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by 차쌤
1-1.jpeg 돗토리 백토공원

1。인연




하늘나라에 세 마리 동물이 있었다。여우와 원숭이 그리고 토끼。이들은 이승에선 다 사람이었지만 인과응보로 저승에선 동물로 태어났다。다음 생엔 반드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다짐하는 걸 본 노인이 힘이 얼마나 절실한지 보기 위해 시험했다。

“먹을 것을 줘서 나를 보살펴 달라。”

고 노인은 이 세 동물에게 애원했다。여우와 원숭이는 당장 노인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하지만 토끼는 먹을 것을 찾지 못했고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며 불을 지핀 뒤 노인에게 말했다。

“저를 이 불에 구워서 드십시오。”

하며 불에 뛰어들었다。원래 하늘의 신인 노인은 이를 보고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는 달나라로 토끼를 보냈다。이후 이승의 모든 사람들이 어둠(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달을 우러러보게 했고 그 안에서 토끼의 진심 어린 용기도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했다。달에서 토끼를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달 속의 토끼를 보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게 되니。。。

---일본 최대설화집 <곤자쿠 모노가타리>중에서


시로이사기(하쿠토신사/흰 토끼 신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니 동해의 바람이 내 가슴을 맞아준다。일본인들은 일본해라고 부르는 바다。'철썩'하고 대답하는 잔잔한 바다는 아마도 '아무렴 어때'란 듯 무심하게 넓디 넓다。눈 아래로 펼쳐진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10분 쯤 걸으니 사람들이 모여 있다。눈 앞 그리 멀지 않은 바다에 바위섬이 보인다。다들 그 작은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육지와 바위섬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작은 바위들이 놓여 있다。변하기 전에는 고래등이었다는 바위들。일본은 작은 마을 어디에도 전설과 신화가 넘쳐난다。섬나라여서 일까。제주도나 남해바다의 섬들에도 전설이 많은 것처럼。너무나 흔해 '또?' 하고 흘겨 보내려는데 돗토리역 앞 동상이 떠올랐다。한 남자와 토끼。그리고 돗토리에서 유명하고 일본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작은 흰 토끼 빵。카스테라와 오방떡을 연상케 하는 우리의 풀빵 같은 것이지만 모양이 토끼다。포장이 화려하고 그래서 꽤나 비싸다。이 풀빵이 흘겨들은 신화를 더듬어 보게 한다。

아픈 토끼가 있었다。바위섬으로 건너가지 못 하고 안절부절하는 토끼를 바닷속의 고래들이 보고 등을 내줘서 징검다리를 만들었다。건너온 토끼는 여기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뻔한 스토리。。。 이래서 이 곳을 연인들의 성지、인연을 맺게 해주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이와 유사한 전설은 일본 최초의 역사서、고사기의 건국 신화에도 있다。)

육지와 바위섬을 이어 주는 듯해 보이는 몇 개의 작은 바위들이 만들어낸 신화려니。오던 길을 되돌아 길 건너 하쿠토(시로이사기)신사로 향했다。계단 옆으로 실제 토끼 만한 흰 토끼 돌조각상들이 도열해 관광객을 맞이한다。이 토끼상들 주변에는 한자 연(인연 연)이란 빨간 글자가 찍힌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흰돌들이 가지런히 쌓여있다。희망을 담아 쌓아 올린 돌무덤、우리의 서낭당으로 오르는 길목의 큰 나무 옆에 치성을 드리며 쌓은 돌무덤과 같다。맺고자 바라는、또는 맺은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작은 흰돌에 담았으리라。그런데 젊은이보다 노인、것도 여든도 훨씬 더 된 노부부들이 많았다。연인의 성지라면 젊은이들이 많을 듯한데。。。 가파른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는 노 부부의 뒷모습에 가슴이 더 진하고 멍하다。부부의 연으로 맺은 5~60년의 정분이 내게로 옮겨온다。과거들을 돌아보며 찾아온 노부부들 때문에 단아한 흰토끼 신사가 더 정겹다。

신사 길 건너 휴게소에서 노 부부들 중 한 쌍을 우연히 만났다。동행한 일본 여성、유미코가 통역해서 알게 된 사실。66년 전에 결혼했고 이제 저승으로 또 함께 가게 해 달라고 이혼하러 왔단다。이승은 물론 저승으로 이어질 인연을 고대하는 80대 후반 노 부부의 표정이 참으로 천진난만해 보여 어린애와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 절로 든다。저승에서 다시 어린 친구로 만나。。。。。。 상상도 자연스럽다。

문득、 한국에선? 한국에서도 노 부부들의 동행을 종종 본다。그러나 그들을 보며、'50대 이상의 남녀가 손 잡고 가면 불륜일 확률이 높다。'라는 농담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농담 같지만 진담으로 들리는 것은? 살고 있는 남원의 광한루가 떠오른다。춘향이와 이 도령이 만나 사랑을 나눈 곳、이곳에도 사랑을 담은 많은 열쇠들이 걸려 있다。인연의 정원이다。하지만 대체로 단체 손님들과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간혹 중장년에 짝들도 보지만 돗토리의 하쿠토(시로이사기/흰 토끼)신사에서 보았던 80대 노부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남을 의식하는 한국문화의 하나일 것이다。그 나이에 손 잡고 다니면 오히려 욕을 먹는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밤하늘을 본다。보름달은 아니어도 토끼의 긴 두 귀를 보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본다。<곤자쿠모노가타리>의 달나라 토끼로 그린 그림이다。

역사 기록으로는 서기 700년대부터 전래된 수많은 일본설화와 일본의 소설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묻는다。서기 700년대는 백제인들이 대거 일본 땅으로 넘어간 때이다。삼국유사나 민담으로 전해 오는 전설이나 설화가 우리나라에도 많다。하지만 모아놓은 게 따로 없어서인가 설화집이나 옛 소설집이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더구나 일본에 비하면 시기적으로도 꽤 늦다。조선 초기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한국 최초의 소설로、한글로 쓴 최초의 소설로는 허균의 <홍길동전>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한국에 대해 많은 걸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움찔해지고 만다。

마침 뉴스를 본다。일본이 에도 시대에 고려의 팔만대장경을 복제해 인쇄해 간 것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분명히 고려를 명시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나라 것을 일본、 자기 나라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기록으로 후세에 남기려고 하는 열정에는 고개가 숙여진다。우리나라는 수차례 우리의 역사책을 태워 없앴던 적이 있다。한국에는 거의 없는 백제의 유물들이 일본에 매우 잘 보관되어 있다。보존보다는 말살을 일삼았던 현대의 한국 정부 행태를 보면 한국의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을까。역사책만이 아니다。그 내용을 들어가 보면 더 한심하다。있는 한국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없애 버리고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역사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친일사학이라고 한다。마땅히 지탄을 받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주요 대학강단을 장악하며 역사 왜곡 또는 거짓날조에 앞장서고 있다。강단사학이다。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하나라도 있을까? 사대를 넘어 민족비하이다。남이 아닌 우리가。。。 대부분 자기나라 역사를 과장을 한다。적어도 축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스스로? 독도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한 달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작은 마을에도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00년 전、바위틈새로 도망치는 자라를 잡으려고 파 들어간 바위에서 샘물이 솟구쳤고 그 샘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그래서 마을도 생겨났다。자라마을이다。일제강점기 때 순한글 이름의 지명들이 일본식인 한자로 다 바뀌면서 오촌 마을이라고 부르게 됐는데 오촌의 '오'는 자라 '오' 자다。그런데 지금은 그 한자마저 어렵다하여 다섯 '오' 자로 바꿔 쓰고 있다。전설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여기 사는 여든 넘은 어르신들은 자라마을의 전설에 대해서 안다。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4~50대의 그 자식들이나 그 손자들은 자라마을이란 이름조차 모른다。400년 전 자라로 인해 생긴 샘물은 갈수 때든 홍수 때든 무관하게 1년 내내 일정량의 물이 지금도 솟구치고 있다。불현듯 일본 돗토리의 명물이라는 풀빵 같은 흰 토끼빵이 생각난다。우리 마을、이 도시 남원에도 자라빵이 있다면。。。 상상만 할 뿐이다。남원시청 문화 담당공무원에 '우리 남원의 전설들을 살려 보자' 제안했지만 대답조차 주지 않고있다。춘향이만으로도 충분해서일까。

100원짜리 동전 모양 풀빵이 미국 뉴욕에서도 유명하단 뉴스를 본다。그저 동전일 뿐인데 하물며 전설을 품고 있는 자라빵이라면? 다시 일본 돗토리의 토끼빵이 생각난다。

포장과 치장에 매우 능한 대해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편인 내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한국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포장과 치장은 문학 등 예술에서도 나타나 각종 모노가타리(=이야기)들이 많은 나라、일본。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발전시켰다。

고려의 팔만대장경 인쇄본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일본을 보며 비판하거나 욕하기보다 먼저 우리 것을 우리 스스로 무시하고 비하하는 우리의 비틀어진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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