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칼럼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려하거나 심오한 글 그릇을 가지지 않아서 시도하지 못했다. 적어도 자신의 기준은 그러했다. 그 후, 이종탁 작가님의 칼럼의 이해라는 책을 읽고 글 그릇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경험 또는 사고 없이 어느 글 하나라도 지어낼 수 없듯이, 신문에서 읽고 싶은 섹션의 하나인 칼럼도 그랬다. 사실과 정보와 감정이 절묘하게 만나 이끌리는 글이 칼럼이었다. 필요와 조화에 입각한 정제된 인상과 나머지 없는 나눗셈처럼 똑 떨어지는 글자 수에서 왠지 단정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숨이 나왔다. 사라지거나 오염되었을 때야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불쑥 새 나가거나 언제나 거꾸로 흐르지 않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맥락을 잡기에 타고나질 않아 더욱 그랬다.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묵직하되 사뿐한 뭉게구름 같은 편안한 글이 칼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센티(sentimantal)했던 어느 날, 운치있는 동네 개천을 지날 때였다. 지평선을 점선으로 한번 접어둔 것처럼 하늘을 그대로 물 위에 찍어 놓았다. 파랑과 하얀색이 칠해져 있는 윗면은 하늘이고, 뭉게구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찍힌 아랫면은 개천이었다. 물을 섞지 않은 물감처럼 아주 진했다. 저 구름이 매일 하늘에 박혀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보니, 시선이 발걸음을 조종했고 시신경이 뇌를 자극했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는 뜻이다. 목적지 없이 맑은 하늘의 구름을 따라 시내를 걷던 캠퍼스 커플의 기억, 육중한 산부의 몸이 되어 거닐던 청량한 날씨의 시간들이다. 시간차가 큰 기억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함께 걷던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추억을 되씹다 보면, 일부는 전혀 잘못 회상하고 있는 경우가 생겼다. 실제로는 전철을 타고 갔는데, 버스를 탔다고 기억한다거나 동행했던 또 다른 친구를 달리 떠올리는 식이었다. 기억의 구성요소들을 해체해 두었다가 다시 떠올리게 되었을 때, 전체를 가져와 재조립을 했다. 결국 기억은 고정적인 기록물이 아니었다. 흐릿해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언제든 가변성을 띠었다.
다음은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중 에서 기억에 대한 내용 일부이다.
지속시간에 따라 장기, 단기, 작업기억으로 유형에 따라 절차, 개념, 의미, 서술, 암묵적, 자전적, 감각 기억으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서술 기억과 절차 기억이 주된 유형이다.
서술 기억은 가족의 생일, 어려운 단어의 철자 등 자신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의 기억이다. 절차기억은 알고 이해는 하지만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산책을 하던 날짜와 날씨는 확실히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집에서 춘천역까지 갔던 방법이나 전공수업 시간에 열기관을 설명하는 일은 절차기억이기에, 조금 가물가물했다.
작업기억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결합되는 장소를 가리킨다.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할 경우, 문제는 단기 기억에 들어 있고, 계산을 하는데 필요한 방법은 장기기억에 저장되어 있다.
일반 지식을 다루는 회상 기억, 대상은 그리 명확하지 않지만 맥락은 떠올릴 수 있는 재인 기억이 있다.
앞으로 '바디'라는 책의 내용은 완벽히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역자 후기와 참고 문헌을 빼더라도 500여 페이지여서 그렇다. 하지만 표지에 작게 그려진 남녀의 몸이나 인체에 대해 쉽고 흥미롭게 읽었던 재인 기억은 남아 있을 것이다.
모든 경험이 뇌 어딘가에 영구 저장되어 있지만 회상 능력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괘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과 자극이 충분하다면, 저장된 것들을 생각해내는 그 이상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기억의 폴더를 만들어 세부적으로 시간, 공간, 사람, 이름 등에 따라 관리가 된다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말 아쉽다. 거품처럼 포근한 뭉게구름이 1세제곱 센티미터 당 0.25그램의 물이 들어있다는 단기 기억을 지금부터 영구적으로 가지게 된다면 구름 연구가가 될 수도 있겠다. 칼럼의 주제로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구름에 대해서, 회상 기억을 만들어 글로 풀어나갈 수만 있다면 작업기억으로도 충분히 희망이 보인다.
물감을 짜 놓은 것 같은 개천의 광경이 시신경을 통해 전달되어 처리되고 뇌에 전달되는 데 약 200밀리 초가 걸린다고 한다. 즉, 5분의 1초. 5분의 1초가 나의 몸을 휘감고 회상 기억과 작업기억 그리고 감각 기억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애써 찾고자 했던 글 멘토의 손길은 절실하지만 그릇은 스스로 키워가야 한다. 하루 86,400초의 기억들을 어떤 줄거리로 풀어갈 수 있을지 오늘의 글쓰기에 또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