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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미상 Jul 20. 2023

건강한 애도가 필요한 이유

애도 :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

   모든 떠나간 것들에는 애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상실하는 아픔은 감히 헤아릴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시간이 흐르고,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건강한 애도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중학생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지나간 과거를 떠올려 보면, 그때의 저는 엄마를 애도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됐던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거든요. 당장 며칠 후면 치게 될 중간고사가 더 두려웠는지, 평소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정도였어요.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당연히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아마 당시의 저는 도저히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영영 떠난다는 건 슬픈 일이고, 그때의 저는 어렸으니 다 큰 어른보다 더, 더 힘이 드는 일이었겠지요.


   고등학생 때도 별로 다를 건 없었어요. 한국의 고등학생들 대부분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저에게는 성적을 잘 받는 일이 정말 중요했거든요. 타고난 것이 없는 저에게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 좋은 직업을 얻는 게 평범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종종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우직하게 공부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달리니 운도 그런 저를 응원해 주는 듯, 제게 많이 찾아왔어요. 목표하는 대학에 기적처럼 입학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미뤘던 삶의 과제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로 찾아온 삶의 과제는 ‘애도’ 였어요.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엄마가 많이 떠올랐고요. 대부분은 후회로만 점철된 과거를 떠올렸어요. 그때 엄마께 좀 더 잘할 걸 하는 그런 후회들이요.


   물리적으로 엄마는 제 곁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지 꽤 되었어도, 어디에나 엄마는 제 곁에 있었어요. 종종 강의를 들을 때 갑자기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고, 좋은 곳에 갈 때면 꼭 엄마가 빠지지 않고 생각이 났거든요.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에요. 실은 그렇게라도 의식적으로 엄마를 기억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 엄마를 제대로 애도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의식적으로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제 삶에 제가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디에도 내뱉지 못하고, 혼자 보는 일기에만 쓰는 것은 제가 아직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지요. 엄마가 떠나시고 한 5년간은 그렇게 엄마로 시작해서, 엄마로 끝이 나는 일기를 썼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은사님이 제게 건강하게 엄마를 애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엄마의 글을 공개된 블로그에 써 보자고 제안해 주셨거든요. 처음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혼자 보는 일기장이 아닌 곳에서 쓰게 됐어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를 많이도 썼네요. 노래를 좋아하던 엄마,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엄마, 미련할 정도로 우릴 사랑하던 엄마. 글을 쓰는 동안 엄마를 떠올리며,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학창 시절에 흘리지 않고 참았던 눈물을 모아둔 것처럼, 많이도 울었어요.


   그렇게 엄마에 대한 글을 미련 없이 쓰고 나니, 제 삶에서 제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공개된 곳에서 글을 쓰며 엄마가 제 곁에서 떠났다는 것을 진심으로 수용했으니까요. 그 이후로 엄마가 떠나신 후 나의 삶은 정말 괜찮은 건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건강하게 엄마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약 한 달 전은 엄마의 기일이었어요. 엄마를 찾아뵙고 싶었지만 타지에 살아 쉽게 갈 수가 없었어요. 작년에는 바다를 찾아, 엄마를 애도했지만 올해는 그저 제 일상을 살았어요.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나니, 왠지 좀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이렇게 엄마를 보내드리는 것이 맞는지 하고요. 건강히 보내드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애도의 형태가 달라짐을 느낍니다. 미성숙했던 학창 시절에는 애도 자체를 하지 못했고, 좀 더 나은 대학생 때는 과거의 엄마를 떠올리며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애도의 방법이었고요. 요즘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향기를 맡을 때, 다정한 모녀를 볼 때,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가 들려올 때, 그렇게 자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리는 게 지금의 애도방식인 것 같아요. 아마 시간이 지나 제가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릴 때쯤에는 또 다른 형태로 엄마를 애도하고 있겠지요. 그때는 엄마와 비슷한 시선에서, 엄마를 추억하고 떠올리게 될까 문득 상상하곤 합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성숙해진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들도 옅어져 가요. 현재를 살아갈수록, 과거가 설 자리는 자연히 없어지니 당연한 거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엄마가 좋아했던 꽃들을 볼 때면 엄마가 떠오르긴 합니다. 엄마는 꽃을 정말 많이 좋아하셨거든요. 엄마를 떠올리고, 애도하는 형태는 모습도 세월 따라 달리하게 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애틋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래서 저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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