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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Aug 16. 2022

2022년 8월 15일

비정기 발행 _ 도서관 일기

  지난 8일에 중부 지방에 내린 큰 비로, 내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이 물에 잠겼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투모로우>도 아니고 <해운대>도 아닌데, 도서관이 물에 잠기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지만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쳤음에도 물에 잠긴 도서관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보면 이건 틀림없는 현실이다.


  우리 도서관의 직원들은 도서관을 참 좋아했다. 퇴근을 하고도, 쉬는 날에도, 도서관에 출석 체크하듯 나와서는 근무하는 직원들 근처를 알짱거리며 '함께 점심이나 먹자'며 실실 웃는 일이 잦았다. 도서관이 물에 잠겨버린 지금도 직원들은 우리 도서관을 참 좋아한다. 휴무인 직원이 전기와 수도 시설이 파손되어, 에어컨도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는 도서관 앞을 알짱거리다가 일손을 돕고 다시 집으로 가곤 하니까.


  그사이 우리 도서관은 개관 이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도서관 인스타그램은 며칠 사이에 팔로워가 300명가량 늘었다. 포털은 물론 거의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리 도서관의 침수 사진이 올라갔다. 우리 도서관 연관 검색어에는 '침수' 두 글자가 추가됐다. 우리 도서관 침수 상황을 담은 트위터 게시글 하나가 며칠 새 1만 3천 건이나 리트윗 되었기 때문이다. 이 숫자는 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우리 같은 작은 도서관 소시민들에게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대다수가 내향성을 띄고 있는 우리 같은 집단에게 이런 유명세는 별로 와닿지 않으면서도, 부담스럽고 두렵다.


  어쨌거나 요즈음 우리의 소원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소소하고 적당히 사랑스럽던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휘발유 기름 냄새와 양수기의 매연과 지하에서 올라오는 쿰쿰한 곰팡내, 하수구 냄새, 흙 썩은 냄새, 젖은 시멘트에서 올라오는 기분 나쁜 습기, 덜 마른 책의 묵직함, 습하고 깜깜하고 후덥지근한 공간 속에 땀과 흙탕물로 젖은 인간의 느적느적한 걸음걸이, 따라오는 젖은 장화 소리, 지상 일층부터 삼층까지 우우웅 하고 내 머리 속도 함께 울리는 발전기 소리, 실내에서 들리는 지친 콧바람 소리, 지하에서의 힘든 작업 탓에 울리는 남자 어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현장 사진 찍는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어머머머, 깊은 한숨 소리 … 뭐 이런 거 말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공기와 아이들의 작은 신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와 전화벨 소리와 이용자들을 안내하는 명랑한 목소리 … 그런 것들이 있던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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