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by 차쌤

6。거짓말


6-1.jpeg 미사사 온천마을의 소학교 앞


책이란 고금의 사실과 공적을 담아 놓은 것이다。독서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급히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도 책을 읽은 뒤로 미뤄야 하는 것은 행동에 필요한 가르침이 독서에 있기 때문이다。배움이 일상생활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그저 책을 읽기만 할 뿐 행동으로 그 이치에 이르지 못해서다。지혜로운 자는 지나쳐서 망가뜨릴 수 있고、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게 그 자체로 망가지게 된다。

---17세기 에도 전기 실학자 야마가 소코가 쓴 <성교요록> 중에서




“다음 버스를 타고 가시면。。。”

대담한 용기였다。더욱이 중2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더듬거리며 우물쭈물했지만 나의 이 어눌함이 그녀를 붙들 수 있었다。

미사사온천 관광안내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독일에서 왔다는 노 부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내 나이 또래 초로의 일본 여성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들과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다리 위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미사사강 노천탕에서 독일 부부가 다 벗고 노천온천욕을 즐기는 장면을 방금 전 목격했던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이들을 다시 보았고 그 일본 여성과 그녀가 들고 있는 책에까지 내 눈길이 닿아 그들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게다。잠시 대화가 끊긴 틈새에 내가 끼어들었다。

“그 책은?”

서툰 발음의 영어로 묻는 내게 되려 질문한다。

“어디서 왔느냐?”

내 대답을 듣고 화들짝 웃으며 일본의 이 작은 시골에 독일인과 한국인이? 참 의외라는 듯 놀라며 집게손가락으로 책 제목의 끝을 콕 집으며、

“lie(거짓말)!”

이라고 하지 않는가。일본이 선진국이란 거짓말! 책 제목이다。이 때 버스가 다가왔고 그 때 “다음 버스를 타면?” 내가 그녀를 붙들었던 게다。왜? 라고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 버스는 아마도 1시간 뒤 쯤 있을 테니。。。 독일인이 목욕하던 작은 노천탕이 바라다 보이는 미사사강의 널바위로 가서 우린 앉았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고 30년 영어 선생으로 재직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퇴직해。。。

시끄러운 히로시마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곳 미사사 온천에 와서 온천하고 돌아가려다가 나를 만났다。G7 세계 정상회의가 히로시마에서 열리고 있기에 시끄럽다고 말한 듯하다。다시 그 책 제목으로 말을 이어가려는데 왜 여기에 왔냐고 내게 먼저 묻는다。일본이 좋고 특히 이런 시골의 일본이 좋아서。。。 내 대답에 한국은 시골이 없냐고 되묻는다。일본 온천이 떠올랐고 한국의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과 비교됐다。한가해서 여유로운 일본 온천과는 달리 복잡해서 정신없는 한국 목욕탕。이를 영어로 표현 불가했던 나는 일본 온천을 무척 좋아한다며 다녀온 일본 온천들을 얘기했다。자전거로 석달 여행했던 큐슈에서는 매일 온천을、저 북쪽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그 아래에 니코、니이가타、일본 북알프스 알펜루트에 있는 일본 최고 높은 곳의 온천、후지산 하코네、그리고 지금 돗토리현의 미사사 온천 등등등。일본인인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여행했다며 감사하다고 들고 있던 책을 펼쳐 보였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게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일본 여성이 들고 있으니 관심을 더 끌었다。

다음 버스。。。 1시간의 동행이 예정된 우리의 인연은 일본을 부정하는 듯해 보이는 책이 맺어줬다。앞 표지를 펼치더니 일본어로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해 주는데、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사람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와 이 책이 한국에 번역돼 있다는 걸 알고 바로 구입했다。<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키타 사토시 지음。양영철 옮김。말글빛냄 출판사에서 냄)

일본은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반어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난 좋아해요。”

1시간으로는 모자라단 생각에 '다 함께'를 난 또 제안했고 그녀는 “그럼 좋지。” 흔쾌히 나와 동행하기로 했고 처음 그 한 시간은 장장 5일로 이어졌다。그녀가 이 일본어 책을 내게 선물하기에 교보문고로 확인해 보니 번역본이 한국에도 이미 나와 있기에 사양했다。고마워서 마침 갖고 있던 내 역사소설-1905년 을사늑약 당시의 역사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선물했다。

“일본여행을 나보다 더 많이 했으니 나를 안내해 줘야겠는데요?”

미사사 온천 일곱 곳을 온천순례하며 우리는 5일간 통역앱으로 짧은 데이트를 나눴다。

기시다 총리가 히로시마 G7 세계정상회의에서 일본을 피해자라고 했다며 역시 그 일본 책 제목의 한자어 '허'(탄식을 나타내지만、일본에선 거짓말이란 뜻으로 쓰인다。)을 톡톡 쳐 보이며 하는 말、

“엄연한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합니다。근데 일본인 상당수는 기시다의 말을 거짓이라고 생각 안 해요。그냥 믿어요。이게 더 문제지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뒤집어 전혀 반대로 조작하는 게 일본이고 일본인들은 그 조작을 거의 다 믿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70세의 구미코 님。

“다른 일본인과 다를 바 없었어요。더구나 교과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게 선생이고。。。 그런데 그 검정 교과서가 거짓을 가르치라 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라며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책을 펴 보이는데 소제목 <교과서검정이라는 이름의 사상통제> 이 부분이다。한국어 번역본을 그대로 옮겨 보면、


“교육 현장에 고여있는 숨막히는 공기는 교과서 통제로 이어진다。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교육 수준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교과서 검정이 실시되고 있다。그것을 통해서 특정 정당의 가치관이 학교에 침투되고 있다。그 한 예로、2007년 여름에는 일본 문부 과학성이 1945년 3월에 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이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는 표현이 사실과 다르다고 우기며 이 항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바로 여기에 일본교과서 검정의 본질이 잘 나타나 있다。선진국 중에서 이처럼 이상한 교과서 사상검열이 실시되는 나라는 찾을 수가 없다。”


이 글과 구미코 님의 말에 나는 내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사상 검열을 하는 나라로 하나 더 든다면 한국이어서다。일본과 한국이 다른 것은 일본은 자국위주의 날조라고 한다면 한국은 일본주장의 동조로써 한국의 이러한 행태는 사대를 넘어 매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매국이란 다름 아닌 남의 나라에 자기나라를 스스로 팔아넘기는 일이다。일본은 일본이 감추고 싶은 자기들의 비루한 과거에 대해 그 내용을 교과서에서 빼야한다고 일본 주류정치권인 자민당에서 이를 요구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일본은 한국에 대해 언제나 같은 말이다。“너희가 그러지 않았느냐?”

침략국 일본을 옹호하고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는 일본 땅'을 용인하는듯한 내용을 교과서에 실으라고 한국정부가 자발적으로 우리 땅을 남에게 넘겨 주질 않나、군인 교육서나 민방위교육서 등에 한국 정권이 앞서서 마치 독도가 일본 땅인 양 일본이 보도하는 독도는 일본 땅 지도를 버젓이 한국국민들에게 내놓고 교육시키고 있다。이는 또、

“너희들 스스로가 그러지 않았느냐?”

빌미 하나를 또 주고 말았다。부끄럽고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권력자들은 더 해요。아니 뻔뻔함을 넘어 수치심도 모르고。。。'

차마 이런 말을 일본 여성에게 할 수 없었다。고작 대응한 말이란、

“그래도 이런 걸 비판하고 고발하는 일본인이 있네요。구미코 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시고。。。”

히로시마는 2차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돼 많은 시민들이 죽었다。폭탄이 떨어져 폐허가 돼 흉하게 변한 건물을 지금까지도 보존해 놓고 그곳을 평화공원이라 이름 지어、아마도 패전의 역사를 일본 국민에게 잊지 말라는 뜻으로 남겨두었을 테지만 그래도 양심 있는 극소수 일본인이 있다。

“저런 공원을 세계 정상에게 보여주며 기시다가 일본은 피해자라는 그런 망언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지요。그러니 꼭 히로시마입니다。한 번이 아닙니다。기억합니다。오바마 미 대통령도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기시다와 비슷한 말、일본은 피해자。。。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전쟁을 일으킨 침략 가해자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에 다 가려진 거지요。가려진 게 아니군요。오히려 그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

이렇게 말하는 일본인 앞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까지 얘기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그리고 그 실상을 다행히 한 일본인이 알고 있기에 더 들어 보자、 하고 기다렸다。

“그 때쯤이었습니다。”

선생이었을 때다。2008년、그때 홋카이도에서 역시 G7이라고 불리는 서방 7개국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었다。영어 선생으로서 일본에서 개최되는 G7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야 했다。가르치는 과목에 관계없이 모든 선생들이 G7 홍보자가 되어야 했다。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7 국가인 일본! 중학교 1학년생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하려니 쉽게 해야 했다。G7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 일곱 개의 나라를 일컬으며 그 서방 안에 일본이 들어있으니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해야 했다。이는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교장의 교육지침에 따른 것이었다。그러나 선생으로서의 양심이랄까、학생들이 동시에 알아 둬야 할 것을 말하려니 주저했고 선생님인 내 주장을 배제하며 수업을 진행하려니 질문과 토론으로 이끌었다。물었다。선진국이란 무엇일까? 학생들의 대답은 잘 사는 것、경제대국이라고 했다。학생들의 대답에서 자문했다。그런가? 선진국이 경제규모로만 따질 일인가? 사람을 평가할 때 인성을 중시하듯 나라 역시。。。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감히 학생들에게 얘기할 순 없었다。더욱이 학교에서 돈이 최고라고 가르칠 순 없었지만 지침에 어긋나는 일이다 보니 망설였다。학생들의 대답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G7의 국가는 다 잘 사는 나라、경제규모 순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여러 평가에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의 나라들이다。이 나라들은 G7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유롭게 토론케 했지만 거의 일방적인 대화들로 일관했다。잘 사는 나라가 된 일본、서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나라이며 동양에서 유일한。。。 100여 년 전 탈아입구를 주장하던 전제국가 일본 그대로이다。중학교 1학년생들은 이미 세뇌 돼 있었다。수업 중에 바른 지식을 가르치다가 학교에서 쫓겨난 선생들이 떠올랐고 소신이나 소명감은 대의를 해칠 뿐 나 혼자 떠들어본들 무슨 소용。。。 무력감에 휩싸였다。'아는 것이 힘'이라고 누가 말했나。’모르는 게 지혜' 이것이 더 솔직한 게 아닐까。침묵으로 이에 동조해야 하는 게 선생이 할 일이라는 데에 한숨이 절로 났다。불쑥 내뱉고 말았다。나름 매우 절제된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잘 사는 것 말고도 선진국、남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느냐? 어떤 대답이 나올까 기대하며 꽤 긴 시간 동안 교실은 조용했다。앞자리의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잘 사는 국민이어야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끝내 그 학생을 성토하기에 이르렀다。자이니치라는 것。제일교포 3세이다。학생은 보통 일본이름과 달리 성은 외자여서 일본에선 생소했다。그는 전교 1등으로 성적이 월등한 학생이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너희 나라 때문에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는데。。。

모두가 다 잘 살아야 한다니?

왜 우리가 남의 나라 사람까지?

이런 성토로 학생 한 명을 전 학생이 이지메하고 있었다。그 학생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결국、

“네 나라로 가라”

라는 말까지 나왔다。수습을 해야 해서 G7이 1975년에 생겨난 배경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불과 20년 만에 일본이 서방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교육지침대로 수업을 서둘러 끝마쳤다。가끔 있는 일이고 해서 이내 잊었다。그러나 두 달 후 그 학생은 자살을 했고 남긴 유서가 문제가 되었다。유서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교장이 선생을 불러 “선생 하나 책임지고 물러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잘 처리될 것”

이라고 해서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잘 처리?” 숨기는 게 '잘 처리'라니。유서를 짐작할 수 있었다。일본 땅에서 살아야 하는 한국인、더구나 3세로 어린 나이의 중학생이 그 수업 이후로도 계속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 분명하다。월등한 성적도 이지메를 당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네가 어떻게 우리보다 더 잘해?'

그 이후 관심이 없던 자이니치에 대해、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 역사 등을 책으로 공부했다。

“국가가 저지른 일이지만 내가 죄 지은 것 같았고 왜 그 때 그 질문을 해서 분란을、그 학생의 목숨까지 끊게 만들었는지 후회가 크다。”

불쑥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 내가 제안할 때 한국인이었기에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쿠라요시역에서 그녀는 히로시마로、나는 시모이치로 떠나며 우리는 헤어졌다。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보자며 그 여자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오사카로 가기 전 히로시마에 들러 원폭 투하현장을 함께 보고 그녀와 점심 한 끼를 했다。히로시마는 10여 년 전 자전거를 배에 싣고 일본으로 건너와 시모노세키에서부터 이 히로시마까지 자전거를 몰고 온 적이 있다. 일흔 살 일본녀가 혼자 사는 집에 예순 중반의 한국남은 초대되어 두 개의 찻잔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았다。그녀가 책을 내밀며、

“이 책으로 이웃 한국을 조금 알게 됐고 조국 일본을 더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내가 대신 사과합니다。”

6-2.jpeg 미사사 노천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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