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3년 8월、백제를 구원하고자 백제 부흥원정군으로 파견된 하고 지방관 미타니는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보답으로 절을 지을 것이라 약속했다。다행히 돌아온 그는 백제 승려 홍제선사를 초청하여 약속대로 미타니 절을 지었다。
절에 모실 불상을 구하러 상경(당시 일본의 수도는 나라이다。)한 홍제선사는 한 나루터에서 팔려 죽게 될 거북이 네 마리를 사서 모두 방생하며 살려줬다。불상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해적을 만난 선사는 바다로 뛰어들라는 해적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깊은 바다로 빠져드는 순간 바위 같은 딱딱한 물체가 발에 닿는 걸 느끼고 의식을 잃었던 선사는 깨어 보니 거북이 등 위에 올라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해안에 도착한 후 거북이는 선사에게 큰 절로 인사하고 바다로 돌아갔다。바닷가에 지은 미타니 절에서 백제 승려 홍제선사는 88세까지 살며 자신의 거북이 경험을 담은 인과응보의 불교를 가르쳤다。
'짐승도 은혜를 갚건만 하물며 인간이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는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설화집 <일본 영이기>에서
일본에는 바람과 언덕이 담긴 지명이나 명소가 많다。바람 많고 산이 많은 섬나라여서 일 것이다。돗토리현에도 '바람의 언덕'이란 곳이 있다。이 곳에 일한(한일)우호교류공원이 있다。안내 팸플릿 표지의 글이 눈을 끈다。
'일본과 한국의 우호함성을 바람에 실어'
그 글귀 옆엔 조선인 11명을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그 아래엔 우호대라는 육모정과 그 뒤로 바다(동해 또는 일본해)가 담긴 사진도 보인다。
공원이 생겨난 사연인 즉、1819년에 조선 울진군 평해(강원도에서 경상도로 편입) 땅을 출발한 배가 표류、일본 땅인 이곳 '바람의 언덕'으로 밀려왔다。12명의 조선인 선원은 일본인들의 보살핌을 받고 고국 조선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이 역사적 사실은 돗토리현립도서관에 보존돼 있다。또 최근 1963년에도 부산항을 떠난 배가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역시 이 곳에 닿았다。이 때에도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돈으로 배를 수리해 주었고 그 배를 타고 고국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이를 기념하여 바람의 언덕에 일한우호교류공원을 조성했으며 1997년 이후 일본의 돗토리현과 한국의 강원도 인제군은 문화 및 경제교류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돗토리현의 여러 도시들이 한국의 다른 도시들과도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왕래하고 있다。
도로 휴게소와 주차장으로도 쓰고 있는 일한우호교류공원엔 한국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정감 어린 조각들과 전시물로 매우 잘 꾸며져 있다。1819년 당시 조선의 배 모형도 볼 수 있다。일본인 전통공예가가 역사사실을 고증해서 제작한 조선의 배이다。보는 순간 여러 번 간 적 있는 울진에서 이런 기념비나 공원을 본 적이 있나? 내 기억엔 없다。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이러한 공원이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짐승은 은혜를 갚건만 하물며 인간이 은혜를 잊어서야。。。'
이 곳에 한해선、 은혜를 입은 건 한국이다。은혜를 베푼 건 일본이다。또 이런 말이 들리는 거 같다。 베푼 쪽에서 이를 자랑하기 위해서?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지금 2024년과 달리 1990년대 말은 세계 경제 2위의 강국 일본이었다。
돗토리시 가초의 샨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타마추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일본엔 한국과 관련된 이런 곳들이 무척 많다。”
그는 오토바이를 몰고 일본 전국을 여행하고 있었다。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 일한우호교류공원을 내게 알려 줬고 어제 그 곳을 지나왔다고 했다。다시 그의 말이 생각났고 10여 년 전 자전거로 달리던 일본 규슈의 작은 시골 마을 아리타에서 정말 우연히 엄청 키 큰 비석과 마주쳤다。그 크기에 놀랐다。
'일본의 도조 이삼평'
비석에 새겨져 있는 글자、바로 알 수 있었다。도조는 도자기에 시조이다。즉 일본의 도자기 시조는 이삼평이란 것이다。이삼평、한국식 이름 그대로 새겨있는 비석이 세워진 연대를 보니 1914년、일제강점기 때 식민지의 나라 사람을 위해 세운 기념비라니? 더구나 이삼평은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지 않고 조선 이름을 그대로 썼다。이삼평、천황(일왕)、일본 교육계 원로와 함께 세 명의 신을 모신 신사의 제일 높은 위치에 이삼평이 자리하고 있다。신사는 온통 도자기 조각품으로 가득했다。그의 무덤도 찾아가 봤고 그의 14대손이 운영하는 도자기 상점에선 이삼평의 14대손의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삼평은 정유재란(1597년) 때 퇴각하던 일본군인들의 길앞잡이로 남원에서 붙잡혀 일본 아리타에까지 끌려갔다。아리타에서 백자의 원재료인 고령토를 발견、그 흙으로 백자를 일본 최초로 빚어냈다。그래서 일본인들로부터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더 뜻밖인 것은、그 고령토는 발견자인 이삼평의 것으로 그 가족이 무기한 물려받게 했다는 사실이다。이삼평은 전쟁의 노예에 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듣고 자문했다。그 유명하다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도예가 이름을 한 분이라도 알고 있니? 나만 모르는 게 아니다。역사기록에 없다。아리타는 매년 4월에 도자기 축제를 여는데 일본 3대 도자기로 유명하다。유럽에서 더 유명하다。아리타 도자기 박물관엔 이삼평과 그 이후의 옛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박물관은 작지만 모두 보물급 도자기들이다。
왜 우리는 갖고 있는 보물(사람 포함)조차 보존、 보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에서 더 대접 받아야 하는가?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하는 차이가 매우 크다。
“한국은 1등만 기억하고 추종하지만 일본은 2등이나 그보다 못한 사람들도 매우 존중합니다。”
외국인 스포츠해설가의 말이니 운동선수에 대해 한 말이겠지만 어디 스포츠에서만 그런가。1등만 추종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 나머지는 다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역사적으로 통일이라는 것이 그렇다。그런데 그 1등마저도 공정하느냐? 그것도 아니다。불법 탈법 편법이든 과정은 따지지 않고 오로지 1등만 하면。。。。。。 이런 것이 팽배한 세상이 한국이다。기자였던 내가 많은 분야에서 이를 목격했다。
일본을 돌아다니고 하나하나 알게 된 것은 일본이 결코 평등한 사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오히려 그 반대다。정치인은 몇 대에 걸쳐 세습되고 약자인 여성은 남성에게 거의 굴종하고 산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
가해자에서 나올 말이 피해자 입에서 나온다。성폭행 당한 일본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그녀들은 한결같이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가족 내 폭력은 물론 직장에서의 여성하대를 넘는 성추행이 만연해도 이를 고발이나 고소하지 못하는 일본 여성。여성만이 아니다。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일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허약하게 태어나면 이런 자식을 부모가 죽여도 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를 일본 사회가 용인했다。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극히 일부분만 지적했지만 분명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이런 면에서 인권 후진국임이 분명하다。그런데 능력을 평가해 주는 데에는? 내 기준이지만 별별 것 없는 사람이나 작품까지도 키워주는 나라 일본을 보며 '이것도 국민 관리의 하나?' 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철저한 국민관리 통제국가인 일본에 대해 부럽다기보다는 제 능력을 평가 받지 못하고 평가하려 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안타까움이 앞선다。문화이든 사람이든 가치인정에 관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보자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