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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08. 2022

[서평] 문과 출신도 웃으면서 보는  양자물리학 만화

글, 그림 뤄진하이 | 생각의길 2021

어려운 양자역학 읽기


2019년에 '양자물리학'이라는 제목의 국내 영화가 개봉됐다. 그 전엔 마블 시리즈가 양자역학에 상상력을 더해 재미있는 판타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흥미롭게 봤는데, 제목이 '양자물리학'인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영화 내용을 떠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썸앤파커스. 2016)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후 수년 동안, 이론물리학, 이론물리학과 연관된 천체물리학 등 최신의 과학적 성과를 다룬 과학교양서적들을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이론물리학자인 김상욱 박사가 여러 차례 TV 교양 프로그램에 등장해 '양자역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굳이 소개하고 싶어 덧붙이자면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 시즌 1에도 양자역학의 중요한 2개의 흐름인 초끈 이론과 양자중력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어렵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성과인 '표준모형' 수립에 기여한 미국의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했다는데, 사실 이 말은 '본다(관측)'는 행위 자체가 곧 양자 세계를 왜곡(?) 하기 때문에, 관찰 자체가 곧 한계이자 주요 재료인 양자역학을 설명한 것이다. 어찌 됐든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세계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이론물리학이라는 아주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양자역학은 이해하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2016년에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읽고 호기심과 감동이 밀려와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서평들을 읽으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해설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사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이후 한국에서 출판된 카를로 로벨리의 다른 책 [보이는 세상은 실제가 아니다](썸앤파커스. 2018)의 축약본이고, 카를로 로벨리가 대표하는 21세기 양자역학의 한 흐름인 '루프양자중력 이론'을 소개하는 책이다. 


딸아이도 찾아보는 양자물리학 책


 어렵지만 첫인상이 정말 매력적이었던 양자역학을 더 이해하고 싶어 관련 책이 나오면 찾아 읽었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고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는 10여 장을 읽고 나서 벌써 두어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적도 있다. 그리고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그 부분을 다시 읽어야 했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양자역학을 나 같은 과학 잘알못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김상욱 박사의 [떨림과 울림](동아시아. 2018)도 그중 하나다.


마음이 그러했기에 인상적인 책이 중국 SNS 교육 플랫폼 <양자학파(quantumschool)> 운영자인 뤄진하이가 쓴 [문과 출신도 웃으면서 보는 양자물리학 만화](생각의길. 2021)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본 양자역학 책 중 삽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단 한 권의 책이다.


 


양자물리학에 관심이 있지만 그 앞에서 잘 웃지 못하는, 문과 출신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썼다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사실 그렇게 쉽지는 않다. 뤄진하이도 책의 첫 페이지에서 "양자역학은 독학하려 들지 말지어다."라고 썼다. 어렵긴 한데, 재미있는 그림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더 폭넓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양자역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끝내고자 찾았는데 한참 동안 찾을 수 없었다. 10살 딸아이가 그림에 이끌려 보다가 자기 방 책꽂이에 꽂아 둔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뤄진하이의 솔베이 논쟁사


만화책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저자인 뤄진하이가 SNS 콘텐츠 제작자이자, 플랫폼 운영자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내용 구성도 이론물리학자들이 쓴 다른 양자역학 책들과 많이 다르다. 내용의 대부분이 '아인슈타인-슈뢰딩거' 파와 '보어-하이젠베르크(코펜하겐 학파)'파의 흥미진진한 솔베이 회의 논쟁사 대결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역학을 다룬 많은 책들에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 사진(아래)이 나오는데, 솔베이 회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시간 순으로 좀 더 상세하고 알고 싶다면 뤄진하이의 [문과 출신도 웃으면서 보는 양자물리학 만화]를 보면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의 뒤표지에 있는 부제가 '아인슈타인에게 패배의 쓴잔을 안긴 양자역학'이라는 점이다. 솔베이 회의 자체가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불확정성 원리, 확률 이론의 허점을 밝히기 위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등이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닐스 보어 등 코펜하겐 학파가 이를 결국 논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에게 패배의 쓴 잔'이라고 한 것 같은데, 20세기 이론물리학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양자역학에 있어서도 아인슈타인이 가장 큰 공로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론물리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솔베이 회의에서 승부가 결정됐다고 보는 관점도 섣부른 것 같다. 닐스 보어는 생의 마지막까지 아인슈타인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 고민했으며, 훗날 카를로 로벨리처럼 거시 세계의 물리학인 상대성이론과 미시 세계의 물리학인 양자역학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물리학자들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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