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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07. 2022

[서평] 생명이란 무엇인가_폴 너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꽤 알려진 20세기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찾다가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었던 영국의 폴 너스 경이 2020년에 쓴 동명의 책을 찾게 됐다.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1930년대의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모조리 참여한 솔베이 회의(논쟁)에서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 불확정성(행렬역학) 원리, 확률론적 해석에 맞서 논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와중에 코펜하겐 학파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았을까? 죽었을까?'라는 유명한 사고 실험을 전개했다. 또 행렬역학과 수학적으로 일치하면서도 천지 간의 차이가 있는 파동방정식으로 양자 세계를 설명해, 이론물리학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솔베이 회의(논쟁)가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런 슈뢰딩거가 생명에 대한 책도 썼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고, 20세기 이론물리학자가 다룬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아인슈타인-슈뢰딩거' 편이든, 코펜하겐 학파 편이든, 끈이론 물리학자든, 루프양자중력 이론을 지지하는 물리학자든 20세기 대부분 이론물리학자들은 양자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당연히 생명체도 그러하다. 이론물리학자들의 관점에서 사람은, 심지어 사람의 의식조차도 길바닥의 돌멩이와 근본이 같다.


슈뢰딩거가 생명에 대한 이론물리학자들의 관점을 대표하는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썼는데, 결과적으로 이 책을 구해서 읽는 일은 일단 미뤄뒀다. 알아보는 와중에 폴 너스 경이 쓴 동명의 책에 더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왼쪽)와 폴 너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책 표지


폴 너스 [생명이란 무엇인가]


최근의 생물학자, 뇌과학자들의 쓴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인데, 그들도 생명의 구조와 작동방식 등에 대해서 이론물리학자들처럼 생각한다. 관측 장비의 발달로 생명의 구조를 아미노산이라는 분자적 수준 아래까지 쪼개서 관찰할 수 있게 됐고, 유전자 단위의 생명현상을 물리적 정보 전달 과정(분자생물학)으로 봤던 슈뢰딩거의 생물학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폴 너스 경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분자생물학의 가장 최근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생명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쓴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도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을 정의하는데, 카를로 로벨리의 정의는 시적이었지만, 폴 너스 경의 설명은 생물학자답게 전문적이면서도, 카를로 로벨리 못지않게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 바라는 친절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 아주 짧게 요약하면 생명은 정보를 주고받는 세포 단위 생명체의 유기적 조직(물리적 실체)이며, 유지하고 성장하고 번식하는 화학적, 물리적, 정보적 기계(모듈)라는 것이 폴 너스 경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아마 적잖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어야 하며, 기계화된 인간은 영화 속 AI 인간이거나, 에반게리온 같은 부류에 해당한다고 많이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체의 가장 기본 단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화학반응은 무생물의 화학반응으로부터 기원하며, 그로부터 시작된 생명체의 연결망은 "모든 생물을 포함하는 드넓게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에 속해 있다."(207 페이지) 폴 너스 경과 같이 앞서 있는 생물학자들이 보는 세상은 영화 [아바타]와 같은 모습일 것 같다. 모든 생명을 연결하는 생명의 허브 '에이와'는 현실에 없지만, 모든 생명은 아주 오래된 우주, 태초에 생성된 무기물에서 비롯된 거대한 양자네트워크의 일부인 것이다.


폴 너스 경은 모든 생물체의 세포 주기 과정을 조절하는 활성효소(CDK)를 발견한 공으로 2001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는데,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읽다 보면 비전공자일지라도 단백질을 연료로 생물이라는 유기체를 운영해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CDK의 놀라운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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