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시작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라고. 이것 하나에 의미를 두기로 마음먹었다.수필교실을 다녀오며...
동기가 생기고 행동하는 것의 연속이 우리 삶이기에,‘시스템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연유 또한 학습자의 의무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많은 행위와 생각들이 빅데이터로 모아지고 분석되는 세상. 영상물과는 친하지 않았던 나는 이 기회에 근접하지 않던 OTT 세상 속을 엿보기로 했다.
순응 vs 의심
영화는 두 남녀 프랭크와 에이미가‘허브’라고 부르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며 시작된다. 낯설음은 잠시, 시스템을 동시에 눌러 함께 지낼 수 있는 유효기간을 확인하며 연애는 시작된다. 하지만 정해진 음식, 준비된 차량 그리고 머무르는 장소에서 그들만의 대화와 교감은 본의 아니게 감시당하듯 이루어진다. 시스템 코치의 명령어에 의한 12시간은 호감을 갖기에도 짧은 시간이건만. 남녀의 기억과 감정은 시험을 치르고 난 후처럼 깨끗하게 정리된다. 이 시스템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행동과 반응을 수집하며, 다음 만남에 반영을 한다. AI나 행동인식 기술인 듯 착각이 들었으나 그렇게 첨단기술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님을 밝힌다.
이후 둘은 각자 여러 명의 이성을 만나면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재회해서도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프랭크에 반해, 에이미는 시스템이 어디까지나 입력된 정보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시뮬레이션 기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중략) 유효기간을 보지 않기로 약속을 했으나, 프랭크가 그 약속을 깨는 바람에 시스템은 5년에서 1시간으로 유효기간을 재보정하게 된다.
모의, 운명적 상대
유튜브의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서인지 ‘선 다방’이라는 맞선 프로그램이 뜬 적이 있다. 종영되었음에도 이어 보기를 잇따라 누르는 나.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미팅이나 소개팅에 익숙한 시대에 살아왔고 미리 알고 만나면 혹시 성격이 더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완벽함을 기대했을까? 조금은 조건적이나우연적이고, 양세형과 유인나 같은 스윗한‘관찰자들’까지 전체 시나리오에 흥미를 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이기에, 현실과는 다른 인위적인 기간 동안의 만남과 이별을 한 두 사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는 그를 만난다. 마치 플레이어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피실험자라고 느낀 에이미는 이제 운명의 상대인 프랭크와 시스템의 벽을 넘기로 결심한다. 필연적인 결과를 한 번쯤 거스를만한 에이미의 용기는 감시자의 시스템을 멈춤으로써 발휘된다. 이때,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작동 중지가 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임을 알게 된다.
데이터를 심어놓은 AI였던 둘 사이에 천 건의 시뮬레이션 중 시스템의 의도에 반항한 비율이 99,8%. 시스템은 커플 매칭률로 나타낸다. 알고리즘이라는 비교적 과학적인 매치메이커의 오류를 보는 순간이다. 한편 ‘선 다방’도 어찌 보면 사전 정보를 지닌 인위적인 만남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사람마다의 기억의 정리는 시스템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방향과 속도를 지정하지도 않으며, 출연진이 감시자가 아니어서 더 인간적이다.
이 영화를 즐기려면 혼자 봐야 하고 사전 정보를 찾지 말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물론 충분한 몰입과 감상이 첫 번째 이유겠지만. 어떠한 정보와 선입관을 갖지 않았음에도 관람 후의 느낌은 녹차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씁쓸했다. 하지만 얻은 게 있다.
AI나 알고리즘이 사람과 현재를 앞서는 것이 아직은 낯설지만 적어도 동기와 발상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힘이 보는 이에게 작용하여 현재의 생각을 되짚어볼 여지를 준다. 혹시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두고 가치 토론이라도 한다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긍정의 한 표를 줄 것이다. 절대적인 사람과 사랑보다는 상대적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