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욕을 쓰지 말자> 를 주제로 도덕시간이나 조회시간에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종종 순화시켜 이야기해주는 나의 작은 일화.
버스에서 싸운 이야기
아직 차가 없는 나는 길을 가는데 주로 걷거나 버스를 탄다.
오늘은 오래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싸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욕을 쓰지말자.’는 언어교육을 할 때 가끔 곁들여 하는 이야기인데 나름 흥미가 있어 애들이 초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다만 아이들 앞에서는 여기 나오는 노골적인 육두문자 포함, 너무 자극적으로 단어로 이야기하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때는 아랫지방에서 영어교과전담 교사를 잠깐 맡고 있던 어느 여름 날이었다. 그 어느 날은 출장이 잡혀 있었다. 때문에 다른 학교로 가야하는데 자가용이 없으니 당연 버스를 이동수단으로 삼고 길을 나섰다.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기분 좋았다. 모두가 출근한 낮시간, 사람이 적은 버스 안에는 기사님의 배려로 시원한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고 창밖에는 눈부신 해님이 그 아래 미물들은 익던 말던 나몰라라 하며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었다. 버스에 탄 나는 언제 밖에서 헥헥거렸나 싶게 마음껏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는 운전하지 않는 자의 여유를 즐겼다.
도착지가 까다로워 환승을 해야했다. 한 정거장 뒤 환승구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내릴 준비를 하며 이어폰 줄을 정리하고 내리는 문 앞에 기다렸다. 지역마다 다르다지만 그때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환승을 하려면 반드시 내릴때도 단말기에 카드를 다시 찍어야 했는데 이는 다시말해 환승을 원치 않으면 다른 지역처럼 굳이 다시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는 규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규칙을 말하자면 카드를 찍고 30분 안에 환승을 해야지만 환승이 되었다.
나는 한 정거장 전 일어나 카드를 미리 찍지 않았다. 다음 환승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나는 먼저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단말기에 카드를 찍으려고 했던것 같다. (또 버스안에 사람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또 카드를 늦게 찍은 것도 있었다. 원래는 성격이 급해서 대기하려고 서자마자 찍는데.)
문이 열리자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 내리려는 사람들이,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이 일어섰다. 그 사람을 나는 단발이라고 부르겠다. (머리 모양이 단발머리였다.) 나는 너무 느리지 않게 카드를 찍으려 단말기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단발이 뻗어나간 내 손을 꺾을 듯 치며 버스에서 내렸다. 단발이는 아마 환승하지 않는 사람이었겠지. 왜냐면 그녀는 카드를 찍지 않았으니까. 나는 팔이 아팠다. 그 다음 카드를 찍고 내리면서 버스 바깥세상에서 느껴지는 사우나 같은 온도와 아픈 팔 때문에 기분이 확 상했다. “아, 아파.” 나도 모르게 딱 두글자가 입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갈 길을 가려는데 옆에서 엄청난 시선이 느껴졌다. 먼저 내린 단발이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인상이 꽤나 나쁘게 생긴 단발이었다. ‘뭐지?’ 생각했다. 왜 자기가 쳐놓고 나를 째려보나. 분명 사과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한참을 계속 째려보길래 (1,2초 잠깐이 아니라 한 5,6초 정도 됐던 거 같다.) 이정도면 싸우자 시비거는 수준이라 판단하고 말을 걸었다.
“뭐 때문에 그러세요?” 내가 말했다.
“방금 저보고 '시발'(단어를 적어내기만 해도 손이 떨리는... 초등금기어다.. )이라고 했죠?” 단발이 말했다.
“안 했는데요.” 물론 단발도 어이가 없겠지만 나는 진짜 안했으므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내 팔을 쳐놓고 이제 나를 욕한 사람을 만드네. 단발은 아마 내가 아프다고 했던 말을 욕으로 알아들었나보다.
“방금 네가 했잖아 이 시XX아!!!!!” 그렇다. 단발은 미쳐버렸다. 환승 정류장에서 모인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는 ‘시XX’이 된것인가. 나는 그녀가 첫 욕을 하자 한편으론 마음속이 갑자기 평화로워졌다. 예전에 아버지가 한 말이 있다. 상대가 흥분할 수록 그 흥분을 객관화 시켜서 보면 참 재미있다고. 그래서 남과 말다툼을 할때에는 말이 격해질 수록 객관적이고 차분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또 어릴 때 한번 싸워 본 경험이 있어서 이런 상황에 드는 감정을 잘 알고 있었다.)
단발을 객관화시켜보자 참 우스웠다. 내 앞에 흥분한 내 또래의 사람이여.
차분하게 다시 말했다.
“안했어요. 그쪽이 제 팔을 쳐서 그냥 아프다고 말했어요.”
내 말은 단발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당사자가 안했다고 하는데 계속 우기는 단발. 이번에는 나이를 묻는다.
“이 개(왈왈) 같은 X 야. 너 몇살이야? 존X 어리게 생긴게 말대꾸하네.”
단발이 방언이 터졌다. 단발의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저렇게 욕을 쓰는 사람이 정말 드물기 때문이었다. 말대꾸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이다. 수직적 관계에서 쓰이는 저 단어. 차분하려 했던 내 심장은 살짝 떨리고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어났다. 나도 화가 났다. 출장이고 뭐고 해보자.
“안했다고요.”
나도 단발을 째려봤다.
그러자 또 단발이 반격했다.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네가 나한테..”
응. 병신이구나. 말 귀를 못알아 먹는 구나.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고 싶지 않았다. 나도 성질이 나서 말을 끊고 소리쳤다.
“안 했다니까요!!!!! 그쪽은 남의 팔을 쳐놓고 미안하다고는 못할 망정 지금 뭐하는 겁니까!”
우리반 아이들 전체를 집중시키는 목소리로 더 크게, 그렇지만 언어 자체에는 무례함이 없게 소리를 질렀다. 바꿔말하면 반언어적 측면에서는 충분히 폭력적이었을 것이다. 단발도 움찔했다. 그래 30명을 잠재우는 나의 목소리가 너는 낯설었겠지. 그래, 이 정도 성량은 되야지 교사한단다.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봤다.
이런 대중의 관심이 얼마만인가.
잠깐 움찔하던 단발은 나를 칠듯 다가왔다. 단발이 다가올 때 주변 사람들이 대놓고 말리지는 못하고 이렇게 외쳤다.
"오. 오."
단발과 나. 체격은 둘다 비슷하다. 나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나를 대학생으로 본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돌아다닐 수 있는 젊은이는 거의 대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나는 왜 청바지를 입은 건지. 그래도 내 생김새를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여태 흔치 않았는데.
음악만 바꿔놓고 그때의 장면을 보면 단발과 내가 입맞춤하려고 드는 줄 알았을 것 같다. 단발은 정말 내 얼굴에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 입에서 매쾌한 담배냄새가 났다. 나는 담배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없다. 사실 친구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흡연을 하기 때문에 그 친구 때문이라도 담배피는 여자사람에 대한 호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흡연자라는 사실이 더 그녀를 싫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녀의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내가 여태 맡은 담배냄새보다 불쾌했기 때문인 거 같다. 입으로 나쁜말을 많이 해서 그렇겠지. 단발은 그런 담뱃재와 닮은 단어들을 골라가며 내게 욕을 시작했다. 속으로 욕을 참 잘한다고 놀랄만큼 욕을 아주 맛깔나게 했다.
단발이 내게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올리거나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하는 동안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그때 그녀의 욕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마지막 말을 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마지막 말로 인해 단발은 내게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본인 갈 길을 황급히 떠났다.
내 마지막 말, 그 말은 정말 단순했다.
"저한테 욕하셨죠? 주변 사람들도 다 들었어요. 저 경찰부를거에요."
그랬다. 나는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욕을 쓴 사람이 최대 200만원까지의 벌금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정확하지 않다. 대충 그렇다는 것을 카더라로 알고 있었다.) 단발과 나의 말다툼에서 단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욕이었고 나는 단 한번도 욕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욕을 쓴 순간부터 내게 패를 내준 것이다. 참 흥미로웠다. 경찰이라는 한마디에 바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봐요." 라는 말을 하다니. 나는 그 덕에 '시XX'에서 '저기.'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후 나는 다음 버스로 환승하러 갔다.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추가요금없이 환승을 할 수 있었다. 단발과의 싸움이 30분은 안 걸렸나보다. 나는 단발과의 싸움으로 다음 버스 안에서 손을 내내 떨어야 했다. 마음은 괜찮다 해도 몸이 굉장히 놀란 모양이었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단발의 장단에 맞춰 같이 육두문자를 쏘아주지 않고 공권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내가 아이들에게 늘 말했던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보다 현명한 방법을 찾아라." 를 어느 정도 실현한 것 같아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무용담을 다시한번 복습했다.
이야기를 다하고(아주 순화에서 요점만 말한 후)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드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욕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아이들의 생각은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멋있었다.
"그래. 우리는 나보다 힘이 쎈 사람을 힘을 쓰지 않고 이기려고 공부를 하기도 한단다."
하고 능청맞게 나는 아이들의 생각에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하나를 덧붙였다.
나는 내일도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겠지. 사실 음. 다음번에 단발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냥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우리가 싸웠던 시간을 아낄수만 있다면 말이야.
단발에게.
그때는 내가 일방적으로 사과를 받았었지만 말이야. 사실 나도 소리쳐서 미안해. 악을 지르는 것도 사실 욕만큼 나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나를 굉장히 어리게 봐줘서 고맙다. 너는 그날 아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항상 건강하고 잘 살아라. 네 덕분에 내 아이들에게 욕을 쓰면 안 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를 아주 생생하게 알려줄 수 있게 됐어. 사실 이게 가장 고마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