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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ese Dec 08. 2023

왜 나는 힘이 드는가, 출산 이후 삶바뀜에 대한 고찰

2023년 7월 21일, 아기를 낳았다. 출산하기까지 지난한 난임 과정을 겪었고, 기다렸던 것 이상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기와 만났다. 임신 상태에서도 나는 그리 크게 탈이 없었는데, 수술로 만났으니 산고도 딱히 없었다. 아기는 건강했고 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했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신생아를 키우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힘들다기보다는 어려웠고, 그로 인한 심신의 불안정은 시간이 해결해주니, 솔직히 할만 했다. 이정도만 어려우면 만나는 아기라면, 나는 몇 번이고 출산할 생각도 들었다(실제로 일년만 지나면 둘째를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다). 아기는 너무 잘 커나갔고, 그런 아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다. 문제는 없지 않았지만, 다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142일. 아기와 함께 한 시간은 더할나위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의, 사실상 그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고 내 스스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될 것들-실질적인 어떤 문제든 고비나 프로젝트든 감정적인 무엇이든간에-이 발생하고 있다. 이 무언가들은 공통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메세지를 품고 있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본래 습성을 유지하면서, 아기를 만나기 이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고. 그래서 내 심리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나는 원래도 일을 한번에 다섯개씩 진행하는 허슬러인데, -물론 출산 이전에도 나에게 굉장히 버거운 것들이었지만- 어쨌든 해냈더랬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담았던 말이 "뭐 어떻게든 다 되더라."였다. 되돌아보니 나는 그런 나에게 나름대로 만족했던 것 같다. 마감이 겹쳐서 죽을 것 같더라도, 안 죽고 다 얼추 했더랬다.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고, 밤잠을 줄이면 됐다. 


물론 출산과 육아가 무섭고, 이전에 경험하지 않았으니 불안하고, 그 어떤 일보다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 각오는 얼추 했었긴 했지만, 솔직히 정말 솔직히 '이번에도 어떻게든 다 되지 않을..까?' 했던 것도 조금은 있었다. 질러놓으면 어떻게든 하는 걸 보니, 이번에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거다. 그래서 올해 초에 늘려놨던 일들이 출산 후 100일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뭐 그리 크게 걱정하진 않았더랬다. 


그런데, 아니다. 진짜 아니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 정확하게는 아기를 키우는 '주양육자'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굉장히 묵직하고도 대단한 크기의 변화를 '반드시'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밤잠을 줄이면 되지? 다섯시에 일어나고, 네시에 일어나도, 아기가 중간에 깨면 그냥 도루묵이다. 아기가 깨어있을 때에는, 아기에게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렵다. 어디 잘못될까봐 다칠까봐만 그런게 아니다. 내가 제대로 안 놀아주면, 그러니까 이 아이에게 지금 이때 "필요한 자극"을 제때 주지 못해 발달상 문제가 생길까봐, 교육이 더딜까봐 그럴 수가 없다. 그럼 낮에 아기 낮잠잘 때 집중? 우선 아기가 낮잠을 자주질 않는다. 삼십분 쪽잠자고 깨고, 혼자 뒤집고 운다. 아울러 나에게 주어진 그 삼십분조차 나는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 아, 집안일도 둘이서 살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매일의 아기 빨래, 계속되는 설거지와 젖병 소독, 소독제로 아기 장난감 닦기, 먼지가 쌓이면 안되니 청소 청소 청소. 


그렇게 밤낮으로 아기랑 씨름해야만 하는게 부모고, 그러다 보면 하루종일 비실대느라 '원고를 쓰는' 행위는 정말 쉽지 않다. 논문 읽다 계속 졸고 있더라니까. 산후 조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예전으로 몸이 돌아간다'는 게 아니라 더 악화되는 걸 막는 정도였다. 손목은 너덜하고 등은 매일이 결리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침과 저녁나절에는 잘 걷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거다. 나는 아기를 낳고, 아기도 나도 '건사'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건사함에는 나만을 위한 욕심에 해당했던 부분은 다 차순위로 미루어야 한다. 그게 맞다고 한다. 여기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벌려진 일들이 정말 '나만을 위한' 것들인가에 대한 갈등이다. 우선 경제 행위를 하기 어려운 아기가 태어났고, 가계 재정은 계속해서 어려운 상태다. 일을 관두기는 어렵고, 관두고 싶은 것도 아니다. 물론 후자가 그 일을 하게 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관두기 어려운 상황 역시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일을 계속 확장해야 하는 것에는 전자가 훨씬 더 강한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나의 '일'은 버거워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우리의 가계 때문이다. 나는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키우는 주양육자이며,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출근하는 상황이 아닐뿐이지 나는 계속해서 책을 쓰고 일을 한다. 실제로 경제활동 중이다. 다만 이 와중에 나는 학위논문도 써야 하고, 연구도 계속 해야 하며, 책도 읽고, 복직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반드시 겪어야 한 이 변화는 그러니까 나를 송두리째 바꿀 수 밖에 없는 그런거다. 나라는 사람에게 엄마라는 역할지위가 추가된 것은 그런 의미다.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이미지가 되었고, 그것이 가장 1순위의 역할이 되어야만 했다. 그게 싫다 힘들다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일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나의 미래를 욕망하는 것을 가장 말단에 두어야 한다. 쉽지 않은 마음 바뀜이지만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는 뭐냐.


왜 저 친구는 바뀌는 게 없지. (한 것도 크게 없으면서) 저렇게 예쁘고 소중한 아기가 떡하니 생겼는데. 다.

나를 교묘하게 갉아먹는 부정적인 마음은 여기서 기인한다. '나는 변했는데, 쟤는 안 변한 것.'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이 변화는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내 인생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존재가 태어났고, 나는 평생을 다 바쳐 이 아기에게 헌신할 의지가 있다. 일이 많고, 자아실현 욕구를 가장 후순에 두어야 하는 것도 오케이. 몸이 천근만근인 것도 뭐 노산이니 어쩌겠냐 내 몸뚱아리가 그모냥인 건데 받아들인다. 참아내고 살아갈 수 있다. 그만큼 저 아기와의 만남은 행복이니까. 


아니 그런데 왜 아빠는 행복만 한 것 같냐고. ㅠ 친구 못 만나는 게 아쉽다고 말할 때 왤케 열받지. 그게 아쉬울 건덕지나 되나? 나는 온 몸이 두드려 맞는 것 같은데도 아기를 안고 있고, 밤을 새워 원고 마감을 지키고도 하루종일 아기와 웃으며 놀아줘야 하는데. 어 그래 나 지금 생짜 비교하는 거다. 내 상황과 저 친구의 상황을. 아, 아마도 나는 개인적으로 '육아'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고 기쁘기만 한 일이라 생각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아기랑 함께 있는 건 그냥 좋은 일인데, 저 친구에게는 저 좋은 일만 늘어난 것 같은, 임신도 출산도 수술도 산후통도 다 내가 했는데 육아로 인한 "삶바뀜"조차 다 내 몫인 것 같아서. 그게 제일 나를 비뚤게 만드는 거다.


오늘은 1월에 식박에서 여성사 연수가 있다는데, 세상에 이렇게까지 강사진이 훌륭할 수가 있다니 너무너무 듣고 싶었더랬다. 근데 나는 갈 수가 없어. 아침 열시부터 열여섯시까지 평일 3일. 나는 집에서 아기를 만나야만 하는 시간이고, 그 와중에 일도 해내야 하는 시간인데, 저 연수는 나의 '욕심'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물론 남편도 일하느라고 욕망하는 모든 것들을 차차차차차순으로 미뤄야 했을거다. 안다. 저 친구가 잘못한 것도 저 친구가 문제인 것도 저 친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도 다 안다. 


그런데도, 솔직히 마음이 힘들다. ㅋㅋ 이성적으로 아는데도 감정적으로 힘들다(F라서 그런건가ㅋㅋㅋ). 커피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책 한 장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 게 참 쉽지 않다. 내가 놀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 필요한 공부라서 배우고 싶다는 건데 그건 진짜 쳐다도 못 볼 욕망이라서 서럽다. 옹졸한가? 아니 이건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거 같아. 나는 그나마 남편이 주말에 주양육자를 자처해주고 있고, 엄마가 계속해서 도와주고 계시니 망정인데, 만약 매일같이 독박육아하는 분들은, 어떻게 이 미묘하고도 졸렬한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빡침을 견디시는 거지. ㅠㅠ 어데 말하면 다 똑같이 답한다. "그래도 네 남편은 진짜 대단한 거다. 너 힘들어하면 안된다. 니 상황은 진짜 좋은 거다." 아니 근데 나는 힘든데요. 양육하며 일 버겁게 벌려 하면서 공부하는게 진짜 좋은 상황인거면, 사람들 진짜 출산한 사람한테 다들 너무 함부로 하고 있는거다. 내가 이렇게 졸라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힘들다는 거잖아. 


결론은, 나는 왜 힘이 드는가. 결국 마음 문제인데, 내가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서 힘들다. 남편은 내편이고, 아기도 사랑이고, 내 상황에 비해 힘든 분들이 많은 것도 알겠는데. 뭐 그게 뭐.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에게 엄청난 "삶바뀜"이 생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남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애 아빠'와의 비교로 인해 '화'가 발생한다는 거다. 여기서 그 화를 심화시키는 요소는, 그 미묘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기에 '적확한' 곳이 없다는 것. 나는 내 남편에게 승질내는 것으로 울분을 삭히는 편인데, 왜냐하면 마음을 다스리는 게 진짜 개 힘들어서 어따 화는 내야겠는데 마땅한 곳은 없고 만만한게 애 아빠라 그렇다(왜 부부들이 애 낳고 싸우게 되는지 이제 좀 알겠는 것ㅠ). 그리고 이게 남편을 향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도 나를 힘들게 하는 포인트. 내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 그냥 듣고 있는데, 저번에는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가 나의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뭐 "이번에도 지나가겠지." 결국은 이럴 수 밖에. 나는 나라는 사람을 굉장히 믿는 편이고, 그것이 나를 좀 더 나아가게 만들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다만 지금이 힘들 뿐, 아마도 현명하게 잘 해쳐 나갈 것이다. 이 글도 오늘 낮에 발생한 전무후무한 크기의 '화'를 누르기 위해 그냥 생각 가는 대로 막 써내려간 거다. 괜찮지 않나? 방금 남편한테도 자랑했다. 타자를 다다다 치면서 오늘 생겼던 이 짜증을 풀어내고 있다고. 누가 "아기 키우며 힘들면 어떻게 했어?" 묻는데 "어 나는 글로 힘든 걸 좀 풀었어." 오오오- 괜찮지 않나? 간지나잖아.


진반 농반이고. 어쨌든. 누군가, 주변에 출산 이후 삶의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을 초보 엄마를 만나게 되면, 다들 그냥 좀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너 진짜 잘하고 있다, 엄마이자 사람으로서 네가 성장하고 있는 지금을 응원한다, 힘들겠지만 결국 지나가니 몸 건강을 챙겼으면 좋겠다. 뭐 그런 '그 분'에 대한 따듯한 말을 좀 해줬으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오롯이 자기 몫이라 (나와 유사한 상황이라면) '엄마가 된 그 분'은 참 힘들거다. 몸도 맘도 약해진 상태에서 생기는 저 쬐깐한 질투가 굉장히 치명적이더라. 나를 좀먹는 저 흑심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그런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하며 토닥토닥 해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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