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서핑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꾸준히 서핑을 즐기던 지인이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흔한 취미는 아닌지라 파도 타는 게 어렵지 않냐는 주변의 궁금증 어린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서핑은 두 가지만 잘 기억하면 쉬워요. 보드에 재빨리 올라가 균형 잡는 거 그리고 물살의 흐름을 잘 타는 거. 별로 안어려워요.
그게 어딜 봐서 쉽냐고.. 사실 난 물이 무섭다. 그리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두 발 붙이고 서 있기 힘든데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라니.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올해는 유독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균형 잡기와 흐름 타기'가 쉽지 않은 요즘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간단없이 바뀌는 1년을 보냈다. 우선 거주지를 옮겼고 익숙하던 장소와 사람, 손때 묻은 환경을 떠나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를 2번이나 했으며 10년차 무(無)운전 장롱면허 갱신과 동시에 첫 운전을 시작했다.(그리고 반 년도 안되어 범퍼와 타이어를 갈았다. 분명 중고차였는데 점점 새 차가 되어가고 있는건 왜일까?) 무엇보다 1인 가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적가족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일텐데, 가족관계 증명서에 '배우자'라는 한 줄이 추가되기까지새로운 시작 앞에 선 누구나처럼 어느 정도의 설렘과 긴장감 사이를 줄다리기했다.
원체 새로운 것을 즐거워하는 성격이긴 하나,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고요한 풀장에서 서핑보드 위에 올라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예고 없이 물보라가 밀려오는 느낌. 혼자 겨우 균형을 잡아보려는데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상황과 감정'이란 물살에 떠밀려 정신 없이 물만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삶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급류, 갑작스러운 소용돌이와 같은 상황 속으로 우리를 종종 이끌어간다. 그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하고 주체 못할 감정에 휩쓸려 본래 살아가던 방식을 잃기도 할 테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휘말리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 우끼요에의 거장,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이 작품이다.
급류의 찰나를 그려낸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25
우선 보이는 것은 파도, 아주 커다란 파도. 그림 전체를 압도할 기세로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사정 없이 넘실거리는 파도다. 끝부분에는 서늘하리만치 새햐얀 포말이 마치 매의 발톱처럼 매섭게 날을 세우고 그 주변으로 방울방울 물보라가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맹수가 먹잇감을 집어삼키기 직전처럼 보이는 파도 아래에는 3척의 배들이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아, 이미 1척은 늦은 듯하다.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나머지 배 위의 사람들은 빌기라도 하는듯 납작 엎드려 바다의 자비를 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저 관망하듯 고고하게 지켜보고 있는 저 멀리 후지산이 괜스레 얄밉게 느껴진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자화상 / 후가쿠 36경: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 또는 붉은 후지산, 1831
이 그림은 일본 에도 시대 최고의 화가라고 불리던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후가쿠 36경' 중 대표작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을 주제로 한 그의 우끼요에(일본 전통 목판화 양식) 시리즈는 거침 없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광대함을 주로 다뤘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그림은 파도 치는 바다의 장엄함과 그와 대조되는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해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일본 미술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을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서양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자포니즘'이라 불리는 일본식 화풍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고흐, 모네 등을 비롯한 유럽의 화가들은 호쿠사이의 이 그림에 열광했고 앞다투어 그의 연작 시리즈를 소장했다. 작곡가 드뷔시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바다>라는 곡을 쓰기도 했으니 호쿠사이의 그림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당대 사람들에게 미쳤던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자포니즘에 영향을 받은 서양미술 (좌) 반 고흐, 탕기영감의 초상 / (우) 클로드 모네,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호쿠사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싸'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마싸'란 마이 사이더(My Sider)의 줄임말로,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확고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몇년 전 유행했던 '아싸(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나 '인싸(무리의 중심에서 사람들과 유행을 이끄는 사람)'와는 달리 어떤 사회적 규범이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느낌이랄까. 호쿠사이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딱 그렇다.
그림 속 파도처럼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의 시작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 일 저 일을 하며 길거리를 전전하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14세 무렵 목판화를 접하면서 흥미를 느낀 호쿠사이는 그 당시 우끼요에의 대가라 불리던 가츠카와 순쇼의 문하생이 되어 그림을 배운다. 스승인 순쇼가 죽고 얼마가지 않아 파면을 당했는데 이는 순쇼의 라이벌에게로 배움의 터전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이고 파벌이 뚜렷했던 당대의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고이시가와의 아침 설경, 1830 / 번개를 동반한 뇌우 속의 후지산, 1830-1832
이후 호쿠사이는 본격적인 마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일본 국내의 다양한 학파를 두류 섭렵하였고 더 나아가 중국화, 네덜란드화, 그리고 프랑스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풍과 양식을 탐구하고 파헤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호쿠사이의 그림들은 확실히 다른 화가의 그림들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우끼요에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생활양식 및 풍속을 주제로 하는 것과는 달리 호쿠사이는 자연이나 풍경을 작품의 중심 주제로 삼았고 여기에 자신만의 개성과 서양의 판화 기법을 녹여내어 '호쿠사이풍'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냈다.
이미 존재하던 그림이나 시류에 머무르지 않고자 했던,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자 했던 끊임 없는 혁신과 연단의 의지. 이를 통해 호쿠사이는 마침내 인생과 삼라만상을 붓끝으로 펼쳐내는 기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 법
이따금씩 삶의 순간순간마다 휘청일 때면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이렇게 조언해주곤 했다.
-딸! 급류에 휩쓸리지 마라.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들어가지 않아야 해.
당장 눈앞의 막막한 상황 앞에 발을 동동 구를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져 한없는 무력감에 빠질 때, 나답게 살아보려 애쓰지만 자꾸만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렇게 '삶의 급류'에 빠질듯한 순간마다 마음에 새겼던 알쏭달쏭한 엄마의 그 말을, 호쿠사이의 삶을 들여다보니 알 것도 같았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무사시 지방의 타마 강, 1830-1831
호쿠사이의 그림을 통해 <삶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애초에 거센 물살에 첫 발을 들이지 않는 것. 한번 그 거대한 급류에 휘말리면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갑절의 노력이 들기 마련이다. 고로 맞닥트린 '상황과 감정'을 '나 자신'과 분리하여 자신만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준비자세가 필요하다.
상황이나 타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감정의 노예가 된 것만 같을 때면 한 발짝 물러나 잠시 숨 고르기를 해본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가늠해보면서. 예컨대 '지금은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보통 나는 이럴 때 ~한 감정에 빠지기 쉬우니 주의해야겠다' 라거나 '상대방이 지금 나에게 건강하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그의 상황에는 공감해주되 소용돌이에 같이 빠지지는 말아야지' 하고 되뇌이며, 잠시 대상과 나를 구분지어 보는 거다.
만약 이미 급류 안에 휩쓸려버렸다면 '내가 지금 급류 안에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상태를 한 걸음 옆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타계할만한 지혜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눈앞의 상황을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조언할 수 있게 된다. 잠시 흐름을 타며 호흡을 가라앉힌 뒤, 다시 방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물꼬를 찾아 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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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서핑과 인생은 꼭 닮았다. 균형 잡기와 흐름 타기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급류에 휩쓸리지 말고 나답게 살아가는 법, 그건 어쩌면 정말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모를 일이다. 내 안의 감정과 마음을 추스르며 '자신만의 뉴 웨이브'를 잘 만들어나간다면 그 어떤 파도가 와도 두렵지 않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