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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15. 2024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겠다.

방학을 앞둔 애미의 자세

D-day 2일. 두 꼬맹이의 방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주부터 아이들은 매일 매일이 즐겁고, 나는 매일 매일 조바심이 커진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쉼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상식과도 별개의 일이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었던 자유마저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나의 본능은 생존을 위해 두근거릴 뿐이다.


이번 여름방학은 유난히 길다. 인근 학교 중에 최고봉이다. 이런 걸로 일등 먹을 필요가 없을 텐데. 분명 다른 날 나도 모르게 이익을 얻은 때가 있었나 보다. 인간은 언제나 누리는 건 당연하고, 빼앗기는 건 고통으로 치부한다. 요물 같은 마음이다.


루틴을 대폭 수정해야 할 시즌이 왔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웬만하면 매일 하려고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루틴이라는 단어는 거창하고 틀이 강한 느낌이라 대신 리추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다. 리추얼은 나와 내 삶의 중심을 지켜주는 나만의 의식적인 행위다.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계획한다. 저녁에는 짧더라도 꼭 회고 기록을 한다. 일과 중에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운동하는 시간도 한 시간은 가지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는 귀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방학이 되면 아무래도 가정에 신경 써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아이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의 리추얼시간들도 줄여야 한다. 괴로워하며 닥친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리듬을 잘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줄어드는 나의 자유와 함께 늘어나는 건 역시 집안일이다. 그중에 가장 고역은 '밥'. 주방일을 싫어하는 나에게 삼시 세 끼를 차려야 하는 방학은 도전이자 수행이다. 요리 능력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가 크다. 음식 만드는 게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다. 메뉴를 결정하고 꾸려내는 것이 기대가 아니라 골치이며, 요리하는 것이 재미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노동이라는 관념 때문이다.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학 계획표라는 것을 각자 짜보도록 해야겠다. 너와 내가 공생하여 잘 살아가려면 우리에게는 각자 새로운 루틴이 필요하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겠지만 분명 48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계획된 우리의 루틴은 철저히 무너질 것이다. 그대로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실패해도 다시 돌아갈 이정표가 있다는 것은 우리를 안정되게 한다. 욕심을 줄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느슨한 루틴 생활을 시작해 봐야겠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 여름이 생각보다 더 찬란하고 활기참으로 가득 찰지도. 루틴은 무너져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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