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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앞서자, 내가 사라졌다.

결혼을 내 머리 위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by 밝음

결혼하고 나서 열심히도 살았다. 결혼과 동시에 새롭게 얻게 된 '부인', '며느리', '엄마'라는 세 역할. 결혼은 한 번에 세 가지 역할이 동시에 생기는 거대한 일이었다. (결혼 후 딸로서의 역할도 강화되니 영향력은 네 가지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역할만 충실할 수도 없고 세 가지 모두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결혼이라는 녀석은 어느새 나를 잡아먹었다. 세 역할을 빛나게 만들면서 나 자신을 놓치게 만든 것이다.

의무와 책임감이 극도로 과중해지면서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부인도 나이고, 며느리도 나이고, 엄마도 나이지만 그건 나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그 일부들을 빛나게 하느라 정작 그 중심인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결혼 10년이 지나면서 가장 크게 떠오른 내 안의 물음이었다. 우리 결혼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나에 대한 물음이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나의 결혼이 보이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직시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결혼인데,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결혼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며, 그 결혼을 위해서 아무리 애써도 내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빠진 결혼'


결혼생활이 중요해서, 내 가정이 소중해서, 그것들에 더 관심 가지고 그것들을 위해 살다 보니 정작 나는 나를 챙기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것도 내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결혼에 내가 빠져버린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쩌면 결혼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잊고 그저 살아가는 데에 급급할지도 모른다. 내 삶인데 삶이 먼저고 나를 뒷전에 두고 살아가는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일까?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을 먼저 돌보고, 내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주었다. 나를 채우고 나니 여유가 생기고 비로소 내 가정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애쓰기만 하면 내 행복이 찾아올 줄 알았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내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껴야 있게 되는 것이었다. 10년을 열심히 달렸지만 내 곁에 남은 느낌은 '행복'이 아니라 '애씀'이었던 것이다.


결혼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한 게 결혼이라는 사실은 꼭 기억하면 좋겠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있기 이전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0순위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아무리 소중한 것이 생겨도 내 머리 위에 두지 말자. 결혼도 내가 있어서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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