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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고경희
Sep 17. 2020
직장을 그만두게 한 아침밥
선택의 길림 길
"엄마랑 아침밥 먹고 싶어요."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한 말이다.
당시 나는 싱글맘으로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강의가 들어오면 어디든 갔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수업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시내 초등학교에서 아침 0교시 수업 40분.
0교시 수업 후 차를 타고 1시간을 간 학교에서 2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
(방과 후 독서논술강사였지만 학교수업시간에 독서수업을 했다.)
다시 시내로 들어와서 오후까지 방과 후 수업을 했다.
점심도 운전하면서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방학에는 방학특강을 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돈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돈을 벌고 아이와 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내가 아침 일찍 나가려면 아이들도 같이 움직여야 했다.
내가 0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더 빨리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먼 곳에 있는 학교까지 나가게 되자 아이들과 나의 생활은 더 바빠졌다.
아침시간이 바빠진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중 큰 애가
"엄마, 학교 하나 빼면 안돼요?"
"왜?"
"엄마랑 아침밥 먹고 싶어요."
나는 아이의 말에 놀랬다.
아이가 아침밥을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줄 몰랐다.
큰 애는 소위 말하는 착한 아이었다.
어릴 때부터 상황에 맞게 알아서 하는 아이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도 내가 학교 가지 말고 본인을 위해 시간을 내주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말이었다.
큰 애는 내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했다.
그런 큰 애가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한 것은 많은 생각을 하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아침 일찍 학교 출근하는 날은 아이들을 친정집에 맡기고 갔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차려주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아무 말 없이 잘 따르던 큰 애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돈을 벌어야 할까?
아이 말을 듣고 아침밥을 같이 먹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둔다면 당연히 먼 거리 학교이다.
그런데 먼 거리 학교는 월급을 많이 줬다.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데 그 돈을 포기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 끝에 먼거리 학교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돈보다 아이가 중요했다.
학교는 1년 다니고 재계약 후 다시 다니는 중이었다.
1년씩 계약해서 다니는 데 중간에 계약을 파기하면 학교에서도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니던 것을 마무리하면서 반년을 채우고 그만 뒀다.
큰 애가 말하는 아침밥이 더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당시 큰 애는 많이 힘들어했다.
아빠의 빈자리로 병명을 알 수 없이 가슴이 아프고 혼란스러워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저녁에 시간을 많이 갖고 얘기도 했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침밥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큰 애가 같이 먹고 싶다는 것은 '아침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큰 애에게 '아침밥'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엄마가 차려 준 음식에서 느끼는 사랑.
엄마와 같이 밥 먹으면서 마주 보는 얼굴.
바쁜 아침시간보다 편하게 맞이하는 아침.
이런 아침으로 숨을 고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도 혼란스러운데 숨 가쁘게 움직이는 생활에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상황들이 큰 애는 힘들었을 수 있다.
같은 상황이지만 아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된 것이다.
나는 아이의 그런 마음이 이해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그리움을 아침밥으로 채우는 것이 힘들겠지만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받는 것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도 학교 한 곳을 그만두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겨 큰 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아이의 가슴을 한 번 더 쓸어내릴 수 있었고.
아침밥을 원하는 아이에게 따뜻한 밥과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볼 수 있었다.
큰 애는 아침밥으로 마음의 허전함도 조금씩 채워갔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맛있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집밥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집밥에는 '사랑, 관심, 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본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타지역에 갔던 학생들이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려고 비행기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을.
그들은 집밥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 관심, 정'을 느끼러 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을수록 집밥, 고향,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은 정, 사랑 때문이다.
큰 애도 마음의 허전함으로 갈피를 못 잡을 때 마음을 채울 정,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이 입으로 표현한 '아침밥'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에는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집밥에는 돈 주고 사 먹는 밥에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집밥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림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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