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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사랑한 거야

변함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결혼이다.

by 밝음

나에겐 그리운 남자 친구 한 명이 있다. 당찬 모습에 누가 뭐래도 자기 쪼(?)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었던 친구다.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성격의 나는 그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 젊음의 기상을 입고 개썅마이웨이를 시전하며 살아가는 그 친구를 보며 어떨 때는 '참 심플하게 산다'. 싶기도 하다가 어떨 땐 '저렇게 사는 게 진짜 자기 인생 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남의 눈치 보지도 않는 것 같고, 시류에 스스로 역행을 자처하기도 하는 삶의 행보에 부러움과 단단함을 느끼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학창 시절 인기도 꽤 많았던 친구였기에 그때의 구 남친과 데이트 할 때 뿌듯하고 기분 좋을 때도 많았다. 회상해 보면 내가 화가 날 때 남친의 겉모습이 스스로를 도울 때가 많았다. 얼굴이 한몫했다.


나는 그때의 구 남친에 대해 남편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아주 많이 그립다고, 그 친구 좀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면 남편은 두 가지의 방향으로 대답한다. '걔는 이미 죽었어'라고 이야기하거나, '기다려봐 걔 아직 안에 잘 살아있어.'라고. (어제 다시 물어보니 무기징역 당해서 갇혀있다고 한다. 죽진 않았으나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선포인듯하다.)


그렇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 구 남친은 바로 나의 현 남편이다. 결혼하자마자 조금씩 변해가던 남편은 10년이 지나자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한 생에 두 명의 삶을 살다니 저렇게 사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친구나 후배들은 '아니... 왜... 형부....'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친구 남편의 변화된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몸무게는 20kg가량 증가하였고, 내가 부러워하던 대찬 성격은 오간 데가 없다. 이러니 나의 구 남친이 그리울 수밖에.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아니, 그렇게 변할 거면 예고라도 할 것이지. 이건 사기 결혼 아니냐. 진짜 다른 사람이랑 사는 느낌이야. 사람이 변해도 적당히 변해야지."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고, 안타까워 나오는 말이기도 했다. 외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성격이 그렇게 극명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가장이 되고 아빠가 되면서 남편은 어릴 때 들지 못했던 철이 한꺼번에 든 모양이다.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젊은 시절의 치기는 사라지고 걱정과 두려움, 염려가 늘어났다.




결혼이라는 건 결국 세월을 입는다. 내가 선택한 건 결혼식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삶 그 자체니까. 정현종 님의 방문객이라는 시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는 것,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결혼을 통해서 느꼈다. 결혼하는 그때 시점의 모습을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로 선택하게 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 일이다.


내가 몰랐던 그의 과거를 우연히 만나게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미래를 나는 이미 품어야 한다. 서로의 변화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한 결혼의 의미가 성립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우리들의 변화를 기꺼이 사랑하고 즐기며 살아간다. 나도, 사랑하는 그이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그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니까. 내 기준에 좋은 건 좋아하고 싫은 건 부정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결혼할 때 사랑했던 그 사람은 그때의 모습이나 어떤 부분이 아니다. 그때의 그 모습들을 만들어낸 그 사람. 본질적인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변했다면 또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해 보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모습으로 나와 만나주고 경험하게 해주는 다이내믹한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이 만들어낸 찰나의 모습을 사랑한 것인지 그 사람이라는 자체를 사랑한 것인지 말이다.


사랑이란, 과거와 현재, 미래 그 모두를 품는 것이다.


'우리 오빠 예전에 그러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어쩜 그럴 수 있지?' 싶다면

'그때 참 많이 애써줬구나. 나를 많이 사랑해 줬구나.' 그렇게 고마워하자.

그리고 그렇게 예쁜 사랑을 했던 나의 시절을 뿌듯해하자.


어차피 나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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