5。분수를 잘 헤아려 그 본분에 충실하라。'
카톡으로 보냈다。일본의 <맹안장>을 아세요?
“그게 뭐예요?”
그녀는 스마트폰 너머로 또 애매하게 웃고 있을 것 같다。그 미소를 엿보며 여덟 번째 덕목、
'8。홀로 일어서야 한다。'
덕분에 미토쿠산에 잘 다녀왔다고 카톡을 보내자 오사카로 가시기 전에、그러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돗토리시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테니。。。 카톡으로 보내 왔다。나흘 지나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부산으로 곧 출발할 비행기를 기다리며 뒤늦게 답장을 보냈다。
'1619년 일본 승려가 한 말씀대로。。。'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가고 있을 때 그녀의 카톡을 확인했다。이런 또。。。 두 눈을 빨간 하트로 불밝히고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삐쭉 내민 입술의 이모티콘과 함께、'캠핑카로 일본 전국 여행을 부부가 함께 하자던 남편이 여전히 혼자 3박 4일로 홋카이도의 산으로 떠났어요。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아요。'
60이 넘은 그녀는 다시 직장을 알아본다고 했다。내가 잠시 품은 설마는 미투쿠산에 다 내려두고 왔다는 듯한 미소의 이모티콘으로 나도 애매하게 대답했다。
'3。세상사를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보아라。'
삼 덕의 미토쿠는 10가지 덕 중에 무엇일까、골라보며 까뮈의 말을 빌어 와 그 덕 하나를 보탠다。
'어제의 무능함을 용납한다면、내일의 무능함에도 용기를 줄 뿐이다。'
분명치 못한 말이나 행동도 무능이라며 나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우물거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