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전문가에게는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다."_짐 홀트
양자역학, 뇌과학, 리만-제타 추측, 소수와 무한대, 범주론과 프랙털, 차원과 다중 세계, 컴퓨터와 인공지능, 상대성이론과 끈이론, 우주론, 빅뱅 이론 등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다. 제목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하는 이유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과학을 대표하는 제1 키워드가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이리라.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과학 잘알못, 혹은 각 주제의 비전공자들이 보기에 만만치 않은 주제들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비전공자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미천할 테지만, 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컴퓨터와 상용화된 인공지능, 우주 개발, 핵물리학, 첨단 의학,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등 이 시대를 규정하는 하이테크들이 짐 홀트가 소개하는 이론과 아이디어들에서 비롯됐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과학 인텔리(학자와 관료, 유니콘 기업의 창립자들 등)와 다수의 무지몽매한 사람들 간에 새로운 권력 관계도 형성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2008년에 연출한 영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역)' 같은 '미국을 내가 만들었다'는 긍지로 가득 찬 사람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앞에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쩔쩔맬 것만 같다.
때문에 나는 '짐 홀트' 같은 사람이 좋다. 일면식도 없고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문외한에게 빛나는 통찰'을 일깨우기 위해 대략 20세기부터 최근까지 과학의 최신 동향과 성과들을 대중적 저술로 소개하는 사람들은 귀하고 소중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짐 홀트도 지난 20년간 쓴 것들을 묶어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라는 책을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는 시류에 편승하는 지식 정보들을 묶어서 나열하는 지식 소매상들의 급조된 교양서들과도 다른 책이다. 책의 모든 부분에 과학의 중요한 성과 지점들에 대한 짐 홀트의 분석과 통찰이 녹아들어 있다. 오랫동안 과학의 여러 분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이 공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만 같은 가치 있는 생각들이다. 때문에 하나의 분야에 평생을 바치는 과학 전문가들에게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다"는 짐 홀트의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닐 것이다.
제목에 아인슈타인이 들어가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다수의 과학자, 수학자, 이론가들이며, 무엇보다 저자인 짐 홀트다. 물론 나는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끌리는 주제부터 골라서 읽는 것도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일 듯하다.
[인사이드 아웃] 추상의 공간에 들어가기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제4부 [더 높은 차원들, 추상적인 지도들]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창조물] 편이다.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기하학적 창조물]에서는 애드윈 A. 애벗이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교사가 [플랫랜드 : 다차원 시대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차원의 다름과 차이를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소개한다.
.. "3차원보다 하나 더 높은 차원을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없다. 하지만 더 낮은 차원의 공간, 즉 평면을 상상할 수는 있다. 평면 세계에 갇혀 사는 2차원 생명체들의 사회가 있다고 하자.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와 같은 3차원 존재들은, 만약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그 세계 속을 통과하거나 그들을 우리 세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 플랫랜드(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는 사람이든 물체든 전부 직선으로 보인다. 플랫랜더들은 '각도'를 볼 수 없다. 이런 인식상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여성과 상인들은 사회적 교류 시 서로를 더듬는다. .. 어느 날 밤 (플랫랜드의) 스퀘어 씨가 아내와 함께 집에 있을 때, 유령 같은 '스트레인저'가 찾아오는데, 스페이스랜드에서 온 구형의 존재였다. 3차원 구가 어떻게 플랫랜드와 같은 2차원 세계에 들어올 수 있을까? 저자는 플랫랜드가 연못의 표면과 같은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귀띔한다. 연못 아래에서 올라와 표면을 뚫고 지나가면서 그 구는 연못 표면에 둥둥 떠 있는 2차원 존재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처음에 그들(스퀘어 씨 부부)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조금 후에 구가 표면에 처음으로 접촉하는 순간에 점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구가 계속 솟아오르면 이 점은 원으로 확장되는데, 원의 반지름은 계속 커지다가 구의 절반이 표면을 통과할 때 최댓값에 도달한다. 이어서 플랫랜더들이 보기에 원은 차츰 줄어들다가, 다시 점이 되었다가, 구가 표면 위로 완전히 솟아오르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봤는데 꽤 재밌다. 글을 읽어도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들이 '추상화 과정'을 지나가는 장면을 떠올려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먼저 추상화 과정의 세계에 들어가 점과 선분이 되어버린 기쁨이와 슬픔이가 바로 그 시점에 추상화 과정에 발을 들인 누군가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 "이제 이 모든 내용을 더 높은 차원에 비유하면서 마음껏 상상해보자. 만약 4차원 스트레인저 -초구(hypersphere)가 3차원 스페이스랜드를 통과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점 같은 작은 공이 나타날 텐데, 점점 커져서 구가 되었다가 다시 점으로 축소되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본 다양한 크기의 구들은 초구의 3D 단면일 테다. 어려운 대목은 이처럼 크기가 계속 변하며 3차원으로 출연하는 것들을 하나의 4차원 실체가 차츰차츰 자신을 드러낸다고 상상하는 일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대략 4차원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를 비로소 상상할 수 있었다.
짐 홀트는 애드윈 애벗이 소개한 차원의 세계가 가지는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평면인 2차원 세계에서 소리는 어떻게 전달될까 하는 문제다. 3차원 세계에서 소리는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는데, 그 파동은 2차원 세계에서 종이에 그려진 구불구불한 선이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공책에 파동을 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림이다.
아마 이런 문제일 것이다. 평면 위에 다양한 파동 형태의 수많은 곡선을 그리는데, 곡선들이 절대 서로를 방해하지 않도록(만나지 않도록) 그릴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플랫랜드'에서는 모든 소리가 또 다른 모든 소리를 방해하게 되기 때문에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가 많이 추천된 책이라는 것을 알기에 책 소개를 덧붙이는 게 꺼려지는 일이다. 하지만 심심할 때마다 꺼내 읽기 좋은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이 책을 읽은 때부터 늘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생각의 깊이도 얕고, 인류애가 깃든 담론도 무용하고 오직 포퓰리즘이 득세한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인문학의 바깥에서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학(physis)을 통해 새로운 규범과 가치(nomos)를 탐구해보는 것도 좋은 치유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