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의 학문은 이단이고 성인의 올바른 길이 아니며 '마음을 안다'하면서 당연한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을 뿐이다。그런 강의는 걷어치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에 이시다 바이간은 대답했다。
“참된 학문이란、무슨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암기했다는 것이 아니다。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고 그에 따라 도를 행하는 것이 참된 학문이다。나는 상인에게도 상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강의를 하는 거라네。”
---에도시대 중기의 심학자 이시다 바이간의 대표작 <도비 문법>중에서
일본인들은 무엇을 위해 깔끔을 떠는가。
첫째、절차를 치밀하게 밟는 것 자체에 미의식을 느낀다。(자족)
둘째、그렇게함으로써 자신이 주위의 비난이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타인 의식)
셋째、절차를 깔끔하게 정확히 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책임 회피) 이는、누구나 알 수 있게 깔끔하고 정확하게 절차를 밟는다는 건 한편 누구의 책임도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시다 바이간의 세키몬심학은 일본인이 만들어낸 독창성 풍부한 철학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에도시대와 다른 높은 생산성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이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시다 바이간의 철학을 넘어선 새로운 윤리와 미의식이다。
---사카이야 다이치가 쓴 <일본을 이끌어온 12인물>중에서
민박(일본에선 민숙이라고 한다。)이 딸린 허름한 시골식당 벽에 걸린 글씨그림이 눈에 띈다。'늘 웃는 얼굴、늘 감사'란 뜻의 글자에 감정이 실려 있다。꽤 재밌다。더구나 작은 해변의 동네 사람들이나 이용할듯한 자그마한 식당이라 그 그림글씨의 솜씨가 더 돋보였다。일본식 가정식 백반을 먹고 계산하려니 카드를 받지 않는다。현금만。방으로 가서 현금을 챙겨 밥값을 지불했다。'철커덩' 돈 통이 열리며 그 안에서 거스름돈을 꺼내준다。내가 초등학생 때、50여 년 전에 보았던 돈통을 일본에선 지금도 쓰다니。경제대국이란 일본에서? 이런 일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다。40년은 족히 됐을 19인치 작은 브라운관 TV를 일본 가정에서 본 적이 있다。나가사키란 곳에선 1931년도에 제작된 전철이 도시 한복판을 신형 트램과 함께 달리고 있다。똑같은 전차를 광화문 서울시립미술관 앞에 전시품으로 진열해 놓은 한국과 비교된다。일본산 전철을 서울 한복판 거리에 전시하고 있는 광화문에 그 전차를 볼 때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 부끄럽다。옛 것에 대한 향수로 전시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 치욕이라는 것을 모르고 전시까지。。。 아무튼 한국에선 골동품으로 전시될 물건들이 일본에선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더구나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는 나라에서。한국은 새로운 걸로 바꾸면서 과거의 것들은 다 없애는 편이다。이에 비해 일본은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며 귀히 여기고 있다。한국에 없는 1,400년 전 백제의 유물들이 그 중 하나다。일본 나라의 정창원이나 법룡사 백제관에 보관 전시된 화려한 유물들이 그 것이다。큐슈 미야자키의 백제마을엔 백제 목공들이 쓰던 공구 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1,300년 전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으로 건너온 목수들이 쓰던 것들이다。한국엔 한 점도 남아 있거나 보존되어 있는 게 없다고 나는 알고 있다。우리 대신 일본이 잘 보존해 주고 있구나、이런 고맙단 생각까지 들었다。
역사서도 그렇다。메이지 시대 이후 선진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한반도를 침략하고 중국(청)을 쳐들어 갈 무력이 생기자 일본 정치인과 학자들은 과거 특히 한국과 관계된 자료들을 없애거나 날조하여 침략에 당위성을 운운、식민지로 만든 뒤에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을 세뇌시켜 역사까지 왜곡、조작、날조해 오고 있지만、일본의 지방 곳곳에까지 그 조작 날조는 손을 뻗지 못해서인지 변질되지 않은 역사나 유물들이 일본의 지방엔 부지기수로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봐라 알아볼 수 있는 게 지명인데、백제(구다라)나 고구려(고마) 등의 지명은 오사카나 나라、교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한 예로、큐슈 아리타에서는 정유재란 때 끌려온 전쟁 노예 이삼평을 도자기의 시조로 모시고 있지만 일본의 최대 출판사에서 낸 <일본 미술사>에는 한국(조선)을 싹 빼고 중국(또는 당)으로부터 전해왔다며 날조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이로구나、한 얼굴로 웃어 보이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춘 이중적인 모습。。。。。 그것이 탈아입구、즉 아시아인이 아닌 서양인이듯 행세하는 것。서양인들은 일본에 이러한 것만 보고 다 넘어간다。어디 서양인 뿐인가。친절함、 청결함、 예의바름、 그리고 이채롭고 독특한 문화까지。미국 인류학자가 이를 제대로 표현했으니 바로 <국화와 칼>이다。그러나 대다수 서양인들은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이 책은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미국이 패전국 일본을 어떻게 다스릴까(미군정 시대)、해서 인류학자에게 의뢰하여 세상에 나온 책이다。그러나 이런 책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등 미군정은 일본의 속과 다른 것、비굴할 정도로 깍듯한 예의에 속은 게 분명하다。당시 도쿄에서 대접을 받으며 일본 정치인의 의견만 받아들여 남한의 정치인을 친일족으로 앉혔다。미국의 손에 넘어간 한국이지만 강점기와 다를 바가 없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미국과 일본은 돈독한 우방으로 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미국은 그대로 따르고 있다。미국 내에서는 일본인이 쓴 <요코 이야기>를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으며 미국 국민에게까지 전쟁피해자 일본으로 가르치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으로만 믿는 게 사람이고 더구나 그 보여지는 게 거부감은커녕 존경스러울 정도인 데다가 더더구나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 폭격 등 식겁하게 해대던 일본이 그 후 세계 경제강대국이 된 나라의 국민들이 껍벅 저자세로 겸양 겸손해하며 섬겨대는 듯하니 속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겉만 보면 그렇다。그러나 속을 알면?
나도 그 보여지는 것에 빠져 일본을 무려 30여 번 여행을 했고 자전거에 텐트 싣고 석 달 동안 규슈를 거의 다 돌았었다。여행하기 편하고 깨끗하고 볼 것 많고 어디에나 있는 온천은 나를 일본에 쏙 빠지게 했다。더구나 만나는 일본인들의 친절함에 감동까지 했다。아니 사랑에 빠졌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나의 일본 사랑、그러나 알아가면 알아갈수록、더 깊이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뭐지? 의문이 들었고 내 앞에 보여진 일본은 영화 세트장이 되어 가고 일본인들은 그 영화의 연기자들로 보이기 시작했다。거의 일본인 듯 착각하며 돌아다닌 일본이 감옥이 되어 갔다。내가 강제된 국민으로 일본에 산다면? 설레 설레 고개를 젓고 만다。이 얘기를 하자면。。。。。。
히로시마에서 G7 세계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이를 피해 왔다는 70세의 일본 여인을 돗토리현 미사사 온천에서 만났다。구미코 님과의 5일은 일전에 읽은 사카이야 다이츠의 <일본을 이끌어온 12인물> 중 이시다 바이간에 대해 쓴 구절들을 떠올리게 했다。
'에도시대와 다른。。。 이시다 바이간 철학을 넘어선 새로운 윤리와 미의식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제발전과 몰락을 보며 이를 경제적으로 극복해보자는 의미를 담은 듯 보인다。그래서인지 반성、사죄의 역사적 결단 따위의 글은 보이지 않았던 책、하지만 30여 년 중학교 영어선생을 했다는 구미코가 본 조국 일본은 다양한 분야에서 유명 저자 다이츠의 글을 훨씬 뛰어넘으며 나를 감복하게 했다。
다이츠와 구미코의 차이는 극히 단순한 데에 있다。솔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