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에는 돋보기와 현미경이 필요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을 '결혼'이라는 녀석과 함께했다.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겨울이 되어서야 지나가 버린 봄과 여름, 가을이 떠오르듯 한 템포의 큰 흐름을 지나고서야 내 결혼의 지난 계절들을 떠올려보았다. 결혼만 하면 꽤 괜찮은 삶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결혼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었다. 학생의 삶과 직장인의 삶이 다른 것처럼, 결혼하기 전의 삶과 결혼을 하고 난 후의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었다. 삶에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삶이 있었을 뿐. 더 나은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없었다.
삶은 선택으로 많은 게 달라진다. 결혼이라는 건 삶이라는 큰 덩어리 안에서 다른 종류와 모양의 삶이 펼쳐지도록 하게 된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삶이 바뀌는 이유는 만나는 사람과 환경의 변화 때문일 경우가 많다. 가족과 역할이라는 나의 중심을 바꾸는 게 결혼이니 결혼을 기점으로 삶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결혼 후에 펼쳐진 삶이 어떤 모양이든, 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 그건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다시 결혼이 없는 삶을 살아볼 것인지도 언제나 열려 있는 선택들이다. 내가 한 선택이고, 어떤 선택이든 언제든 가능하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녀석만 원망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어떤 선택을 하는 것보다 현상 유지가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삶에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더 불행하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내 결혼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내 결혼이 행복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이기 때문에 서로가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공동의 뜻을 모아야 한다. 내가 먼저 바뀌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결혼 후 해야 할 일들만 열심히 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삽질을 많이 했다. 그 노력이 아까워도, 팔이 아픈 게 억울해도, 이젠 다른 방향으로 다시 땅을 파야 한다. 행복한 우리 결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무엇을 해결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를 잘 분석해야 한다. 지금을 알아야 원하는 형태로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없으면 또 괜한 삽질을 다시 하게 된다. 나에게 없는 줄 알았던 물건이라서 찾으러 먼 길 떠났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물건이 내 서랍에 있는 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의 돋보기와 현미경이다. 이건 사랑의 도구들이다. 최대한 확대해서 자세하게 내 결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모르고 살았던 건 없는지, 놓친 건 없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이 도구들을 사용할 때 유념할 점은 마음을 나와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판단과 기준을 잠깐 놀러 보내놓고 내 가정의 모습과 배우자를 제삼자로서 관찰한다. 사랑의 관찰력을 가동하는 것이다.
사랑의 관찰력을 가동하는 건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 투명하게 바라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세진다. 우리는 많은 순간 삶의 모습을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도 다르게 보이고, 경험과 호불호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인다.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두기도 한다. 당연한 것들이라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만족스럽지 못하고 전혀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던 나의 결혼생활은 사랑의 관찰력을 가동하자 달라졌다. 반짝이는 보물들이 가득했다. 보려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면 내가 얼마나 많은 행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도, 수많은 대화도 모두 행복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하는 것 중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늘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였던 남편이 알고 보니 나에게 없어선 안 될 힘이고 사랑이었다.
서로 많은 것들을 내어주고,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운전을 해 주는 것도, 쓰레기 버리는 행위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 모든 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마음 내어서 하고 있는 일들이었고, 그런 일들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였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보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저절로 고마움이 피어올랐고 그 마음들을 비로소 표현할 수 있었다. 그간 그런 마음들을 말과 행동으로 주고받지 못했던 건,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해서 이것들이 서로를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도 몰랐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 가족이 되었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그 무엇도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은 없다. 많은 것을 서로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한 결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큰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결혼은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내 결혼생활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껴지면 마음에서 돋보기와 현미경을 꺼내어 사랑의 관찰력을 가동해 보자. 그냥 볼 땐 보이지 않았던 우리의 수많은 보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