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physis)철학이다. 오늘날의 터키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밀레토스를 중심으로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와 같은 위대한 자연철학자들이 활동했다. 이 시절의 자연철학이란 우주론이며 천문학이고, 기하학-수학이었다.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주의, 만물의 근원을 탐구한 이들의 활동을 소크라테스 이후와 구분하기 위해 오늘날에 '자연철학'이라고 명명했다. 천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 원자이론, 만물의 변화에 관한 이론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대표되는 수학적 정리들도 이때 많이 등장했다. 학문의 계보를 따지자면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이 뉴턴, 아인슈타인, 코펜하겐학파로 이어지는 고전물리학, 양자물리학의 뿌리다.
기원전 5세기 철학의 중심이 아테네로 옮겨가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밀레토스학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철학은 밀레토스의 자연철학과는 다루는 주제와 방식 등이 많이 달라 그 이름도 도덕(nomos)철학으로 명명했다. 자연철학의 명맥은 이 때도 이어졌지만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유보다 인간다운 삶과 이상적 공동체(정치)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가 주를 이뤘다.
과학과 철학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주와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과학은 애초에 뿌리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우주와 만물의 이해에 있어 자연과학적 근원과 철학적 근원이 상관없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우주가 먼저 존재했으며 인간도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일부일 뿐이니 당연한 이치다. 어쩌면 physis와 nomos의 분리가 학문에 장벽을 두지 않고 세상의 근원을 통찰하고자 노력했던 고대인들의 지혜를 이후의 인류에게서 박탈한 것일 수도 있다. 17세기 뉴턴 이후 과학과 철학은 좀 더 멀어졌지만, 가슴 아픈 최초의 결별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는 저서 '떨림과 울림'에서 "물리는 말 그대로 사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닐스 보어 등 코펜하겐학파가 대표하는 양자물리학(불확정성 원리), 리처드 파인만 등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이 공헌한 표준 모형, 카를로 로벨리가 대표하는 양자중력이론까지 20-21세기 이론물리학의 역사는 세상의 존재와 인식에 대한 근원적 탐구다. 그 무엇보다 자명하게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론과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 간의 논쟁은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실재하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존재론과 인식론을 20세기 과학이 이룬 성과에 기반해서 다룬 논쟁이었다.
존재와 인식의 근본 문제가 자연과학을 통해 사유되면서, 2,500여 년의 시간을 경과하여 과학과 철학은 다시 만났다. 만났다는 표현보다 한 몸이었던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 방식은 밀레토스 자연철학자들이 진지하게 탐구했던 자연철학의 주제들이 첨단 과학에 기반한 이론물리학(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과 20-21세기 천체물리학, 분자생물학 과학자들의 관심분야로 부활하는 방식이다.
이런 큰 변화가 단지 학문의 영역에 국한되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이 시대가 양자역학, 천체물리학, 우주론, 분자생물학 등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 우주과학, 첨단 의학의 발전 등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4차산업혁명의 양태들이 21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부터 기인했다. 강한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핵융합 발전, 우주 개발 등 중요한 미래 과학의 이슈들도 20세기 이후 physis의 성과들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들이 사람의 삶 자체를 재편하고 새로운 도덕규범(nomos)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했다. 노마드, 욜로 등은 삶의 일반적 양식이 변하고 그에 따라 삶을 이해하는 개인들의 태도와 가치관이 함께 변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들이었다. 일자리의 변화 또한 빠르고 거대하게 일어나고 있다. 확실히 우리는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로 구획되어 삶의 대부분을 비슷한 노동 현장에 포섭된 채 살아가는 과거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4족 보행 로봇 체험을 윤리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미래학자들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윤리를 진지하게 다루며 산업 현장의 새로운 규범으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500여 년 동안 도덕철학의 주체가 인간, 때로는 신이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동물, 로봇, 환경 등의 윤리 문제도 진지하고 때로는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됐다. 과학도 가치를 논한다.
과학과 철학, 자연과 인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기존의 분별 기준, 규범이 어느새 낡은 것들,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고 세상은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의 고비고비에 인간이 있다.
요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관된 이런 변화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우리 정치 공동체를 잘 이끌 준비가 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할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과 산업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사려 깊게 이해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대통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위해서 삶의 대부분을 임금 노동에 바쳐야만 하는 과거의 삶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사는 삶을 함께 준비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기회비용의 문제인 시간을 어떻게 인간답게 재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권교체 수준의 선거가 아니라, 사회 대변화 수준의 선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새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처음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2012년에 이를 반겼던 사람 중에 적잖은 다수가 나와 같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 당시에 로켓 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지인이 자신을 포함해 많은 이공계 연구자들이 안철수의 정치 참여를 반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여전히 미래, 새정치, 과학기술을 자신의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안철수 후보가 걸어 온 정치 행보는 과학의 미래보다 정치공학을 더 돋보이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통령 후보가 보편적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주 4일제'를 이야기하는 것에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삶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중 기본소득이 좀 더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임금 노동하지 않는 삶을 포함해 미래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그 안에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150년을 훌쩍 넘긴 역사적 좌파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은 꾸준히 단축됐지만 여전히 대부분 사람들의 시간은 임금 노동에 사로잡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다만 10여 년 전에는 기본소득 의제가 미래를 가리키는 깃발이자, 발상을 전환한 무기였는데 지금의 정치적 의미는 다른 것 같다.
끊임없이 이성을 깨우고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현재에 머물지 않는 깃발이 필요하다. 2,500여 년 전 밀레토스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도, 20세기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도, 그리고 변화와 혁명을 갈구했던 많은 사람들도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펄럭이는 깃발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