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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희 Oct 31. 2020

나는 아이 앞에서 명함을 버렸다

나는 엄마다

"엄마는 엄마예요? 선생님이세요?"

"왜"

"밖에서는 선생님이지만 집에서는 선생님이 아닌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큰애가 말했다.


나는 아이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고 큰 언쟁이 없이 지내서 혼자서도 아이들을 잘 케어하고 있는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는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변했다.

스멀스멀 학습에 대한 욕심이 올라 오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학습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의 말투가 되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큰애의 말에 나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큰애가 말한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이해했다.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생각을 전달하거나 시킬 때는 선생님의 말투였다.

난 그 말투가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집에서도 선생님인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서는 아버지여야 하는데 선생님의 모습으로 있으면 불편했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당신이 읽은 신문 이야기를 밥상머리에서 해주셨다.

나는 신문 이야기하는 아침 시간이 너무 싫었다.

아침밥 먹으면서 신문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선생님 같았다.

신문 내용 궁금하지 않은데 왜 알려줄까?


집에서는 그냥 아버지였으면 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어떤 대화를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신문 내용을 알려주는 것은 선생님이 아닌 아버지도 할 수 있다.

선생님이라는 명함 때문에 아버지가 하는 말씀에 힘이 들어가면 선생님처럼 느끼는 것도 선입견 인지도 모르겠다. 

학장 시절 예민한 나이의 나는 선입견도 당연한 논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아버지를 원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조언을 할 때는 '나도 알거든요'라고 마음속으로 대꾸를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아버지의 싫은 모습을 닮아 있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고학년이 될수록  잔소리가 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양육의 개념이 크기 때문에 잔소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니 교육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학창 시절 나의 아버지처럼 아이를 가르치려 했다.

아이가 말을 안 했다면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변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아이 앞에서 선생님이라는 명함을 의식적으로 버리기로 했다.

버릴 것은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지인들은 내가 독서논술강사라서 아이들을 지도하기 편할 거라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서논술강사이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더 조심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독서논술강사의 모습이 아니라 엄마였다.


나는 하루 중 언제가 가장 엄마였는지 생각했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매일 밤 책 읽어주는 시간이었다. 

책읽어주는 시간은 그냥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 읽어주면서 웃는 아이들의 모습, 나의 모습은 눈으로 찍어 두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나도 책 읽어 줄때는 욕심도 없다.

그냥 재미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나와 편하게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독서논술강사의 모습이 아니라 친숙한 엄마의 모습을 원했다.

엄마가 선생님으로 변신하면 아이들은 싫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 때의 나의 마음과 표정,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를 기억했다.

그 기억을 꺼내면서 일상에서 아이들을 대했다.

엄마의 모습을 찾으면서 독서논술강사인 나의 명함은 하나씩 버렸다.

점점 나는 아이들에게 진짜 엄마로 다가가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호칭이 중요하다.

선생님과 제자, 친구, 애인, 선배, 할아버지, 할머니 등으로 만나면 호칭이 그에 맞게 불려진다.

아이와 나는 처음 만날 때 자식과 엄마로 만났다.

이미 어릴 때부터 불려진 호칭이 있는데 익숙한 호칭을 벗어난 행동은 아이들도 불편할 수도 있다.


아이와 나는 자식과 엄마의 존재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다. 

내가 잘 나가는 강사가 되던 잘 안 되는 강사가 되던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엄마이다.

아이들은 어떤 조건을 가진 엄마가 아니어도 된다.

그냥 엄마면 된다.


아이는 부모가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최고의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감이 커진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것을 부모에게서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다.


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엄마다.



그림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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