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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Sep 25. 2022

[서평] 실재란 무엇인가?_애덤 베커


양자 얽힘 VS 보이저 1호


[양자 얽힘] 원자보다 작은 두 개 이상의 입자가 거리에 무관하게 공동의 통일된 양자상태(운동량, 위치, 스핀 방향)로 연결되는 현상.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은 고전물리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입자들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양자역학적 상태를 말한다. 얽힘 상태 입자들은 공간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독립적일 수 없다. - 네이버 지식백과-


양자역학에서 ‘얽힘’의 문제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물리학자들은 양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서, 종종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거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빗대어 설명한다. (물론, 언제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 방식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양자 얽힘’을 거시 세계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임세환’이라는 이름의 양자 덩어리에게 어떤 일이 있어서, 임세환의 왼팔 양자는 몸에 붙은 채로 지구에 남고, 오른팔 양자만 홀로 보이저 1호를 타고 태양계 밖을 향한 긴 여행을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지구의 임세환이 갑자기 왼팔을 번쩍 들자, 태양계 밖의 오른팔도 동시에 번쩍 들렸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독립적일 수 없고 얽혀있다.


- 보이저 1호는 1977년 9월 5일에 지구를 떠났다. 현재까지 45년 동안 우주여행 중이다. 그런데 왼팔의 들림이 오른팔에 전달되는 데는 0.00000...1초도 걸리지 않았다.

- 보이저 1호는 태양으로부터 약 234억 8천만 km 떨어져 있다. 태양으로부터 빛의 속도로 달려도 하루 가까이 걸리는 거리까지 나아갔다. 왼팔의 들림이 오른팔에 전달되는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동시’라고 할 만하다.


사족일 수도 있는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실 ‘0.00000...1초, 빛의 속도, 동시’라는 설명은 불필요하고, 부정확하다. 어차피 양자 세계에서 벌어지는 ‘얽힘'은 거시 세계의 시공간 관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0000...1초, 동시’와 같은 시간 개념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 양자 이론을 설명해야만 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처지다. 


양자 얽힘 VS 코펜하겐 학파


스타워즈 시리즈의 워프를 능가하는 양자 얽힘 현상이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고민했던 문제와 맞닿아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코펜하겐 학파’와의 이론적 논쟁에서 졌다고 오해하는 바로 그 문제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이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 코펜하겐 학파 물리학자들과 기나긴 논쟁을 이어갔던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에서 제기했던 문제 즉, 어떤 일(혹은 양자)이 다른 일(혹은 양자)의 원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물리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두 물체가 부딪쳐 튕겨나갈 때 각 물체의 에너지와 속도를 계산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상대성이론이 지배하는 거시 세계의 인과율이 양자역학에도 어떤 식으로든 적용되어야만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속도가 빛의 속도를 초월할 수는 없다.(인과율과 국소성의 문제)


그런데 빛의 속도를 초월하는, 아니 ‘속도’라는 개념 자체를 초월하는 양자 얽힘은 실험으로 증명됐다.


애덤 베커의 책 [실재란 무엇인가?_양자물리학의 의미를 밝히는 끝없는 여정] (도서출판 승산. 2022)은 20세기 이론물리학에서 양자 얽힘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양자 얽힘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 가는 과학사의 과정 및 그 입증의 의미를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며, 그에 공헌한 많은 물리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결국 양자 얽힘의 증명이 일반상대성이론이 지배하는 거시 세계의 일반 이론(국소성)을 초월해버렸지만, 애덤 베커는 양자 얽힘의 증명이 최종적으로는 코펜하겐 학파를 대표하는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거듭! 거듭! 강조한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양자의 상태는 ‘측정’ 전에는 결정될 수 없다. 측정하지 않은 양자의 상태는 알 수 없기에 말할 수도 없다. (닐스 보어 ‘상보성’) VS 그렇다면 측정이란 무엇이고, 측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과연 누구의 측정이 진정으로 권위 있는 측정이란 말인가? (애덤 베커)


양자를 측정, 혹은 관측한다는 행동 자체가 양자의 상태값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리처드 파인만). 그렇기 때문에 양자를 기술할 때는 오로지 측정된 양자의 값만 기술할 수 있다.(하이젠베르크 ‘행렬역학’) VS 측정된 값만 기술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인가?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이 거시 세계의 보편적 법칙과 충돌하는데, 당연하게도 과학의 역할은 그 충돌의 문제를 밝혀내고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내는 일이어야 한다.(애덤 베커)


애덤 베커는 이 책을 통해 ‘솔베이 회의를 통해 아인슈타인에게 승리했다는’ 코펜하겐 학파를 상대로 도전했던, (당시로서는) 재야의 물리학자들의 삶과 성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가장 획기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실험을 통한 ‘양자 얽힘’의 증명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고 말해야 한다거나, 혹은 측정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상태라는 코펜하겐 학파의 상보성,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 얽힘 증명은 둘 다 아인슈타인이 통합해내고자 했던 거시 세계의 일반이론과 상이하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거시 세계는 모두 양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양자 세계의 원리와 거시 세계의 원리가 충돌하다니) 


양자 얽힘의 관점에서 아인슈타인도 틀렸다. 비국소성은 실재했다! 보이저 1호에 실린 임세환의 오른쪽 팔의 상태는 지구에 있는 임세환의 왼쪽 팔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자 얽힘이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통합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측정되는 대상과 측정하는 주체가 하나의 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인과율은 건재하다! 측정의 주체가 누구든, 그 또한 양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측정’이란 하나의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양자의 동시다발적 연쇄반응이며, 이 연쇄반응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고리가 바로 하나의 세계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음을 누군가 측정했다면 그 세계에서는 ‘살아있음’이 진실이다. 그것이 바로 얽힘이다! (그 경우 고양이가 죽어있는 세계는 우리가 알기 정말 어려운, 혹은 알 수 없는 다른 세계, 혹은 차원이다.) 


애덤 베커는 [실재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양자 얽힘 증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학사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과학과 철학에서의 상대주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했다. '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측정자)의 감각의 다발일 뿐이며, 감각의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 이성적 추론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데이비드 흄의 철학과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 과학에서 실험으로 증명되는 것 외에 맥락을 연결하는 이론적 작업을 전면 부정하는 에른스트 마흐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논박이 이론물리학을 과학으로 바로 세우고자 하는 애덤 베커의 시도이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독해를 통한 이론적 이해와 세계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통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시공간 개념을 뛰어넘는 양자 얽힘은 실재하며, 아인슈타인이 설명하고 싶었던 일반 원리 ‘국소성’은 부정됐지만, 양자 얽힘을 통해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는 하나의 계로 통합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스타워즈의 워프를 초월하는 양자 얽힘을 쉽게 경험할 수 없다. 그럼 양자 얽힘을 다시 한번 의심해봐야 할까?


어찌 됐든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양자 얽힘 증명을 통해 애덤 베커가 건져 낸 아인슈타인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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