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태어났을 때 육체를 형성시켜 준 땅의 물이나 공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은 도가찌가와(홋카이도의 강)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에게조차 있는 것입니다。고향의 백양나무를 올려다 보고 눈물을 머금는 1세들의 전원 취미(깜빠닐리스모)에 대해서、2세나 3세 여러분은 추호라도 열등감을 품을 필요는 없습니다。그런 것 없이도 민족에 대한 사랑은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오히려 그런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민족을 배반하는 이들은 많습니다。본시 민족애는 틀림없이 인위적인 논리인 것입니다。
(중략)
나는 19살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온 이래 비로소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내가 경영하고 있는 <씨알의 힘> 학숙에서 나와 같이 배운 숙생들 중에는 한국인、 미국인、 유럽인 등 다양하지만 대다수는 일본인입니다。나는 한 번도 '나는 한국인、너는 일본인'이라는 마음속의 장벽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기에 적을 증오합니다。또 그러나 증오해야 할 적은 일본인 중에도 있고 한국인 중에도 있습니다。내가 진정으로 사랑으로써 뜨겁게 끌어안고 싶은 대상은 한국인 중에도 있고 일본인 중에도 있습니다。일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내 가슴 속에서 키워 왔고 이래 주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일본 상이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일본은 그것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나、정경모는 화를 내고 격분하는 것입니다。일본의 진정한 변혁을 바라는 진심 어린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프랑스의 로저 가로디가 한 말을 인용해 봅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결코 현존하는 것만으로 정립하는 것이 아니다。미래를 바라보고 거기서 희망을 볼 능력을 지니지 못한 자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에서도 일체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정경모의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이호철이 옮기고、창작과 비평사에서 냄)
단체여행을 온 서양백인 학생들과 30여 분 얘기하고 온 구미코가、
“영국에서 수학여행 왔대요。”
또 하는 말、
“저 학생들은 일본이 원자폭탄의 피해자로만 알고 있더라고요。현장을 보기 위해서 그 멀리서 왔답니다。”
원자폭탄 두 방으로 침략가해학살자는 전쟁피해자로 둔갑했다는 얘기다。
“일본인인 내가 아니다、라고 무엇을 더 얘기해 줄 수 있겠어요。이 말만 했습니다。여기서 가까운 한국도 꼭 가 보길 바란다고요。”
한국가 보셨어요?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솔직히 아는 게 무서워집니다。”
일본말로 '솔직히'는 한국말 '솔직히'와 똑같다。
진실을 알고 이를 비판하면 바로 칼로 목이 베어졌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칼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국민을 보며 스스로 만들어 간 국민인 한국인들이 떠오른다。하지만 번번이 국민을 압제하는 자들이 아직도 권력과 언론과 재력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참으로 요상한 나라、한국。。。 나도 영국학생들에게 한국도 구경해 보라고 했다는 구미코에게 이런 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더 얘기해 줄 수 있겠는가。우린 한참 동안 말을 잊었다。
오사카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할 내가 먼저 일어났다。내게 정경모님의 책 <일본에게 묻는다>를 선물이라고 준다。
“한국에도 번역돼 갖고 있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역사소설을 선물로 보내겠다고 했다。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날을 기록했던 책。하지만 1년이나 지나도 책 선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그녀가 한국어를 몰라서가 아니다。한국에서도 읽혀지지 않는 책을、한국인도 관심 없는 책을。。。 나 혼자만의 외침일 뿐인 것을。
그녀가 내게 말하며 우울한 표정을 짓던 그 때가 자꾸 떠올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자이니치 제자에 대한 기억。우리가 헤어질 때、내가 책을 들고 다시 일본에 오겠다고 하니、“아니다。 내가 가겠다。”
그 이유가 황당하게 들렸다。생선은 물론 일본의 쌀조차 이제 믿고 먹을 수 없다는 것、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뿐만이 아니란다。
“일본인들도 속았어요。”
오래 전 후지산 하코네의 온천물이 자연온천이 아니라고 양심선언했던 하코네의 한 온천주인이라든가 도요타자동차가 30여 년간 전 세계 소비자들을 속이고。。。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다。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에 다들 속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아요。이런 걸 알고 있을까요? 알고도 일본을 여행하러 올까요?”
서로 책도 선물하고 서로 여행하며 서로 오고가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가려진 진실은 소통을 잠시 잠깐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쩜 사랑일 수도 있을 인연을 그저 우연으로 스쳐 지나간 한순간이 되게 하기도 한다。한 번의 소중한 만남、일기일회는 일본 스님이 말하지 않았는가。스님도 이룰 수 없기에 소망만 얘기했던 것인가。인연을 하도 소홀히 하는 인간들을 보며 깨달으라고。。。
한국을 제대로 알게 해줬다는 정경모님의 책을 읽어가며 그녀와의 우연을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다。그래서인지 더 가슴이 아프고 찢어지기까지 하다。그녀는 이제 일흔 한 살이 됐고 나도 예순 일곱。。。。。。
가엾은 고국이여!
너 위에 떠도는 주검의 냄새는 너무나도 끔찍하구나。
총검으로 벌집 마냥 찔려서 목숨 붙인 채 불속에 처넣어진 사내들。
능욕 당하고 살이 찢기우고 내장까지 끄집어내진 여자들。
차돌 하나를 손에 든 채 목 졸려 죽은 노인들。
어린 손에 태극기를 움켜쥔 채 엎어진 아이들。
。。。。。。
바람아、분노의 울부짐으로 백두에서 불어 내려오라。
파도요、격분의 물보라로 두만강을 뒤엎으라。
오오、일장기를 펄럭이는 강도의 무리들。
나의 부모와 누이와 동지의 피로 땅을 적시고 고국 땅으로부터 나를 몰아내고서 이제 총검을 휘두르며 간도로 다가오는 네놈、일본의 군침략자들아。
이 글을 쓴 분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다。이런 강력한 메시지의 시를 쓴 한국인이 있었던가。일본이 한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침략의 마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1930년대、일본군의 총칼을 시로서 막아보려 했던 일본인、마게무라 히로시는 1938년 끝내 일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그리고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1980년 한국 땅에서 한국인의 총에 한국인이 무참히 학살된 현실을 보았다면 마게무라 히로시는 또 한 구절의 시로 피를 토해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일본군인들이 아닌 한국군인들이?'
몇 년도 아닌 불과 며칠 사이에 광주에서도 총으로 벌집이 된 사내들、능욕 당하고 내장까지 끄집어내진 여자들、차돌 하나를 손에 든 채 목 졸려 죽은 노인들、태극기를 움켜쥔 채 엎어진 어린 아이들。。。
9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외침이 들려온다。여전히 바뀌지 않은 세상이기에 그의 외침은 현존한다。역사를 청산하지 않아서다。적폐들을 척결하지 못해서다。그들은 남아 더 악발이 되어 언론과 정치 등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인 마게무라 히로시는 일본과 한국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바다를 넘어 우리、손과 손을 서로 잡고 일어나자。인터내셔널、우리들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