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인간관계, 참 어렵지?

by 최순자

인간관계, 참 어렵지?

서로를 지켜봐 주는 숲과 같은 관계가 좋을 것 같아


주야,

계절은 어느덧 찬 이슬이 내리기 전 가을걷이를 마쳐야 할 한로가 지났구나. 농촌에서 ‘고양이 손도 아쉽다’는 시기이지. 이제는 지나간 세월을 차분히 정리할 때이구나. 오늘은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싶구나.


‘인간관계’ 하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단다. 1901년에 태어나 1989년에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이 쓴 시야. 어쩌면 너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지 몰라. 함석헌 선생님이 쓴 ‘뜻으로 본 한국사’라는 책과 더불어 많이 알려진 시야. 시가 조금 길지만 한 번 읽어 보렴.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어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전문)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고, 엄혹한 독재 정권 아래에서 목숨 건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이야. 인도의 정신적 스승 마하트마 간디가 대영 제국 아래 신음하는 민족을 위해 비폭력 운동을 했듯이, 선생도 일제와 권력에 맞서 민초들을 위해 비폭력 운동을 하신 분이란다. 그 공로로 돌아가시기 전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도 있지.


나는 ‘자유’ ‘민주’를 갈망하던 1980년대 역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이 시를 접하고 가슴이 뛰었단다. 이런 사람 하나 갖고 싶었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던 친구, 1년여 동안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하며 접은 종이학을 건네주던 친구, 내가 아프면 간호해 주겠다는 친구들이 시 속의 ‘그런 사람’으로 여겨지는구나.


‘인간관계’ 하면 떠오르는 강의가 있구나. 내가 동경에서 유학할 때 들었던 과목 중 ‘인간관계론’이란 과목이 있었단다. 강의를 맡으신 교수는 ‘구로 야나기’라는 이름을 가진 놀이치료사셨어. 들길 걷기를 좋아한다는 분이셨지.


강의 핵심은 두 가지였어.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영원히 할 수 없다. 같이 있음과 헤어짐의 균형을 이루라는 것’이었지. 또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돼줄 사람 세 명을 두라’는 것이었어.


가까운 사람 중 돌아가신 분으로, 영원히 하고 싶었던 분으로는 나의 아버지이구나. 꽃과 음악을 좋아했고, 학처럼 살다 하늘의 별이 되신지 벌써 21년이 되었구나. 영원히 하고 싶지만, 육신으로는 영원히 할 수 없고, 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지. 무엇보다 주고 간 따뜻한 사랑이 남아 있지. 중학교 시험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읍내에서 자장면을 사주셨던 일, 중학생이 된 딸이 돌아오기를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다 내가 오면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지고 앞장서 걷던 모습들이 남아 있구나. 이렇듯 좋은 관계는 떠나도 마치 따스한 날씨처럼 나를 감싸고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돼줄 사람 세 명을 든다면, 나에게는 엄마, 배우자, 대학 친구가 떠오르는구나. 물어보지 않아서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믿음이 있어. 이 믿음을 갖는다는 게 관계에서는 의미가 있고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인간관계’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 얘기로는 4년 전에 희소병인 피부암으로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더불어 숲’이구나. 이분도 엄혹한 시기에 무려 2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낸 분이야. 아마 ‘처음처럼’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봤을 거야. 혹시 소주를 마시면서일까. 어떻든, 그 문구를 만들고 글씨를 쓰신 분이야. 극한 상황에서도 처음 품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봐.


신 선생이 쓴 책 중에 ‘더불어 숲’이 있어. 숲을 생각해 봐. 각양각색 나무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려 멋지고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지. 인간관계도 자연처럼 그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야. 함부로 간섭하거나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고 그냥 말없이 자기 할 도리를 다하며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지.


일본에서는 부모를 한자로 부모(父母)라고도 쓰지만, 친(親)자로 써 ‘오야(우두머리)’라고도 한단다. 한자를 풀어보면, 서다(立) 나무(木) 견(見)으로 이루어져 있지. 부모는 ‘나무 위에 서서 바라봐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요즘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켜보는 관계’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누구에게 조언하거나 충고하지 않으려고 해. 이번 추석 때 엄마와 긴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엄마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찍 자라, 이것 먹어라, 저것 먹으라 하는데, 그게 오히려 불편하다는 것을 실감했어.

이 경험 후 인간관계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숲속의 나무처럼, 그냥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인간관계는 참 어렵지만, 또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게 또 관계인 것 같더구나. 혹시 이 글이 내가 하지 않으려고 했던 충고나 조언이 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해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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