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집단에 속해 소속감을 느끼고 구성원으로서 보호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정정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만 그렇다. 미움을 받고 싶어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놈들도 있다.
고양이는 어떨까? 고양이는 무리 생활을 하지 않으며 독립적 성향이 강한 동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캐릭터이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반려동물을 하나밖에 기를 수 없는 여건인 사람에게, 그래서 고양이는 충분히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개와 달리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아 키우기 좋다는 말도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야생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차이가 간과됐다. 새끼 때부터 집사와 함께 자란 고양이를 종일 혼자 두어도 좋다는 건 야생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대우일 수 있다. 집사를 자신이 돌봐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귀여운 녀석도 있는가 하면, 집사를 부모나 형제처럼 생각하는 녀석도 있다. 고양이도 혼자 있으면 외롭다.
연봉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마끼는 세상 모든 존재 중에서 나를 제일 좋아한다. 연어, 참치, 소고기, 돼지고기, 기타 수많은 고기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고양이도 외로움을 타니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결국 개묘(個猫) 차이다. 당연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고양이를 들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고양이를 입양해 외로움에 처하게 만드는 건 나쁜 집사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길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한 고양이를 거둬 함께 지낸다는 것 자체가 숭고한 일이다. 다만 모든 고양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오해가 거둬지길 바라는 바이다.
고양이가 애정을 느끼는 건 확실하다.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대상은 같이 지내는 고양이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개를 함께 키우는 집에서는 개가 될 수도 있다. 항상 개가 당하는 포지션이라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고양이가 좀 얄미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3단계 소속과 애정의 욕구를 대표하는 용품은 쿠션과 종이상자이다.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이다. 존재의 외로움과 종을 초월한 사랑을 말하다가 쿠션과 종이상자라니. 심지어 종이상자는 엄밀히 말해 용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세상일이 그렇다. 상자로 ‘포장’만 잘하면 된다.
맏형인 츠동이를 베고 자는 걸 좋아하는 삼남매. 구로는 츠동이 형아의 엉덩이를 특히 사랑한다.
쿠션은 카페이다
고양이에게 쿠션은 카페와 같다. 길거리의 벤치에 앉아서도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지만, 이왕이면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시켜 놓고 대화하는 게 더 즐겁다. 푹신한 쿠션 위에 누워 서로 털을 맞대며 체온을 느끼고 나른해지는 걸 보면 세상 더없는 행복의 경지를 만끽하는 것만 같다.
털이 쿠션 위주로 묻기 때문에 청소가 조금이라도 용이한 것은 덤이다. 털 색깔이 모두 모두 제각각인 네 똥냥이들을 함께 키우다 보니 더 그렇다. 바닥은 청소기를 돌리면 끝이지만,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침대 커버에 묻은 털은 제거하기가 어렵다. 털이 눈에 보일 때만, 일명 돌돌이를 이용해 제거하는 편이다.
실제로 쿠션을 이용하다 보니 이런 선순환이 보인다. 뭔가 눕기 좋게 생겼는데, 누워 보니 편하다. 형제 냥이들 냄새가 나는 게 참 익숙하다. 익숙해서 쓰다 보니 내 냄새도 많이 난다. 서로 많이 사용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냥이들끼리 함께 쓰게 된다. 같이 사용하는 모습이 아주 사랑스럽다. 이런 모습을 더 보기 위해 쿠션을 하나 더 구매한다.
애용하는 위치에 넉넉한 크기의 쿠션을 깔아 주면 두세 마리가 함께 모여 잠을 자는 아주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의외로 네 마리가 동시에 모여 있는 모습이 드물다.
종이상자는 술집이다
쿠션이 그저 휴식을 위한 카페 같은 곳이라면, 종이상자는 술집쯤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는 묘한 흥분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술집이 더 신난다. 쿠션을 주문해서 깔아 줘도, 쿠션이 아니라 쿠션이 들어 있던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게 고양이다. 상자가 하나뿐이면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가 난다. 이 또한 교감이고 애정이 바탕이 된 싸움이리라. 정말 싫으면 피하는 법이니까.
혹 한 마리밖에 못 들어가는 크기라면 보통은 힘센 츠동이가 차지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크다 싶으면 마끼가 추가된다. 종이상자는 씹고 뜯고 맛보기도 좋다. 이빨로 뜯거나 발톱으로 찢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종이상자만 보면 죄다 물어뜯어 버리는 츠동이는 냥이들 중 제일 건치를 가지고 있다. 분리배출을 위해 써야 하는 상자들도 죄 뜯어 놔서 쓰지 못할 지경이 된다. 속상하다.
상자야 미안해 1
고양이가 상자를 좋아하는 것은 생존 본능 때문이다.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천적으로부터 사냥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신의 모습을 감춰야 한다. 이런 본능을 충족하기에 상자는 최적의 장소이다. 집사의 입장에서, 이런 본능은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보통 장을 보고 상자에 한가득 물건을 싣고 오거나, 주문한 택배 상자를 안으로 들여놓으면 불길한 느낌과 함께 고양이 세 마리가 (구로는 침대 밑에 숨어 있다.) 어슬렁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정리가 끝나기도 전, 녀석들은 일단 상자에 들어가고 본다. 힘들다. 내용물은 관심도 없다. 상자에서 해산물이나 육류 냄새가 날 때의 마끼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상자야 미안해 2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운명이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 얇은 이불의 모서리 끝마다 노끈을 묶고 끝을 집안의 장롱이나 책꽂이에 묶어서 텐트처럼 만들고 동생과 놀다가 잠들곤 했다. 그 안이라고 별다른 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폐쇄감이 주는 평화로움 같은 것이 있었다. 해군 복무 시절, 배 생활을 2년 동안이나 버틸 수 있던 이유일까. 폐소공포증이 있는 아내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한 배를 탔던 전우들이 갑자기 보고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