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때는 13년 전, 이제는 많이 미화돼버린 군대 시절이 나에게도 있다. 훈련이고 뭐고 평생 손빨래나 화장실 청소 등 집안일은 거의 안 해보니 군 생활 하나하나가 평탄하지 않았다. 이등병때는 걸레질하다가 무릎을 다친 적이 있다. 고참들은 요령이 없어서 다친 거라고 했지만 지들(?)한테 안 혼나려다가 다친 건 모를 거다. 다행히 단순 타박상이라 의무실에 입원하면서 일주일간의 꿀 같은 시간이 있었다. 고참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만큼 좋았던 건 눈치 안 보고 외부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름 집에 꼬박꼬박 전화를 자주 했었지만 아파서 입원했다느니 걸레질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느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집에 걱정 끼치는 게 싫었고 의젓해 보이고 싶었다. 나름 그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단지 군대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라 누군가를 걱정해봤다면 누구나 해본 고민이다. 걱정 끼칠까 봐 얘기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혼자 안고 간다. 그런데 혼자 갖고 있다가 곪아 터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인내의 상황이 있다.
얘기해서 좋을 게 없는 일도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도 엄청나게 큰 용기다.
힘들 때 참기만 한다고 성숙한 게 아니다. 물론 힘듦은 자극과 발전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아파하진 않았으면 한다. 서른 살이라고 모두가 어른이 아니라 나의 나약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모두가 강할 필요 없고, 항상 듬직할 수도 없는 것처럼, 나약한 모습이 솔직한 나의 모습이고, 그 모습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고 나쁜 게 아니고, 빚을 지고 갚으며 살며 또 누군가를 위로해주면 된다.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