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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희 Oct 05. 2020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려다 독한 년 됐다

나를 강하게 만들다 1

14년 전 일이다.

당시 아이들은 9세, 8세였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에 아이들 잠자기 전 독서를 위해 책 한 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들려오는 남편의 말 한마디

"독한 년"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려다 독한 년 됐다.




당시 집 상황은 너무 안 좋았다.

결혼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남편이 결혼 전 선 보증으로 집이 풍비박산이 된 상황이다.

남의 돈이지만 빚을 갚아보려고 아등바등 살아간 지 8년이 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빚을 갚을수록 빚이 더 많아지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

빚 하나 해결하면 숨어있던 빚이 툭 툭 터졌다.

나에게 독한 년이라고 한날도 언쟁이 있었다.

나는 웬만하면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다투고 아이들이 있으면 일상으로 돌아오려 애썼다.

남편은 싸우고도 아이 앞에서 싹 변하는 나의 모습을 싫어했다.

나는 점점 남편에게서 마음이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같이 사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어질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힘든 상황도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매일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나는 아내로서 최선을 다한 만큼 엄마로서 아이를 지켜야 했다.

그건 엄마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기본을 해주려 했지만 나의 상황은 기본조차 노력이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싸움이 전쟁을 경험한 것과 같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공포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문제로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은 내가 평소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도 아마 분위기를 부모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나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같이 웃었다.

그렇게 웃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나는 아이들에게 안전지대이고 싶었다.

'엄마'하면 편안함이 떠오르는 존재고 싶었다.

나의 변함없는 모습, 일상을 보여주는 것은 잠자기 전 책 읽기였다.

아이들과 책 읽기는 갓난아기 때부터 했던 것이다

책 읽기는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었다.

평소처럼 변함없는 행동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매일 롤러고스트처럼 생활이 위태로웠지만 

아이들과 나의 생활은 평온했다.

힘들수록 내가 지킬 수 있는것은 책 읽기 루틴이다.

힘들수록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했던 것이 잠자리 책 읽기였다.

잠자리 책 읽는 시간만큼은 아이들은 행복했다.

아이와 나의 웃음은 더욱 커졌다.

분위기가 냉랭한 집안이 아이들 웃음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기억은 편집된다고 한다.

잠자리 책 읽기 덕인지 성인이 된 아이들은 어린 시절 분위기 안 좋은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좋았던 기억만 남았다.

좋은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이 더 강하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은 것은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한 기억이 부정적인 기억을 약하게 한 것이 아닐까?


책 읽기로 나는 독한 년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편안한 밤이 되었다.




그림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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