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방법 4
내가 페이스북 1세대로서 팔로워 1,000만 페이지까지 키우게 된 배경에는 초기선점의 법칙이 있다. 새로운 매체나 플랫폼이 오픈됐을 때 먼저 가서 선점하고 자리를 잡으면 후발주자가 들어오기 쉽지 않다. 유튜브 역시 전과 달리 구독자를 모으기 쉽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치다.
하나를 파면 끝을 보는 성격인 내가 지난해 가장 열정을 쏟은 곳은 클럽하우스다. 앱 가동시간을 살펴보니 24시간 중 무려 21시간을 이곳에 쓰고 있었다. 잠도 안 자고 그러고 있었으니 설날에 가족 여행을 갔다가 고열로 먼저 집에 돌아오게 된 것도 예정된 수순이겠다.
오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클럽하우스는 특성상 자신이 가진 인사이트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말을 잘 한다고 했지만, 난 ‘뷰티’라는 한 분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사, 경제, 문화, 사회 같은 다른 카테고리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뷰티 이외의 이야기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4월 즈음인 것 같다. 라이브 커머스로 성장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표정과 전달력이 좋은지 물었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타고난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연습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뒤에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는데 그분이 지난 1년간 나를 성장시키는 데 원동력이 된 박선선 톤앤스피치 원장님이다.
설렘과 호기심을 잔뜩 안은 채 원장님을 만나러 갔다. 첫인상은 친절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 둘이 공존하기 쉽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두 가지 테스트가 내려졌다.
테스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됐고, 그 영상은 내게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동안 내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던가? 자신감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에 표정은 무표정. 게다가 전달력도 떨어지고 저기 가서도 ‘클린 뷰티’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이 말했다. “진호 씨는 스피치가 문제가 아니에요. 왜 그렇게 정리가 안 돼 있어요? 무슨 일 있나요? 말해봐요.” 이 질문을 받고 처음으로 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 사업하면서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족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내 사업은 계획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중산층 자제로 태어나 뉴욕에서 지내며 아쉬운 것 없이 공부했고, 매달 꼬박꼬박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하지만 2013년 여름, 집에 큰일이 들이닥치며 지원이 끊기게 됐다. 난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아침저녁으로 나눠 먹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10kg이 빠져있더라.
절실했다. 당장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학교에 다니는 와중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있는 친동생과 함께 장난감 유통 쇼핑몰을 창업했고, 난 매일 혼자 7번 트레인을 타고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 플러싱 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장난감을 사고 한국으로 부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부모님을 원망했다. 장난감을 사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리고 어리석었다. 그래도 동생과 조금씩 부모님의 빚을 갚아나갔고, 이후 집은 그럭저럭 회복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가족에 대한 벽이 점점 생겨났다.
대인관계라고 다를 리 없었다. 남들 눈에는 쾌활해 보이지만, 사실 내 대인관계는 ‘생존’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을 만나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키우고 싶었으니까. 뷰스컴퍼니 직원들 역시 또 다른 가족이기에 그들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원장님을 처음 만난 그날, 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드래곤시티호텔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드래곤시티는 뷰스컴퍼니의 연계 호텔이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쉬고 싶었다. 근데 그날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다. 난 쉬는 방법조차 몰랐던 거다. 거울을 보니 혈색이 좋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가장 중요한 건강도 지키지 못했다. 돌이켜 떠올리니 지금껏 연차 한 번 쓴 적 없는 나였다.
그 이후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박진호라는 사람과 뷰스컴퍼니 대표 박진호는 같은 사람이지만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이 두 개의 자아를 분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난 스스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거다.
스피치를 배우러 갔다가 진짜 나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됐다. 스피치도 스피치지만, 인간 박진호가 관심 있는 건 무엇인지, 어떤 음식과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모든 색의 옷을 사서 입어보기도 했다. 베이지색이 예뻐 보이더라. 베이지색만 입는 이유도 사실 여기서 나왔다.
어느 날은 창밖을 보는데 처음으로 벚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왜 봄만 되면 벚꽃을 보러 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시간 낭비로 보였다. 하지만 인간 박진호의 눈으로 바라보는 벚꽃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어릴 적 벚나무가 가득한 워커힐 근처에 살았음에도 그 진가를 몰랐던 거다. 다시 이곳을 거닐어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행복하다’라는 기분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난 매주 화요일마다 박선선 원장님을 만나러 간다. 하루 2시간을 투자해 원장님께 스피치를 배운지 어느덧 1년째다. 2021년의 박진호와 2022년의 박진호는 완전히 달라졌다.
난 2022년 포브스가 선정한 2030 파워리더다. 작년에는 클럽하우스에서 뷰티 인사이트를 나누는 클럽을 꾸준히 운영했으며, 현재는 포브스 코리아에서 ‘박진호를 만나다’라는 세션의 모더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스피치를 배우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래서 여러분께 그간 배운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전수하고자 한다.
1. 대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육성의 언어 그리고 사람과의 교감적인 언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전달되는 것들이 있다. 결국, 말이라는 건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텍스트적인 부분보다는 교감적인 언어 구사가 먼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같은 이야기도 왜곡해서 이해할 확률이 높다. 상대방 말의 의도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자존감부터 채워야 한다. 먼저, 매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유진 작가가 쓴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나 또한 무조건 하루 3시간은 휴대폰을 끄고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야 메타인지가 되면서 모든 행동을 감정이 아닌 근거에 의해 실행할 수 있다.
2. 말을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리다. 말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핵심을 잘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려면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 사람이 하루에 몇 가지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나? 말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이런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 적고 눈으로 봐야 한다. 글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 한다. 단순히 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정리다. 나 역시 눈에 보이는 것부터 정리했다. 집에 안 쓰는 것을 버리는 것도 정리의 일환이다. 그렇게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리하고 나니 한 가지에 집중하는 힘이 생겼다.
3. 스피치의 기본은 이타적인 마인드다.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생각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내가 소위 ‘인싸’ 소리를 듣고, 인프라가 넓은 이유는 결국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듣기 좋아하는지 잘 파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배경을 무작정 나누기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적시 적소에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은 스피치라고 할 수 있다.
4. 모든 것은 행복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계속해서 도전하고,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일의 최종 귀결점은 행복이다. 과거의 나는 뷰스컴퍼니 대표로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희생을 스스로 강요하고 행복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사람들에게 먼저 묻는다. “무얼 할 때 행복해요?”, “즐거워요?”, “오늘 어땠어요?” 너무 단순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조차 말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그 행복에 기반이 되면 말이라는 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내 스피치 주제는 ‘경제’다. 이전에는 뉴스, 날씨, 교통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공부했다. 더불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다방면의 시사 상식을 기반으로 내가 몸담은 뷰티 인더스트리 자체를 재해석하기 위해 나만의 안경을 개발 중이다.
경제 스피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너무도 생소한 용어 탓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공부해야 하고, 내가 아는 것과 알 것 같은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면 아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인지한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내 것으로 만들어야 참된 스피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난 매일 3개의 신문을 읽는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그들의 의견과 관점이 재미있다. 또한, 생소한 것들을 흡수하다 보니 배우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얼마 전 카이스트 AI 최고위 과정에 입학한 것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마인드셋부터 달라진 것이다.
끝으로 박선선 원장님께 감사를 전하며, 스피치에 관심이 생긴 분들은 그의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bagminjeong3199)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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