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오늘은 경제생활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고 싶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은 있구나. 아주 먼 옛날처럼 자급자족이나 물물교환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런데도 무엇을 중요시하는가의 가치관에 따라 그 비중은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너도 알고 있듯이 나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지. 그때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절대적 가난의 시기였지. 지금은 의무교육 과정이지만 선택이었던, 중학교를 하마터면 1년 쉬었다 갈 뻔하기도 했지. 왜냐하면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기신 수첩을 들여다보았단다. 거기에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는지 세세하게 쓰여 있더구나. 빌린 돈을 상환하고 X를 그은 게 20장이 넘더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신 게지.
이렇게 어려운 집에서 자랐는데도 나는 물질적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컸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공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 내가 공부할 수 있었던 방법은 장학금을 받는 방법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달해 가는 것이었지. 그렇게 긴 세월 공부를 해왔지.
백퍼센트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고 있지. 일을 하다 보면 가끔은 자존감이 상하고 더 심할 경우는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단다. 지금까지 자괴감까지 느꼈던 일은,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요구받은 학생들의 부당한 성적 평가였단다. 나로서는 가장 견디기 힘들더구나. 이들은 모두 학교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 세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단다. 나는 두 번은 끝까지 수락하지 않았지. 그 대가도 단단히 치렀지. 한 번은 자리를 내걸고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해서 평가 제도를 개선한 적이 있지.
내가 좋아하는 김선우 시인이 있단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가난의 증명, 한겨레 2015년 2월 17일).
“모욕과 수치를 감당해야 얻을 수 있는 잔인한 밥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복지다.”
이건 복지를 떠나 우리가 경제활동 하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잃고, 모욕과 수치를 감당하면서까지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 본다. 오래전에 노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교수는 대학에 오기 전에 국가 연구기관에 근무했단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슴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일을 했다고 하더구나. 국가 연구기관이 이 정도면, 사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오죽할까 싶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는 않구나.
경제 관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치관의 문제라 본다. 나는 지금도 좋은 차나 집 등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내 가치관이지. 이걸 누구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라 본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생활하면 된다고 본다. 원하는 공간은 우선 집안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책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원하는 책 찾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창이 있는 곳에 넓은 책상이 놓여 있어 그곳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는 명상할 수 있는 황토방이란다.
우리는 태어날 때 누구나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 떠날 때도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빈손으로 떠나지 않더냐. 최근에 세상을 떠난 모 기업 회장도 많은 부를 이뤘지만, 모두 놓고 떠나는 것을 우리는 보았지. 그러니 물질을 쌓기 위해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현명하지 않겠냐는 생각이구나.
주야,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네 삶을 살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