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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23. 2022

일단 저지르고 봤다

글이 안 써지는데 글모임에 자꾸 기웃거리는 아이러니

지난가을, 나는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J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J작가의 수업을 듣고 글쓰기의 변곡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나지 않는 상황임에도 용감하게 수강신청을 했다. 강의는 6주간 진행되었는데, 3편의 글을 쓰고 참여자들이 간단히 합평하고, J작가가 개인별로 코멘트를 하면서 글쓰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J작가의 개별 코멘트를 반영하여 수정본을 퇴고하고 그 내용도 간단히 평을 하기 때문에 코멘트 내용에 따라 최대 6편을 쓰는 것과 비슷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과정은 예상보다 고단했다. 첫 편은 멋모르고 써냈지만 두 번째 편부터는 마음처럼 쭉쭉 써지지 않았다. 제시된 주제로는 아무리 쓰려해도 안되어서 주제를 멋대로 바꾸기도 하였고 마감 일을 넘겨 제출하기도 했다.


첫 글을 쓰고 나서 내가 다른 참여자들보다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매끄럽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으며, 주장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 건 독자를 염두에 둔 글이라면 공감이나 감동, 지식이나 정보, 하다못해 웃음거리라도 전해줘야 하는데, 내가 쓴 글은 별로 얻어갈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에 비해 수업 참여자들은 간단한 사건을 사회문제와 바로 연결시키고 일상에서 깊은 사유를 끌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짧은 단상과 순간의 느낌으로 가벼운 글을 쓸 줄만 아는 내가 이처럼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꼿꼿하게 서 있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점점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갔다.


자신감 상실은 글쓰기 회피로 이어졌다. 모닝페이지 쓰기를 게을리하고 다른 글쓰기 모임은 타 일정을 핑계로 탈퇴해 버렸다. 급기야 브런치 발행글도 한 주씩 두 주씩 미루기 시작했다. 이제는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는 것도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마음먹고 앉으면 길든 짧든 두어 시간 내에 글 한편은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4시간 넘게 앉아 있어도 내용 구성도 못하고 있다. 재미와 새로움을 기대하고 들은 글쓰기 수업이 자신감 상실과 위축된 마음만 준 것 같았다. 특히 일이 바쁜 시기임에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 가지고 도전했던 것, 세상에 내어 놓을 만큼 실력이 되지 않음을 합평을 통해 겨우 깨달았던 것이 주는 실망감이 컸다.


그러던 중 어젯밤에 나는 J작가의 수업 참여자들의 연말모임에 참석했다. 30명가량의 참석자들 대부분은 나를 위축시킨 그 수업의 참여자들보다 더 고수들이었다. 몇몇은 J작가와 함께 책을 냈고, 또 다른 몇몇은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대단한 글쟁이들은 글쓰기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을 펼치며 무려 4시간 동안 떠들었고, 글쓰기 하수인 나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런데 웬걸, 그들이 나누는 고민이 나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주변의 기대가 무섭기도 하고 자기 검열이 심해져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닝커피를 마시듯 매일 글을 쓰기를 1년 넘게 하고 있지만 정체되는 느낌이에요. 더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과 글쓰기의 병행이 어떻게 가능한지요?" 그들도 나와 비슷했다. 검열하고 있는 나와 그로 인한 자신감 저하, 꾸준히 쓰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일과 글쓰기의 양립 문제 등은 글솜씨가 있고 없고를 떠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늘 갖게 되는 고민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내가 그렇게 위축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J작가는 모임의 말미에 새로운 글쓰기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다. 모임의 첫 번째 목표는 2월 중순에 잡지에 투고로 하고 문우들끼리 오랫동안  려하며 글을 쓰기를 바란다고 했다. 함께하고 싶으면 손을 들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오른손이 쑤욱 올라갔다. 글을 못쓰겠는 지금, 고수들이 바글바글한 모임에서 글을 쓰겠다는 무모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글쓰기 회피를 이제 단절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컸나 보다. 어쨌든 나는 손을 들었고, 모임멤버가 되었다.


일단 나는 저질렀다. 2월 중순에 투고하기 위해 1월에는 완성하고 날카로운 합평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써야 하는데, 나는 지금 글을 쓰기가 참 두렵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잔말 말고 '닥치고 글쓰기'가 답이겠지만 닥치고 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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