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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의 오답들

결혼의 정답은 우리에게만 있다.

by 밝음

몇 달 뒤면 결혼 12주년을 맞이한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어 당황스럽다. 그런데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우리의 뒤를 돌아보면 소중한 시절들이 방긋 웃고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지난날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건 진심 어린 고마움과 칭찬뿐이다. 무엇을 이루었고, 잘했고, 못했고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건넬 수 있는 첫 마음이다.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삶이었다는 걸 당사자인 우리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공부 없이 받아 든 결혼이라는 시험지에는 오답이 가득했다. 빨간 줄이 쫙쫙 그어진 오답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시험지를 잘못 고른 걸까?', '내가 이 시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걸까?'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좀 틀렸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풀면 될 일이었다. 내 결혼에 오답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는 것도 그만큼 결혼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이고 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오답들을 풀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시험지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을 수 없었고, 그 문제의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었다. 무엇을 정답이라고 할 건지, 어떻게 사는 것을 정답이라고 할 건지 모두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결혼 오답 노트 작성의 과정은 틀린 문제를 다시 푸는 게 아니라, 왜 우리가 이걸 틀렸다고 보는지 우리가 원하는 정답이 무엇이었는지 찾아가는 과정과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은 왜 아닌 것 같은지, 무엇을 원했길래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돌아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저절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 결혼생활이 ‘짜잔’하고 저절로 만들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노력 없이 내 기호에 맞춰 되기를 바라는 몽상에 가까울 뿐이다. 결혼은 만들어가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 되어있는 완벽한 퍼즐이 아니라 레고블록들로 이리저리 우리만의 삶을 건축해 가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니까. 속도와 힘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방향을 함께 챙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통로를 지나 만들고 싶었던 내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본다.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삶이었다. 어렵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행복을 챙겨가며 살고 있다.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정거장 너머에 있는 카페에 왔다. 글 쓰러 가는 부인을 위해 기꺼이 차를 태워주는 남편이 오늘따라 새삼스레 더 고마웠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았던 남편의 행위였기에 이게 당연한 게 아니고 그의 사랑이고 고마움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기까지 말이다. 그런 남편에게 고마움을 가질 수 있는 나라서 이런 내가 참 좋다.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오답들을 만나고 다시 그 문제를 풀어가며 살게 될 것이다. 정답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알기에 어떤 문제가 와도 문제없다. 출제자도 우리, 수험자도 우리, 오답 풀이 자도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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