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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Apr 06. 2020

사람이 그리울 땐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18

4월 5일(격리 21일째) 일요일 맑음


성당에 가지 못하는 네 번째 일요일이다. 지난주에는 서머타임 핑계로 일요일 아침을 그냥 흘려보냈다. 사실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미사를 봤는지, 그냥 아무것도 안 했는지 아니면 바쁘게 뭔가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과 일주일 전인데도 그렇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이 제멋대로 흘러갔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일기 때문이다. 확인해보니 서머타임 첫날이었고,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심하게 앓았던 이 시기를 추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너무도 특별해서 다시는 겪어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격리 조치 기간 동안 나와 가족들이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일기를 보면서 되새기게 될 것이다. 첫째는 “진짜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둘째는 “그때 종이접기 엄청 했지”, 셋째는 “넷째 넌 기억도 안 날걸”이라고 말하게 되겠지.


오늘은 인터넷 원격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블루아 주교좌 대성당의 페이스북에서 10시 30분에 미사가 생중계된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다.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가 이번 사태를 맞이해 특별히 더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부활절이라는 중요한 기간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활절을 일주일 앞둔 이날을 가톨릭에서는 성지주일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날이어서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했다. 주교님과 신부님 4명, 시중을 드는 신학생 1명이 오늘 미사의 등장인물이었다. 신자들이 앉는 의자는 텅 비어있었는데 의자에 (아마도) 신자들의 얼굴 사진을 출력해 붙여 두었다. 사진마저 없으면 혼자 독백하는 것 같아 미사를 이끄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해볼 수 있다. 미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맨 마지막 주임신부의 광고였다. 헌금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평소처럼 교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헌금을 할 수 있고, 마음에 두고 있던 봉사단체 같은 곳에 직접 기부하는 방법도 있다고 안내해줬다. 종교계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는 않을 테니,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이중 삼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곳이 저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정부 조치에 반해서 예배를 강행해 버리는 한국의 일부 교회들도 고민은 같은 텐데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뿐이다.


어제보다 더 따뜻한 날씨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아이들의 아침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나 또는 아내의 스마트폰을 켜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도 옷 갈아입기 전에 와서 보고 가더니 첫째는 치마에 반팔 티셔츠를, 둘째와 셋째는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차려 입고 나타났다. 춥지 않겠냐는 내 물음에 오늘 22도까지 올라가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예보처럼 봄봄, 했다. 평소였으면 가까운 데메 공원이라고 갔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정원에 돗자리를 펴고 넷째와 나란히 누워 햇살을 즐겼다.


대부분이 좁은 아파트에서 사는 파리지앵들에게 오늘 같은 날씨는 고문이다. 정말 아무 데도 가기 싫고 귀찮아도 테라스 있는 집 앞 카페는 가줘야 하는 날씨인데, 그 최소한의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그 고통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기사들을 보니 파리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단속하는 경찰들이 바빠졌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포근해진 날씨와 부활절 방학 때문에 격리 조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느슨해졌다는 분석이었다. 왜 통행금지가 아니고 제한이냐는 네티즌의 댓글도 있었다. 파리 공립의료원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파리 길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면서 “느슨해져선 안 된다. 각자 집에 머무시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외삼촌의 아들, 즉 아내의 사촌동생이었다. 가까운 친척이어서 친한 사이이긴 하지만 둘이 전화를 자주 하는 걸 보지는 못했다. 나는 아이들과 노느라 아내의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아내와 마주쳤을 때 내가 물었다. “껑땅이 무슨 일로?” “그냥 했대.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걸어보는 거지 뭐.” 사람이 그리워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쉬웠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게도 전화가 왔다. 파리에 사는 지인이었는데 역시나 서로의 안부를 위해 자주 통화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파리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다. 산책이나 운동하는 차원에서 집 앞에는 종종 나가지만 평소처럼 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닐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 와본 적이 있는 그는 정원 있는 집에 사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파리의 아파트란 곳을 잘 알기에 그의 말을 100% 공감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이 살았던 파리 시내 아파트는 40 평방미터가 채 안 되는 곳이었다. 둘째 돌이 되기 전에 이사를 했으니 한동안 네 식구가 산 것이다. 심지어 월세는 지금 사는 집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만약 아이 둘을 데리고 그 아파트에 살면서 코로나 19 사태를 맞이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나도 사람이 그립긴 하지만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일일이 안부전화를 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아이들이랑 노느라 그럴 시간이 없다.


교육부 장관이 초중고교 휴교령이 언제쯤 해제될 것인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블랑케 장관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빨라도 5월 초쯤이 아닐까. 5월 초라기보다는 5월중에, 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5월 4일까지 부활절 방학이니 그 전에는 휴교령을 해제하더라도 학교에 갈 일이 없다.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총리의 말투도 비슷하다. 아마도,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지만 바이러스 감염의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 분명하므로 그 이상을 말을 해줄 수 없겠지. 아내는 프랑스 전국적으로 부활절 방학이 끝나는 5월 4일에 우리 지역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내놓았다. 나는 그것보다 더 늦어질 것으로 보는 쪽이지만, 아내의 예상이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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