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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Oct 06. 2022

[서평] 이토록 기묘한 양자_존 그리빈

양자역학이 '본 것'과 '이야기'


“지식은,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신정론’에 쓴 말이다.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알기 위해서’ 우주 밖, 대양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작은 양자의 세계까지 간다. 동굴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지만, 동굴 밖이라는 게 애초에 갈 수 없는 곳은 아니었을까? 우주 밖으로 나간 사람도 우주 전체를 볼 수 없고, 대양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작은 것들의 세계에 간 사람도 그 바닥 전체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밖에서 '본 것'들에 '보지 않은, 그럴듯한 것'들을 보탠다. 이야기.


‘알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인간은 왜 그저 이야기까지 알게 된 것에 보탤까? 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수준의 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말 “인간은 인지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 같다.


‘본 것만 말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족속인 것이다.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다’


과학을 잘 모르는 ‘과알못’이 양자역학을 공부할 때의 태도는 이랬다.


양자역학 초딩 : 스펀지처럼 다 받아들이는 “아, 그렇구나!”

양자역학 중딩 :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중 하나는 언젠가 백기를 들겠군!

양자역학 고딩 : 이런 게 과학이라고? 도대체 뭐가 세계의 법칙이라는 거지?


‘양자역학 대딩’까진 가보지 못해서 할 말이 없다.;; 다만 영국의 과학작가이자 천체물리학 박사인 존 그리빈이 자신의 책 [이토록 기묘한 양자](바다출판사, 2019)의 마지막 장에 붙인 소제목이 ‘양자역학 대딩’쯤 되면 할 수 있을 말 같다.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다.”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다.” 실제로 한국어로 번역된 소제목이다. 그러니 “이런 게 과학이라고?”라고 한탄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는 그 기묘한 양자 이야기의 말미에 존 그리빈은 리처드 파인만의 유명한 말 “나는 그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를 덧붙인다. 파인만의 이어지는 말은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피할 수만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은 가급적이면 스스로에게 던지지 말라. ‘어떻게 세계가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왜냐하면 당신은 그 질문을 함으로써 지금껏 그 누구도 탈출한 바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헛된 시간 낭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어떻게 세계가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물리법칙의 특성 The Character of Physical Law_리처드 파인만]



‘이중 슬릿’과 '양자 얽힘’. ‘본 것’과 ‘이야기’


아인슈타인에 필적할 만한 유명세를 탄 자유로운 영혼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자신과 동료들이 하는 일이 죄다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한탄만 하는 건 분명 아니다. 파인만이 봉고와 프리지데이라는 전통 악기에 심취했고, 브라질 삼바 페스티벌에 나가서 연주도 했다는 일화도 결코 양자역학이 헛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 게다. 리처드 파인만이 이론물리학과 그 이론의 실용적 발전에 기여한 바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헛된 시간 낭비”이고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는” 게 이론물리학이라고 그들이 말하지만, 결코 허황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다. 이론물리학자들이 ‘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세계의 상식에 반하고, 아인슈타인의 막강한 일반 이론인 ‘상대성이론’에 반하는 '이중 슬릿 실험’과 ‘양자 얽힘’은 물리학자들이 실험을 통해서 본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 ‘본 것’ 들을 재현하기 위한 거듭된 실험과 증명을 통해서 물리학자들이 먼저 본 것을 알게 됐다. 아무리 기묘하더라도 ‘본 것’은 ‘본 것’이며, 누군가 중대한 오류를 증명해내기 전까지는 ‘본 것’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양자 세계에서 본 그 ‘기묘한 것’ 들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동굴 밖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라이프니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지혜로움이 주는 영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오직 이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누리는 마법 때문에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것일 게다. 지식은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 마법을 향한 열망이 바로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는”,  “그럴듯한 이야기”의 원천이다.



이야기의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본 것’이 아닌 ‘이야기’에 대해서 믿고 안 믿고는 기본적으로 각자가 선택할 문제다. 존 그리빈도 [이토록 기묘한 양자]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많은 양자 해석 중 여섯 개를 선택했다. 이는 앞에서 등장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인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해석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장점에 대해 나만의 관점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런 나의 관점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여러분이 책을 읽어나가며 본인의 마음에 드는 해석을 선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봤자 소용없을걸요.

우리가 불가능한 것들을 믿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자 여왕이 말했다.


“그건 네가 충분히 연습을 안 해서 그럴 게다. 

어렸을 때 나는 매일 30분씩 그런 연습을 했거든. 

그래서 가끔씩 나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여섯 가지나 되는 불가능한 것들을 믿기도 하지.” 


이 글을 끝내기 전에 오해가 있을 듯하여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이야기는 중요하다! ‘본 것’만큼 중요하다. 다만 ‘본 것’이 아닐 뿐이다. 이야기는 ‘본 것’을 뒷받침하고 어쩌면 ‘보게 될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상상력이, ‘보기 위해’ 동굴 밖으로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음을 믿는다. 그 와중에 존 그리빈의 말처럼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다”라고 느끼게 되는 상황도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



[이토록 기묘한 양자]가 소개하는 기묘한 6가지 이야기_’이중 슬릿 실험’과 ‘양자 얽힘’에 대한 6가지 해석

해석 1. 코펜하겐 해석 “우리가 바라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 2. 파일럿 파동 해석 “세계는 우리가 바라보기 전까지 숨어 있다.”

해석 3. 다세계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평행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해석 4. 결어긋남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다.”

해석 5. 앙상블 해석 “존재 가능한 모든 것은 공간을 뛰어넘어 상호작용한다.”

해석 6. 거래 해석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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