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면 나오지만, 그럼에도 '기억'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아 저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기억력이 좋지?',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확률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역량과 별개로 기억력만으로 일을 잘해보이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타고난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기억력은 어느정도 트레이닝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훈련방법을 떠나 진심을 다해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
왜일까? 우리가 인생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들을 보면 의식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너무 그 순간이 좋아서, 너무 그 영화가 재밌어서, 그 음식이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억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이런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에서 생기는 상황들이나, 업무와 관련된 내용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인상적이기 어렵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애써야 한다. 이 마음만 생긴다면 일을 할 때 기억력을 좋게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수능 공부할 때랑 마찬가지 이치)
그렇다면 회사에서 기억력은 왜 중요할까? 전체적인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일 수 있고, 전반적인 팀의 얼라인먼트를 효율적으로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려고 시장조사를 해서 만난 회의자리가 있다고 치자. 내가 A라는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대표가 "그거 작년에 비슷한 아이템을 제안해서 사업화 단계까지 진척되다가 드랍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유가 뭐였죠?"라고 말한다. 허둥 지둥 직원들은 슬랙이나 노션에서 히스토리를 찾아보거나,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답변한다. 그런데 기억력이 좋은 어떤 직원이 "고객 인터뷰까지 해서 니즈가 있는 건 파악한 상품이었는데, A를 판매하려면 B 라이센스 취득이 필수였고, B 라이센스를 취득할 자격이 안되어서 드랍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자격이 충족될 것 같아, 다시 재검토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 직원은 아마 향후 모든 업무에서 (일을 많이 받게 되겠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위 예시에서 아래의 것들을 알 수 있다.
- 기억을 못해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면 상관 없다. 메신저에서 검색하거나 노션에서 검색해서 거의 리얼타임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굳이 뇌에다가 뭐하러 기억하나. 단,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야 그 내용이 나올지도 잘 떠올리지 못한다. 결국 검색도 기억력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A상품이라고 검색하면 내용이 겁나 많을 것 아닌가. 적어도 "A 라이센스" 정도는 검색해야 할 것이다. 그럼 라이센스 이슈였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회사에서 똑같은 것을 지칭할 때 쓰는 워딩들을 통일시켜두어야 한다)
-만약 기억하고 있는 저 직원이 없었다면 A에 대한 논의는 저 회의에서 못한채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누가' 회의 후에 확인해서 다시 보고할지도 안정해져서 그냥 A가 왜 드랍됐는지 아무도 모르고 끝났을 확률이 크다. 이 무슨 비효율인가.
그럼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정보들은 어떤 것들일까? 1차적으로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주요 지표를 포함한 숫자들 & 현상이 나타났던 배경, 이유, 결과, 결론, 이 두가지만 기억해도 충분하다.
숫자는 우리 비즈니스가 포함된 산업의 매년 시장 규모, CAGR, 경쟁사 개수, 우리 회사의 마켓 쉐어, 우리회사 고객수, 지난 달 우리팀 실적 뭐 그런 것들이다. 당연히 비용도 포함된다. 가끔 정말 놀라운 것은 특히 스타트업들에서 팀장 이상의 직급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팀에서 매월 얼마씩을 쓰고 있고, 그 성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테스트를 해보면 ROI가 어땠고, 고객이 얼마나 늘었고- 이런 숫자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조금만 습관화 되면 되게 다양한 영역에서 프로답게 일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 다음 현상의 배경,이유,결과,결론이다. 이렇게 4가지를 구성하는 이유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이로 기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뉴스 하나를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만, 영화 스토리나 책의 줄거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개연성과 유기성이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과 현상을 스토리처럼 기억하면 좋다.
이런 역량을 기르려면 일단 앞서 말했듯이 기억을 하는 것의 효용을 꺠닫고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그 다음, 본인이 주로 기억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숫자들을 리스트업하고,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봐라. 그러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서 암기하면 된다. 동료분은 팀원분들에게 우리회사 올해 목표치 (고객수, 매출, EBITDA)와 27년까지의 연간 목표치를 출력해서 주고 암기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런 방법도 효과적일 수 있다.
기술이 이렇게 좋은데 무슨 기억을 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GPT가 있으니 그걸로 쓰면 되지 않냐고 물을수도 있겠다. 내 개똥철학이긴 하지만 본인 뇌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툴로도 서포트받지 못한다. (받는다 한들 효과가 떨어진다). 툴은 보조수단일 뿐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슬랙 bot 커맨드 값으로 @A시장규모 이런걸 넣어두는 것은 당연히 효과적이다)
숫자보다 현상을 기억하는 데에는 나는 이미지로 기억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철새 들이 이미지로 경로를 기억하면서 장기간 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이야기가 나왔던 회의실이 어디었고, 누구랑 주로 대화했고, 그 사람이 뭘 입고 있는 날이었고, 화면에는 뭐가 띄워져 있었으며, 어떤 주제로 얘기했고, 어떤 이슈가 있어 어떤 결론이 났었고, 그 회의록은 누가 정리해서 어디에 공유했었다- 이런 것을 하나의 덩이로 묶어서 기억하는 거다. (대부분 여행 등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은 이렇게 이미지처럼 기억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https://sungmooncho.com/2024/02/05/memory-skill/
사실 이번 글은 얼마전 읽은 이 아티클을 보고 너무 공감이 되어서 좀 더 써본 글이다. 나 역시 스스로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냥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기억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써 본 글이다. 두서가 조금은 없지만, 이 글을 쓴 이 20분 남짓한 시간도 이미지로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