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프리랜서가 운명이었을까?
학원 졸업 후 인생에서 꽤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PM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나 :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PM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PM : 네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일을 한 가지 맡기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요?
나 : 네? 어떤 일요?
PM : 아~ 제 가족이 하는 학원 사업이 있는데요. 그 학원의 브랜드 홍보영상을 하나 만들까 하는데 한번 맡겨보면 어떨까 해서요. 금액은 많이는 못 드리지만 그래도 학원에서 진행하면서 받으셨던 금액만큼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전 경력도 없고 학원에서 배운 게 전부인데 괜찮으시겠어요?
PM : 저희 이미 한 번 같이 해봤잖아요. 그때도 잘 해내셨으니 이번에도 잘하시리라 믿어요.
나 : 네 알겠습니다. 바로 결정하긴 힘들고 고민해봐도 될까요?
PM : 네 괜찮아요. 그러면 일단 얼굴 보고 미팅 한번 해요. 연락드릴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걸까?
때는 2013년 4월, 학원의 모든 과정이 끝나고 졸업작품 준비를 위해 학원 내에서 각자 팀들을 꾸렸다. 지금은 그 학원의 졸업작품을 진행하는 방식이 달라졌지만 그때 당시 산학협력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학원생들의 졸업작품을 회사 프로젝트와 연결시켜 회사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브랜딩과 영상을 제작하고 학생들은 나름대로 좋은 가격(?)에 돈을 받아 회사의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해보는 기회를 졸업작품을 통해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우리 팀에서 진행했던 건 풀무원의 로젠빈이라는 여성 갱년기 건강식품과 매일 아침이라는 유제품이었다.
총 4명이었던 팀원, 처음 몇 달은 로젠빈의 브랜딩에 집중했다. 우리는 여성 건강을 위한 캠페인을 직접 해보자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야심 차게 PT와 영상까지 준비해서 직접 풀무원 본사로 들어가 본사 직원들 앞에서 벌벌 떨면서 내가 직접 발표를 했다.
그대로 엎어졌다. 그렇게 몇 달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엎어지자 우리 넷은 갈 길을 잃은 어린양처럼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달간의 노력이 한 번의 피티로 결정 나자 그 타격은 생각보다 심했고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제품은 2개, 사람은 총 4명...
결국 4명이었던 팀이 다시 2팀으로 찢어지면서 둘은 로젠빈의 영상을 함께 만들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두 사람은 매일 아침 멀티비타민&미네랄이라는 유제품의 영상을 각각 30초 정도의 짧은 광고 영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제품 홍보영상제작에만 밤낮없이 매달렸고 무사히 완성을 해냈다.
그때 당시 만들었던 매일 아침의 홍보영상이 회사 내에서 반응이 꽤 괜찮았고 풀무원에서 후원했던 소프라노 조수미 라 판타지아 파크콘서트에 설치된 전광판에 광고 영상으로 내보내지기도 했다.
저 당시 영상을 찍어서 SNS에 올렸고 많은 지인과 동기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j0WsgxcJOI
엄청난 희열감과 보람을 느꼈다. 어서 회사에 들어가서 여러 광고 영상들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런데 졸업 프로젝트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 당시 PM으로 계시던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의뢰하기 위해 연락을 주신 거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마켓플레이스를 통해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내 인생에서 첫 번째 프리랜서로서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이전에 나는 한 번의 경험이 있던 거다.
처음에는 2D로 진행하기로 했던 게 내가 욕심을 부려서 3D로 만들기로 했고 기간도 처음 예상했던 한 달에서 세 달까지 늘어나 버렸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요즘 MBC 예능프로그램의 말마따나 "놀며 뭐하니?"라는 생각으로 그 당시에는 적은 돈이라도 받으면서 포트폴리오나 하나 더 쌓자 라는 생각이었고 기왕 만드는 거 잘 만들어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에 임했었다.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나도 PM님도 서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늘어난 기간에 대해서는 서로 터치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서로가 흡족한 결과물이 나와 프로젝트는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z7PSHCf3g
저 당시의 나는 학생의 신분이었고 그걸 알고도 일을 맡겨주셨기 때문에 금액이 낮아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그건 나만의 생각이고 사회에서는 그걸 검증할만한 경력이나 포트폴리오가 당연히 요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2가지가 다 없던 내가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서 그런 프로젝트를 혼자서 진행해볼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행운이었고 풀무원과 같은 졸업 프로젝트 경험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저 당시 받았던 금액으로 지금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하면 정중하게 거절할 것이다.
요즘 단가경쟁이다 뭐다, 프리랜서 마켓 등과 같은 사이트의 등장으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디자이너도 사람인데 단가 경쟁을 해서 금액을 점점 낮추다 보면 결국 퀄리티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 이건 10만 원짜리니까 10만 원어치만 해줘야지..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이 들어서 딱 그 수준까지만 진행하지만 막상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는 10만 원을 주더라도 100만 원짜리 이상의 최고의 퀄리티를 원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본인의 경력과 포트폴리오가 쌓이고 실력 수준이 올라갔다고 생각된다면 그에 걸맞게 견적도 올려야 하는데 이 사회 구조가 그러질 못하게 막고 있는 느낌이다. 이 사회구조 때문에 지금 현재 낮은 금액으로 일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어서 그 생태계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도 10만 원짜리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뽑아내면 결국 그 포트폴리오는 남을 거고 그 포트폴리오로 인해 더 좋은 일이 의뢰가 들어오거나 다시 한번 같은 클라이언트에게 리콜을 받게 되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건 순수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실력이 있다면 분명히 누군가 또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지금 당장 조금 불안하고 배고프더라도 계속 프리랜서를 할 생각이라면 길게 보고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 또한 조금은 불안하고 배고플지라도 이 코로나 시국에 최소한의 자존심(견적)은 지키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