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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03. 2022

[서평]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_카를로 로벨리

미세한 세상


입자(양자) 1개를 두 개의 구멍이 뚫린 벽을 향해 쏘면 구멍 두 개를 동시에 통과한다는(이중슬롯 실험)는 양자 세계 이야기는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도 좀처럼 현실감이 없다. 더군다나 '무엇인가와 상호 작용(측정)을 하면 구멍 하나만 통과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는 마술 같다.


내 머리끝의 시간과 내 발바닥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양자에 비해 그 크기 면에서는 덜 미세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쉽게 납득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세상


중력이 존재하는 어느 곳에서든 공간이 휘고, 시간의 속도도 달라진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태양계가 엠보싱이고 내 주변에 나의 아우라가 흐르고 있다는데, 나는 늘 평평한 곳에 약한 존재감으로 존재한다. 여전히 반쯤은 농담 같다.


한 술 더 떠, 반상대성이론으로 설명되는 '중력장'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 중 우리와 상호 작용한 일부일 뿐이고, 중력장과는 작동 방식이 다른, 더 큰(?) 세상이 이중슬롯 실험에서 드러난 양자의 확률구름처럼 존재한다는 가설은 거짓말 같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물리학의 충돌


20세기 초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일생의 적잖은 시간을 이론물리학의 난제를 두고 논쟁했다. 아인슈타인 입장에서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우주에는 적용이 되는데,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인 양자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양자의 세계는 확률적이고 확률구름이 존재할 뿐 일반상대성이론 등 거시 세계의 일반이론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의 주사위 놀음"처럼 말이 안 되는 모순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 난제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도 무방하지만, 어쨌든 이 세상의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인간, 생각, 마음, 죽음, 자연, 초자연, 신, 우주, 타임머신, 블랙홀, 인터스텔라, 다른 세계, 공부의 부질없음... 등등 세상의 많은 문제들의 답도 결국 여기에 얽혀있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던 아인슈타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알고 보니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중력장, 양자의 불확정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것도 현실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아직 잘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세상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다. 하지만 양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단일한 이론, 물리법칙으로의 세상 통일은 아직까지 과제로 남았다.


바로 이때 등장하는 상당히 그럴듯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카를로 로벨리의 '양자중력 가설'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범용적으로 적용되는 세상인데, 이 세상도 알고 보면 사람과 시간의 연속성이 없는 무미건조한 진짜 세상(양자 세계)의 어떤 일부가 상호 작용을 통해서 확률적으로 드러났을 뿐이고, 우리와 상호 작용하는 세상을 포함하는 더 큰 세상은 양자 세계의 확률 구름처럼 상호 작용을 '당하지' 않은 채로 흐릿하게 존재한다.


그러니 물리계 전체에 해당하는 큰 세계가 양자와 같고, 양자 세계가 물리계 전체와 같다. 고로고로 인생은 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보면 무상이어라.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시간'을 소재로 양자중력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간이 흐르는 중력장과 시간이 변수가 되지 않는 양자의 세계를 더 큰 하나의 세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시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양자시간은 그 어떤 인과관계도 담보하지 않는다. 혹은 더 나아가 양자의 세계에서 시간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다만 양자가 '일반상대성이론이 범용적으로 적용되는 세상'과 상호작용해서 관찰 가능하게 됐을 때 인과관계가 구성되고, 시간도 구성된다. 이때부터 시간은 흐르고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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