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꿀권리 Sep 21. 2023

커피의 반란

순응하련다


대학 때 음악다방이 대세였지만 간간이 커피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음악다방도 좋았지만 

나는 커피 전문점이 좋았다.

비엔나커피가 좋아서, 음악다방보다 조용하고, 새로운 인테리어(음악다방과는 달리 깔끔한)가 좋았다. 이가라는 커피전문점이 처음 생겼을 때 당시로는 온통 흰색에 단순한 모양의 테이블, 의자가 맘에 들었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이며 내가 지불하는 돈은 공간을 누리기 위한 대가라는 말이 당시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이지만 비엔나커피와 그 공간이 좋아서 유독 비쌌던 이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가곤 했다.


아들이 커피를 좋아하고 원두는 자기가 좋아하는 굵기로 그때그때 갈아야 한다며 홈 카페를 소소하게 만들어놓았다. 커피콩을 갈 때부터 이미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좋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때도 혼자 커피를 자주 마시고, 새벽에 읽어나면 대부분 커피 먼저 마시고 책을 읽거나 할 일을 한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 3명이 있는데 그중 한 친구는 커피를 처음부터 못 마셨다. 잠도 안 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증 같은 느낌 때문에 커피 마실 생각을 못 한다. 우리가 커피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자신은 사는 재미가 줄어든다고 매번 아쉬워했다. 저녁 늦게 마시거나 하루에 2~3번 잔을 마셔도 잠을 잘 자고 속도 편한 나는 커피가 나의 최애 기호 식품이다.

학원을 할 때 커피를 많이 마신 것 같다. 때도 가리지 않고 마셨다. 사람들을 만나고 카페를 가면 나는 예외 없이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올여름부터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거나 오전에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온다. 불면증 같은 것은 간접 체험도 못해봤다. 눕기만 하면 5분 안에 잠이 들고 10시 만 넘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듯하며 잠잘 사인을 보낸다. 평생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부담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밤을 새워 본 적이 없고 심지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났다. 지금도 집중력을 요하거나 새롭게 무엇을 하려면 새벽 시간으로 미뤄둔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저녁 일찍 자고 곧바로 잠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들이 고3 때도, 시험 기간에도 나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밥하는 엄마였다. 나의 이런 평생의 생활 습관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호 식품인 커피가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커피 때문에 2시가 넘도록 잠을 못 잔 경우도 있다. 누워도 잠이 안 온다는 불편한 감정도 처음으로 느껴 봤다.


아들은 회사 부장들도 뒤 카페를 마신다며 디카페를 마시라고 권하지만, 나는 이제 커피를 오후에는 외면하려고 한다.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데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갱년기 증상이 없어 나는 갱년기도 못 느끼는 무딘 사람인가 하고 지냈는데 커피가 이렇게 반란을 일으킬 줄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호르몬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먼저 신호를 보낼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돼도 예쁜 카페를 즐기며 커피를 오래오래 마시려고 했는데 커피가 이렇게 돌아서다니 물론 다른 것을 마시면 되지만 카페에서 커피 말고 다른 것을 마신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썩 내키는 선택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