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꼬맹이가 있다. 신나게 까부는 중이다. 그러다 다친다는 어른들의 경고가 들릴 리도 만무하다. 얼마 안 가 결국 넘어져 세게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우리의 꼬맹이. 막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마침 옆에 있던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가 한마디 던진다. “울지도 않고 씩씩한 애구나.” 아까 경고한 그 아저씨는 아니다.
이상하다. 이 한마디에 막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간다. 어린 시절 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당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쳇, 그깟 칭찬 따위 뭐라고. 어른이 된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괜히 쫀심 상하는 일이다. 아프면 우는 게 더 감정에 솔직한 거니까. 그리고 진짜 어른은 자기 감정을 속이지 않으니까. 언젠가 학번 앞자리가 9로 시작하는 선배 하나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중심 잡고 살아. 인마. 휘둘리지 말고.”
배운 적도 없는데 나도 어린아이들을 구슬릴 때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다. 동생한테 장난감도 양보할 줄 아는 듬직한 형, 친구와 간식도 나눠 먹는 착한 아이 등 여러 버전이 있다. 숙련되면 어른용으로도 응용이 가능한데, 써 보지는 못했고 당하기만 했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아직도 일하는 거야? 역시! 사람 잘 뽑았다니까. 이 사원만 믿고 있다고! 든든하구먼!” 제기랄... 가방 싸서 이제 막 나가려던 참인데...
동생들 돌보는 일에 지쳐 혀를 집어넣는 것도 잊고 탈진해 버린 츠동이. 초과 근무는 이렇게 안 좋다.
고양이도 칭찬이 필요한 어린아이 같다. 나도 그렇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이 후한 아내를 만나 다행이다. 다만 고양이와 달리 칭찬 좀 받았다고 배를 까뒤집지는 않는다. 4단계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냥이들의 가장 격렬한 표현 수단, 스크래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칭찬은 고양이도 스크래치하게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냥이들이 아주 격렬하게 스크래칭을 할 때가 있다. (겁쟁이 구로는 쓱 한번 보고는 다시 침대 밑으로 도망간다.)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라는 식이다. 스크래칭을 하는 내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칭찬을 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어이구 잘한다.’ 칭찬을 해 주면, 말을 이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더욱 격렬히 뜯는다. 너무 귀여워서 궁디 팡팡을 안 해 줄 수 없다. 이후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신나서 더 격해지거나, 아니면 이제야 만족한 듯 배를 까고 벌러덩 드러눕거나.
발톱을 연마 중인 츠동이와 마끼
집사에게 스크래처는 필수품 아닌 필수품이다. 스크래처가 없다고 해서 고양이에게 큰 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필수품은 아니다. 다만 집사에게는 큰 해가 생길 것이다. 집사의 몸뚱이를 제외하고 긁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발톱에 뜯기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집은 네 마리나 되는 냥이를 키우며 그렇게 큰 피해는 안 입은 것 같다. 아끼는 수트 한 벌, 안방과 거실의 벽지, 침대, 소파 그냥 뭐 이 정도... 피해 물품에서 아내의 옷은 제외했다. 스크래처가 왜 필수품인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스크래칭은 본능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스크래칭을 통해 여러 겹으로 된 발톱 중 바깥쪽의 죽은 발톱을 제거하여 날카롭게 유지하고 흥분감도 해소한다.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집사가 돌아오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꺼낼 때면 난리가 난다. 스크래처 사용을 칭찬해줄수록 더 애용하게 되는 점도 재미있다. 만약 스크래처가 있는데도, 가구만 진탕 뜯는 녀석이라면 훈련이 필요하다. 채찍은 안 통하고 그나마 당근이 통한다. 스크래처에 캣닢을 두어 사용을 유도하고, 잘 사용했다면 좋아하는 간식과 함께 격한 칭찬 멘트를 날려 주면 좋다.
거칠게 뜯겨 버린 침대. 고양이들의 냥냥 펀치에 밑이 터져 버렸다. 덕분에 좋은 고양이 아지트가 되었다. 털이 너무 많이 붙어 더 너덜너덜해지면 칼로 잘라낼 생각이다.
스크래치광 냥집사를 위한 잠언
스크래처를 검색하다, 고양이 스크래칭 방지를 위한 발톱 제거 수술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단언하건대 미친 짓이다. 물건이 상하는 게 싫어서 고양이의 발톱을 뽑는다...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속상하다. 이 수술은 단순히 발톱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 첫째 마디의 뼈를 잘라내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손가락의 위쪽 마디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 고양이의 발톱을 제거하면 균형감각도 무뎌지고,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를 동물학대로 보고 불법화한 사례가 많다. 스크래칭 행동 때문에 고양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냈으면 한다.
스크래처를 곳곳에 배치했는데도 불구하고 가구를 뜯는 냥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녀석들 얘기다. 스크래처도 잘 쓰지만 소파는 소파대로 뜯는 맛이 다른가 보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다. 일단 한 녀석이 조그만 발톱 구멍 하나만 만들어 내면, 다른 녀석들도 뜯기 시작한다. 역시 맏형답게 시작은 언제나 츠동이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아내와 나는 집사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작년까지 쓰던 소파이다. 아주 멀쩡했던 처음 모습과 다르게 금방 등받이 윗부분이 죄다 뜯겨 버렸다.
우리는 소파를 가구로 보지 않는다. 과장을 조금 보태, 소파는 소모품일 뿐이다. 절대 비싼 소파를 사지 않는다. 만약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심하게 가구를 뜯는 경향이 있고, 행동 교정도 어렵다면 굳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비싸지 않은 가구를 구입하는 편이 좋다. 천국도 지옥도, 사람 밖에 있지 않다. 다 내 마음 속에 있다. 모든 건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소파라고 생각하지 말고, 소파 기능을 갖춘 거대한 고급 스크래처라고 생각해 보자. 이런...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해지는 것은 왜일까?
벌써 네 번째 소파이다. 발톱 자국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같은 경우 20만 원이 넘는 소파를 구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