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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May 24. 2022

빅뱅이론, 끈이론, 힉스.. 단 하나의 방정식을 찾아서

#1


미국 CBS 시트콤 빅뱅이론


[빅뱅이론 시즌 2 (미국 CBS 시트콤. 2008년 방영) 에피소드 2] 중에서


쉘던 쿠퍼(짐 파슨스 역) : 레즐리가 오만한 수준 이하 과학자로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데 고리양자중력이론이 끈이론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 삼지 않으려고 해. 그럼 재미있게 놀아.


레즐리 윙클(세라 길버트 역) : 고리양자중력이론은 끈이론보다 검증 가능한 예측을 더 많이 제공해.


쉘던 쿠퍼 : 듣고 있어. 계속 웃겨 봐. 


레즐리 윙클 : 우린 색상 변화에 따른 미세한 광속 변화가 양자 시공을 발현시킨다고 믿어.


쉘던 쿠퍼 : 허튼소리, 물질은 작은 끈으로 구성돼있어.


레즐리 윙클 : {레너드 (자니 갈렉키 역)를 보며} 계속 입 놀리게 놔둘 거야? 그렇지 않아.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고리양자중력이론으로만 계산이 돼. 고리양자중력이론이야말로 물리학의 미래야.


쉘던 쿠퍼 : 미안한데 난 고리보다 끈이 더 좋아.



#2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충돌기


2012년, 유럽 강입자가속기를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 최종 확인

막다른 길에 놓인 끈이론


누군가는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4년에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 박사 등이 '질량'의 원인이 되는 '힉스 장'을 형성하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질량이 없어 광속으로 달려가는 빛과 달리 강한 핵력, 약한 핵력 등은 힘이 미치는 범위가 제한적인데, 이는 곧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질량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힉스 박사 등은 이 때문에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을 많이 함으로써 입자에, 곧 만물에 질량이라는 고유한 성질을 부여하는 또 다른 기본입자의 존재를 가정했다.(빛은 힉스 입자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질량이 '0'이다).


이렇게 가설로만 존재하는 힉스 입자 등을 찾아내기 위해 2008년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충돌기가 가동을 시작했고,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한 두 입자가 만들어내는 파편 속에서 힉스 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수많은 방정식과 수많은 천재 마니아와 수많은 다중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초끈의 증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초끈이론은 1968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가브리엘레 베네치아노와 일본의 물리학자 스즈키 마히코가 19세기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공식이 자신들이 연구하던 입자의 산란에 대한 연구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에서 시작됐다. 오일러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물리학자들은 오일러의 공식이 입자보다 더 작은, 온 세상의 기본입자로 상정할 수 있는 '끈'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발견된 (17개의) 모든 기본입자는 더 작은 '초끈'의 고유한 진동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이며, 진정한 기본입자인 초끈에 대한 이론을 통해 중력을 다른 힘들 즉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과 통합해 비로소 20세기 이론물리학의 꿈인 표준모형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초끈이론은 수학(이론)에 빗댄 완벽한 대칭의 증명이 이 세상의, 곧 물리 세계의 실재를 표현하는 게 분명할 것이라는 일군의 과학자들의 믿음이었다.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 그러나 유럽의 강입자가속기는 끝내 초끈이론을 입증할 작은 증거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3


[빅뱅이론 시즌 7 (미국 CBS 시트콤. 2013년 방영) 에피소드 20] 중에서


쉘던 쿠퍼(짐 파슨스 역) : 어떻게 그 중력파 발견이 길거리의 사람을 돕느냐는 거야. 평범한 남자의 양자 물리학은 누가 돕겠어?


레너드 호프스태더(자니 갈렉키 역) : 맙소사, 너 질투하는구나?


쉘던 쿠퍼 : 내가 왜 질투해?


레너드 호프스태더 : 글쎄다. 우주의 기원이 밝혀져서? 힉스 장도 밝혀지고. 넌 지난 20년간 끈이론에만 매달렸는데, 아직까지 증명을 못했잖아.


쉘던 쿠퍼 : 난 할 일이 많아서 그래.


배리 크립키(존 로스 보위 역) : 엿들어서 미안한데 오늘 하드론 입자 가속기에서 끈이론에 대한 엄청난 발견이 있었어.


쉘던 쿠퍼 : 정말? 여분 차원이나 초대칭의 단서를 찾았대?


배리 크립키 : 아니. 대신 네가 잘 속는다는 단서를 찾았지.


쉘던 쿠퍼 : 왜 그런 짓을 해? 너도 끈 이론가잖아.


배리 크립키 : 아니 난 끈 실용주의자야. 증명할 수 없는 걸 증명하겠다고 하고 연구자금을 신청해서 그걸로 술과 여자를 사지.


.....


쉘던 쿠퍼 : 내가 증명할 수 없는 이론에 인생을 낭비하나?


페니(칼리 쿠오코 역) : 어쩌면... 대신에 '왕좌의 게임'은 엄청 재밌잖아.


쉘던 쿠퍼 : 난 내 전성기를 끈이론과 여분차원의 조밀화에 쏟아부었는데, 해낸 게 전혀 없어서 바보 된 느낌이야.


.....


쉘던 쿠퍼 : 그건 초타원 리만 곡선을 낙서로 그린 거야.


레너드 호프스태더 : 그걸로 포스닥 펠로십을 끝냈었잖아.


쉘던 쿠퍼 : 그랬지. 그땐 참 우아해 보였지. 하지만 그때 난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였고 대도시 이론에 낚인 거였어. 온갖 변수로 날 유혹했지.


레너드 호프스태더 : 괜찮을 거야.


쉘던 쿠퍼 : 알아. 힘들긴 하지만 나도 잊어야 해.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데 다차원 개체들을 계속 상정만 할 수는 없어. 나도 내 삶이 있다고! {울부짖으며 뛰쳐나갔다.}



[책] 단 하나의 방정식, 궁극의 이론을 찾아서_미치오 카쿠 저 (2021년 김영사 출판)



'빅뱅이론'은 2007년에 방영을 시작해 무려 12년 동안 거르지 않고 새로운 시즌으로 방영된 미국 CBS의 장수 시트콤인데 난 지난해 어느 때 겨우 2~3주에 걸친 몰아보기로 전체 시즌을 정주행 했다. 지금도 OTT 서비스를 이용해 본 작품 중에 최고를 뽑으라면 나에게는 '빅뱅이론'이다.


작품 전체에서 결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칼텍의 천재 과학자들이 이론물리학을 논하는 장면들은 별로 웃기지는 않았는데 뇌리에 파고들었다. 나 또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론물리학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시트콤을 보는 주제에 장면을 반복해서 돌려 보면서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초끈이론이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뉴욕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미치오 카쿠가 쓴 [단 하나의 방정식, 궁극의 이론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초끈이론, 빅뱅이론, 그리고 강입자가속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뇌의 수면 위에 떠올렸다. 미치오 카쿠는 끈이론에 대해 "완벽한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고백하며 글을 시작한다. "1968년에 끈이론이 느닷없이 출현했을 때부터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는 조심스러운 자기 방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2012년에 쉘던 쿠퍼 박사의 처지였을 것이다. 초끈이론을 조금씩 알 때부터, 그건 아마 이론물리학이라는 멋진 학문에 심취한 천재들의 놀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대충 생각했었는데 [빅뱅이론 시즌 7]의 쉘던 쿠퍼를 보면서는 그들에게 약간의 연민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끈이론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비평가들은 이론 자체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실제로 끈이론은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후 막다른 길에 놓인 상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론의 화려함과 수학적 치밀함에도 불구하고 검증 가능한 증거를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 때 물리학자들은  스위스 외곽에 있는 세계 최대의 강입자가속기 대형 강입자충돌기에서 궁극의 이론을 입증해줄 증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서문 중 13 페이지.)


수많은 천재들이 자신의 젊은 날을 끈이론에 바쳤지만, 끈이론이 실재를 반영하는 물리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도 나는 의심스럽다. 이론물리학자들의 관심사가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방정식과 조우해 완벽한 대칭이라는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했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차원, 근원, 기본입자인 끈 입자에 대한 상상력을 수학적으로 써 내려갔다고 해서, 그것이 실재를 반영하는 과학으로서 물리학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수많은 물리학 천재들에게 반박당하기 쉬운 무지렁이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한 편으론 초끈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언제나 맞닥뜨리게 되는 생각이다.


다만  그 또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단순한 이 세계의 진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 연민을 느낀다. 나 또한 나를 좀 들여다보면 한 때는 정치와 사회운동과 철학에서 찾아보고자 했던 것을 지금은 더 간절히, 그리고 외롭게 이론물리학에서 찾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일부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면서 끈이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끈이론의 수학이 아름답다고 해서 진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서 존 키츠의 시 <그리스풍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언제나 아름답다. /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이자, 알아야 할 전부이다. - (218 페이지)


미치오 카쿠 박사의 책 [단 하나의 방정식, 궁극의 이론을 찾아서]도 20세기 이론물리학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초끈이론'이라는 자신의 분야를 설명하는 대중과학서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이 세상의 진리, 궁극의 이론을 찾는 마음으로 물리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반복해서 읽을수록 머리를 맑게 해 주는, 그런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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