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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ug 08. 2022

코로나에 걸리면 보이는 것들, 고양이의 하루

고양이의 하루

4냥꾼 캣브로, 일흔세 번째 이야기




난 끝까지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코로나 말이다. 글을 올리는 지금은 이미 격리 해제가 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갔으니 안심하시라. 랜선으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격리 생활 중 일주일 24시간을 오롯이 고양이들과 지내며 느낀 일들에 대한 단상이다. 이름하여 코로나에 걸리면 보이는 것들, 고양이의 하루이다.


내가 영화에 나오는 슈퍼 면역자라도 되는 줄 알았다. 동생네 부부와 조카도 걸리고, 방 안에서만 지낸다는 친구마저 걸리는 상황에서도 정말 나만큼은 끝까지 안 걸릴 거라 생각했다. 방역 지침도 잘 준수하고 사무실에서도 커피 마실 때를 제외하면 마스크를 거의 벗은 적이 없었다. 억울하진 않다. 그보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는 이런 생각부터 들었을 뿐이다. 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도 일주일이나.


아내와 고양이 걱정은 그다음이었다. 우리 집엔 천식이 있는 아내와 아파도 표현하지 못하는 고양이들이 산다. 불안했다. 아내에게 확진 이야기를 전하자 아내는 고양이 걱정부터 했다. 분했다. 걱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가 아니다. 걱정의 이유가 불순했다. 그 이유인즉슨, 본인이 없는 일주일 동안 내가 고양이들을 잘 챙겨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형아, 다행히 인수 감염 사례는 엄청 드물대. 형아가 아픈 거지 내가 아픈 게 아니니까 괜찮아."


이런... 아무리 내가 무심한 남자이로서니 집사 짬밥이 몇 그릇인데 고양이를 걱정하나. 캣브로라는 이름으로 써낸 수십 편의 고양이 글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아내는 단순히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 동안 우리 이쁜 냥이들을 보지 못하는 게 섭섭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


캣브로, 츠동이, 구로, 루비 그리고 께동이. 나를 포함해 수컷만 다섯인 집안은 굉장히 차분했다. 예부터 음과 양의 조화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활기가 없는 것과는 달랐다. 나도 고양이도 고요히 내면의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개뿔, 잊고 있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그냥 게으르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녀석들은 생각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 보이지 않았던 사실이다. 어쩌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출근하며 한 번, 퇴근해서 한 번 하루 두 번이었던 배식 횟수가 네 번으로 늘어났다. 언제든 밥을 채워 줄 집사가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밥그릇을 채우는 족족 다 먹어치운다. 엄마는 안 오고 시커먼 형아만 컴퓨터 앞에 눌러앉아 일을 하고 있으니, 그리운 엄마의 부재감을 포만감으로 채우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녀석들은 생각보다 많이 잔다. 집사의 생활 리듬에 맞추어 야행성 본능을 포기했을 뿐, 낮에는 좀 활발히 움직일 줄 알았다. 아니다. 낮에도 잔다. 침대에서도 자고, 냉장고 위에서도 자고, 작은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술에 취해 집 앞 공원 벤치에서 밤하늘을 지붕 삼아 한 숨 때리던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먹거나 또는 자거나. 나도 다음 생에는 꼭 고양이로 태어나 우리 아내 같은 집사를 만나고 싶다.


스트레스 가득한 통근길을 겪지 않아도 되니 일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마는 집에만 꼬박 일주일을 갇혀 지낸다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꼬박꼬박 나가던 운동도 못 하게 되니 어떤 불안함 같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격리 기간 동안 아내를 포함해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이거 겁나 고독하구먼.


그런 날 우리 냥이들이 잡아 주었다. 일주일을 오롯이 냥이들과만 함께 지내며 새삼 이 녀석들의 소중함도 다시 느꼈다. 녀석들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갈아 주는 나의 존재가 꼭 필요한 것처럼 나도 이 녀석들이 필요했다. 이 작은 냥이들이 내 곁에 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바닥에 심상치 않은 검은 얼룩들이 보였다. 불안한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다. 냄새를 맡아 보니 생각했던 그것이 맞다. 누구일까. 가뜩이나 혼자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집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 누구일까. 제 기능도 하지 못하는 코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녀석들의 발 냄새를 하나씩 맡았다. 이 놈들은 사족 보행이니 한 녀석당 네 번의 킁킁, 도합 열여섯 번의 킁킁.


범인은 께동이. 범행 도구는 오른쪽 뒷발. 아직 어린 께동이가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래서 초짜는 안 된다니까. 그때의 난 형사라기보다는 마약 탐지견에 가까웠다. 나와 통화하던 민원인도 몰랐을 것이다. 전화 통화 중인 상대가 고양이 발 냄새를 열심히 맡고 있었을 줄은.


범인 검거 완료. 누구 제 손금 좀 봐 주실 분?


일주일을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더러워진 께동이의 발을 닦아 주다 못생긴 손에 영광의 상처까지 입고 말았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 따위라니. 내 잘못 맞다. 발이 땅에 닿게 했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배를 들고 씻기다 이 사달이 났다.


괜찮다. 냥이들 전부가 내 옆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내면의 세계로의 여행은 실패했지만 고양이들과의 일주일짜리 캠핑은 더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즐겁다고 했지 쉽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건 또 누구 짓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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