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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희 Aug 22. 2020

너, 절대 동물 키우지 마

무슨 생각이니?

초등학생 때 동물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그마한 금붕어를 키웠다.

어항 속에서 노는 금붕어가 너무 예뻐서 어항 앞을 떠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빨간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금붕어도 행복해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렇게 금붕어는 나와 같이 행복을 느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난 나는 금붕어를 보려고 어항 앞으로 가던 중 멈칫했다.

금붕어가 바닥에 떨어져 죽어있던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채 죽은 금붕어의 모습은 어항 속에서 헤엄치던 모습이 아니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친구 같은 금붕어가 죽었다는 슬픔이 컸는지.

몸도 얼어붙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던 어머니가 나를 흔들었다.

"경희야, 왜 가만히 서있어?"

라고 하면서 몸을 건들었을 때야 정신이 들었다.

금붕어는 내가 처음 동물을 키웠던 첫 추억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다양한 동물들을 키울 수 있었다.

토끼, 강아지, 개 등이다.


토끼는 당근을 주면 오물오물 먹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토끼장 앞에서 매일 서성이던 나의 모습은 금붕어를 키울 때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토끼 앞에 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토끼가 새끼를 낳았을 때다

어미가 놀라지 않게 멀리서 구경만 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짝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는 심정으로 토끼를 바라봤다.

강아지도 마찬가지였다.

강아지도 새끼를 낳으면 멀리서 지켜보게 했다.


동물 키우는 사람은

'사람 기준이 아니라 동물 입장에서 키워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대로 동물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행동했다.


동물들이 새끼를 낳으면 보고 싶어도 꾹 참았다.

동생들과 누가 더 잘 참나 내기하면서...


부모님께서 새끼들을 봐도 좋다고 하면  달려가서 봤다.

그동안 못 보던 식구들을 만나는 기분으로...


동물을  깐깐하게 관리하시는 부모님이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물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동안 키웠던 동물들을 생각했다.

금붕어, 토끼, 강아지, 개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행복했을까?

더 넓은 곳에서 헤엄치고 싶지 않았을까?


토끼는 사육장 안에서 행복했을까?

들판에서 뛰어다니고 싶지 않았을까?


강아지는 사람들과 살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완이라는 이유로 갇혀 지내야 하고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기고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지면서 부모님께 더 이상 동물을 키우지 말자고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반대했다.

동물들의 자유를 뺏지 말자고 설득하면서...


하지만  어느 날 할머니 따라 오일장에 갔다 오던 아이들 손에 금붕어 3마리와 어항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소원이 이룬 것처럼 해맑은 얼굴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갖고 온 금붕어를 보니 어릴 적 바닥에 떨어져 죽은 금붕어 모습이 생각났다.

무서움이...


나는 좁은 어항은 구석에 두고 커다란 항아리 뚜껑에 금붕어를 풀어놨다.

금붕어가 넓은 곳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니 금붕어에게 미안함이 덜 했다.

'그래도 내가 너희를 넓은 곳에서 헤엄치게 해 주니 괜찮지?'

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금붕어는 이유 없이 한 마리씩 죽어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죽은 줄 알고 슬퍼했다.


아이들은 동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는지,

아님 금붕어 키워 본 경험으로 만족했는지.

다시는 동물을 키우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던 아이들의 마음은 아픈 추억이 되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다.

학생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을 많이 했다.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는 학생을 볼 때마다

'강아지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강아지를 정말 아끼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강아지 자연으로 돌려보냈어요"

"어?"

"강아지 자연을 돌려보냈어요"

"어... 떻... 게..."

"강아지하고 산책 갔다가 자유롭게 살라고 공원에 풀어줬어요"

"충격인데? 그건 자연으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버린 거지. 솔직히 말해봐. 강아지를 놔두고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니?"

"......"

"네가 이유를 말 못 하는 것은 버린 거지. 자유를 핑계로 버린 거지. 그럼 그 강아지는 이제까지 너희랑 살았는데 자연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너 앞으로 절대 동물 키우지 마!!!"

"왜요?"


참, 답답했다.

'동물 키우지 말라'라고 하니 '왜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학생에게 얘기했다.

동물의 생명에 대해서...

동물을 키우는 책임감에 대해서...


"생각해봐라, 애완동물은 누구를 위한 애완인지. 동물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지"

"그럼. 동물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다시 키우면 되겠네요"

"안돼, 너~ 절대 동물 키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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